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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바꾼 책의 역사

책의 역사 다뤄 역사적 책이 된 두 권의 역작, 뤼시앵 페브르·앙리
장 마르탱의 <책의 탄생>과 로버트 단턴의 <책과 혁명>
등록 2014-02-22 14:33 수정 2020-05-03 04:27
인쇄 출판의 자유를 얻은 프랑스인들이 앞다퉈 인쇄물을 제작해 널리 퍼뜨리는 모습이 담긴 1797년의 채색 판화.알마 제공

인쇄 출판의 자유를 얻은 프랑스인들이 앞다퉈 인쇄물을 제작해 널리 퍼뜨리는 모습이 담긴 1797년의 채색 판화.알마 제공

중국이 발명하고 아랍을 통해 건너온 종이가 15세기 중반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을 만나 인쇄된 책으로 탄생했을 때, 그것이 세계를 지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 중 하나가 될 것임을 예견한 사람은 없었다. 그 이전 시기에 책은 수많은 필경사들의 손을 거쳐 필사본으로만 존재하던 까닭에 권력자와 귀족, 일부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인쇄술의 혁명적 발전은 책이 지녔던 신분적 장벽을 허물어버렸다. 귀족들의 책은 장삼이사의 책이 되었다.

귀족 중심의 유럽 사회 뒤흔든 책

프랑스 아날학파의 태두인 뤼시앵 페브르와 저명한 도서관학·문헌학자인 앙리 장 마르탱의 (강주헌·배영란 옮김, 돌베개 펴냄)은 이처럼 근본적으로 귀족 중심이던 유럽 사회가 ‘책의 출현’으로 인해 어떻게 변화됐는지 포괄적으로 살펴본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저자들은 말한다. “책은 모든 분야의 탁월한 창조적인 영혼들의 위대한 작품을 크게 힘들이지 않고, 또 감당하기 힘든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신속하고 편리하게, 항구적으로 담아냈다. 책은 위대한 영혼들이 남긴 사상을 되살려내는 동시에 그 사상들에 미증유의 힘을 주었다. 또한 그들의 작품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재편집됨으로써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널리 확산되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책이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면밀하게 고찰한다는 것이, 이 책의 시선을 유럽에만 머물게 하진 않는다. 저자들은 유럽은 물론이거니와 책의 탄생과 보급 과정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한·중·일 삼국을 비롯한 극동아시아와 슬라브 지역, 신대륙 등까지 범세계적 차원에서 책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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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때 책이 어떤 식으로 변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했고, 국가별로 모국어가 자리잡지 못했던 15~16세기 서구 유럽에서 모국어의 기틀이 잡히기까지 책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짚어보는 8장은, 스승 페브르 사후 홀로 집필을 이어가야 했던 마르탱의 문헌학자로서의 역량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 ‘책을 통해 바라본 15~16세기의 사회문화사’라면, 로 유명한 로버트 단턴의 (주명철 옮김, 알마 펴냄)은 18세기 ‘금서의 사회사’를 통해 어떤 책이 프랑스혁명의 불을 당겼는지 추적한 책이다. 단턴이 구성한 18세기의 금서이자 베스트셀러 목록은, 우리의 상상과는 사뭇 다르다. 당시 대중은 볼테르의 또는 같은 포르노그래피의 고전을 비롯해, 같은 비방이나 추문을 자극적으로 들춰내는 책들을 끼고 살았다.

혁명의 불 당긴 포르노그래피들

저자는 이 책들이 감정을 폭발적으로 자극해 당시 사람들의 봉건적 인식체계를 뒤흔들었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독자 대중은 소설 주인공들의 사랑이 신분질서 때문에 가로막힌 상황에 함께 슬퍼했고, 이는 고스란히 불합리한 사회구조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혁명의 위대한 정신인 ‘평등’은 관념이라기보다 차라리 감각에 가까웠다.

(1958)의 후속 연구로 출간(1996)된 이래 10여 년 만에 국내에서 재번역된 이 책은, 촘촘한 자료 조사와 흥미진진한 서술, 프랑스혁명사를 아우르는 깊고 넓은 관점으로 돋보인다. 책을 안 읽는 시대, 책의 역사를 다룬 두 권의 책이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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