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골바람이 불고 잔설이 얼어붙은 한겨울 밤은 생각만 해도 을씨년스럽다. 그런 겨울밤에 나목 가지 사이로 비치는 어스름 달빛으로 길 밝혀 찾아드는 나의 작업실은 원래 뒷산에 누워 계신 어머님이 소를 키우시던 우사였다. 거저 얻은 폐합판을 재활용해 권순흠 목수의 도움으로 만든 이 공간은 겉보기엔 어설퍼도 나에게는 겨울철 참새 방앗간이다. 애첩 찾아 담 넘던 조선시대 한량처럼 아내가 저녁 설거지하는 틈을 이용해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사에 버리는 척하며 이곳으로 잠입해 나만의 소꿉놀이에 빠지곤 한다.
비록 반쪽이라 하더라도 남의 손 덜 빌리고 그런대로 깔끔하게 전원생활을 하려면 봄부터 가을까지는 정말로 바쁘다. 아이들도 장성해 각자 제 일들이 있으니 고3 때까지 적용했던 ‘아이들=자가(自家) 노동력’이라는 등식도 이제는 적용하기 어려운 난국(?)이다. 그 결과 바깥일 적은 겨울철 밤이 오히려 목공‘놀이’ 하기에는 천국이다.
난로에 자투리 나무를 넣어 공기를 좀 덥히고 연장을 이리저리 뒤적이면서 어설픈 설계도를 보다보면 나는 수학자가 되기도 하고, 을 쓰던 마키아벨리가 되기도 한다.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더하고 빼고 다시 자로 재어 확인하며 치수를 조정하기도 하거니와, 마키아벨리가 을 집필할 때 환상 속에서 멋진 관복으로 차려입고 체사레 보르자 앞에서 강론하듯 나도 나의 목수 멘토 샘 멀루프가 되어 스스로에게 가르친다. 이럴 때면 내가 일 친구 경북 안동 출신 권순흠 목수나 위도 출신 김창일 목수의 끽해야 눈치 빠른 ‘시다’라는 실상을 깡그리 잊게 된다.
그러나 지난 몇 년 이래 이들 고수 앞에서 더 이상 기죽지 않고도 나의 취미를 드높은 자부심으로 즐길 발판이 마련됐으니 바로 생나무를 이용한 목공 작업이다. ‘그린 우드워킹’(Green Woodworking)이라는 이 작업은 그야말로 친환경이고 목재 과소비를 줄이는, 목공을 넘어선 생활예술이다. 거창한 설명에 비하면 실행하기 어려울 것 별로 없다. 우리 조상들이 지게 등 생활 소품을 만들 때 산에서 적당히 굽은 생나무를 골라 최소한으로 자르고 손으로 깎고 다듬고 꿰어맞춰 작품 만들듯 하면 된다. 다만 경험과 나무 재질에 관한 지식과 안목, 그리고 힘든 노동이 필요할 뿐이다. 이에 비하면 시내 도처에 생겨난 DIY(Do It Yourself) 목공방은 (그리고 내가 해왔던 기존 목공은) 수입한 목재를 공장에서 말리고 잘라 치수별로 정돈해놓은 나무들을 사서 값비싼 목공기계로 자르고 깎고 맞춰 ‘제조’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 결과 기계는 있으되 연장은 적고, 조립은 있으되 창의는 적고, 설계는 있으되 작품은 적었다.
생나무 목공은 상업용 목재로는 가치가 없으나 동네 뒷산에 지천으로 널린 잡목들을 이용해 집 울타리며, 장미 넝쿨 버팀목이며, 소쿠리며, 도리깨며, 의자 등 전원생활에 꼭 필요한 생활용품을 옛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이 찬탄할 만한 지혜를 우리 조상에게서 물려받을 기회가 없어 하는 수 없이 우연한 기회에 접한 서양 책을 보고 한가할 때면 혼자서 배워나가는 중이다. 그렇게 정교하면서도 제대로 만들기만 하면 튼실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서양의 윈저체어(Windsor Chair)가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대부분 독자들께 생소하리라 생각되는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지면이 좁다. 너무 철학적(혹은 미학적)이라 실제 도움은 적지만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김진송의 일독을 권한다. 아니면 인터넷에서 ‘green woodworking’을 검색하면 눈이 빠질 정도로 많은 동영상과 사진과 기사가 있다.
세상이 하도 수상하여 한가하게 시시껄렁한 신변잡기나 써내려가도 되나 싶은 의문이 절로 드는 새해다. 그러나 현기영이 그의 소설 에서 이야기하듯, 눈물은 떨어져도 숟가락은 올라가는 법. 흰 눈이 쌓인 추운 겨울밤 나무난로의 온기에 기대어 무념무상으로 나무를 다듬는 일은 세상 번잡사도 어찌하기 힘든 고요한 환희임을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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