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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해와 같은 오덕스러움의 결실

도전, 베틀만들기
등록 2013-11-02 15:34 수정 2020-05-03 04:27
최빛나 제공

최빛나 제공

한 달 동안 가동한 양털 폭탄 연구실의 가장 혁혁한 연구 성과(?)라고 한다면 세 종류의 베틀(직조 도구 말이다!)을 제작했다는 것이다. 사각 나무틀에 못을 박아 만든 가장 단순한 형태의 베틀부터, 정신줄 놓고 계속 실만 걸어주면 끈 모양의 뜨개가 아래로 훌훌 떠서 내려오는 스풀 베틀, 그리고 허리에 걸고 뜨개를 해줄 수 있는 자칭 액션 베틀까지. 사실 뜨개의 역사야 인류의 역사니 이런 단순한 베틀은 태곳적부터 도처에 존재해온 것들이다. (발명이나 연구의 성과라고 하기도 민망하다. 그저 코바늘 뜨개의 부재능, 부재능을 밑천 삼아 그래도 ‘기어코 내 손으로 뭔가 떠보고야 말겠소!’라는 고집의 결과랄까. 아! 함께 이런 드립질에 동참해주는 주변의 제작자들이 ‘이런 베틀도 가능해!’ 하며 마구 영감을 준 덕이 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첨언하자면 그들의 우주 정신, 덕스러움은 하해와 같다. 플라스틱 바구니부터 골판지 상자, 고무 호스까지 그들이 베틀 제작을 위해 시도하는 재료는 가히 오덕의 경지요, 돌, 비닐봉지, 강아지풀, 티셔츠 조각, 철사 등 그들이 직조를 위해 끌고 오는 재료는 십덕의 내공이다. 그저 이런 직조 도구도 가능하겠구나 하며 물 건너 사이트들을 좀 열심히 파도타기하며 캐내는 날치알 같은 정보는 이들이 주는 심해어 같은 영감에 비할 바가 아니다.

어쨌든 그렇다 하더라도 직접 내구성 있는 도구를 만들어내는 것은 이만저만한 삽질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게 아니다. 크기, 재료, 표면의 질감, 무게, 강도까지 그 안에 나름 들어가는 공학적 고려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 연구원이라도 된 듯한 마음가짐이다. 결과물은 어떠하냐고? 아이스크림 막대에 플라스틱통, 스컬피, 클립 등 로테크에서도 초저점을 찍을 재료들로 만들어진 그 사물들의 미친 존재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클립 용도를 변경해서 뜨개 고리를 만들고 신나하며 자신의 천재성을 과시하는 ‘어른이’(어린이 아님)들의 그 자만심을 어떻게 이 글로 묘사할 수 있을까. ‘직조라는 것이 얼마나 연산과 제작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행위인지 아냐!’며 어떻게든 의미의 좌표를 찾아보려 주절대는 양털 폭탄 연구실 야매 연구원의 분석까지 더해지다보면, 이 직조의 도구들을 만드는 과정은 ‘사물과 인간의 동맹’을 위한 한 편의 서사시라기보다는 뭔가 ‘멋지다 마사루!’ 하며 지나칠 ‘병맛’ 만화의 전통을 우리가 잇고 있는 듯한 서늘한 느낌(사실 그런 뉘앙스에 더 애착한다).

어쨌든 이런 ‘웍더글덕더글’한 과정을 거쳐 세 가지 직조 도구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공유하는 제작 워크숍을 열었다. 그 과정에서 느낀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들. 집에 망치가 없는 경우가 많구나, 못질 어려워하는구나, 몸노동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가늠을 못하는구나. 피로와 고갈의 사회에서 나름 생산의 세계로 들어와 하루 놀아보겠다는 당신들, 5시간 넘는 제작 워크숍에 지쳐 더한 피로를 안고 돌아가신 그대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우리가 몰랐다. ㅜ.ㅜ

최빛나 청개구리제작소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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