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되돌아보기 싫은 시절이 있겠지만 내게는 20대 초반이 그야말로 흑역사였다. 그 무엇 하나에서도 다 의미를 찾고 싶었고, 그걸 못 찾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쉽게 무시했다. 무조건 크고 거창한 것, 즉 역사, 인생, 심지어는 신까지, 감당할 수도 없는 스케일의 문제 틀을 잡았다. 내 질문 자체를 나도 이해 못하면서 아무 판에나 뛰어드는 한편, 답을 내놓으라고 주위 사람들을 괴롭혔다. 내 말을 들어줄 만한 가장 가깝고 착한 사람들만 골라서는 이 세계의 무의미성이라는 게 두렵지도 않느냐, 일찍 끝내 쓸데없는 고통이라도 줄이지 의미도 없는데 왜 번거롭게 계속 사느냐, 하는 한심하고 시건방진 질문을 틈만 나면 던졌다. 지금 내 주위에 그런 재수 없고 부담스러운 애가 있다면 목에 방울이라도 달아줘 미리미리 피하고 싶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당시의 논리대로 죽기는커녕 아이들까지 낳아 키우며 살고 있다. 인생이란 게 어차피 기나긴 고해일 따름인데, 의미도 없이 힘만 드는 거 왜 꼭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얻은 건 아니고, 그냥 그 질문 자체가 흐지부지 사라져버렸다고 해야겠다. 취직이 계기였는지 결혼과 육아가 혹은 다른 어떤 것이 계기였는지 모르겠으나 이젠 낯부끄러운 나의 스무 살과 함께 인생의 쓰레기 밭 어딘가에 영원히 파묻어버린 것 같았다.
스톤 박사가 소유즈를 타고 저 멀리 파란 별 지구를 바라보며 말 그대로 온 우주의 고독과 마주하고 있을 때,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그 질문이 어디선가 솟아나왔다. 인간은 왜 굳이 살아야 하는가? 심지어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데, 스톤은 왜 꼭 돌아가려 하는가? 내가 없으면 인류가 곤란을 겪는 것도 아니고, 불행한 가정사 때문에 삶에 대한 애착도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왕 살던 거 그냥 살면 되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모험과 파괴와 자원 소비까지 해야 하는데. 내일 만나자는 평범한 인사가 생사를 걸어야 하는 사건이 되고, 이게 내 마지막 비행이라는 가벼운 언명이 전혀 뜻밖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삶이란 당연한 ‘본전’ 같지만 실은 온 우주가 모든 우연과 함께 힘을 다해 떠받치고 있는 것. 우주비행선 안에 간신히 돌아온 스톤은 뱃속의 아기처럼 안온해 보이지만, 결국 온 우주에 맞서는 용기로 다시 문을 열고 나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비행에 모든 것을 걸고 지구로의 귀환을 감행한다. 너무나 강력하게 끌어당겨 그 이유도 의미도 대신해버리는 가공할 힘의 원천, 바로 생명의 핵 속으로. 생명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중력처럼 강력하게 빨아들이고 잡아두는 힘이며,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절대자다. 영원히 우주를 떠다닐 코왈스키가 염원했던,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소중하고 감사한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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