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작은 구멍’이란 뜻으로 영세탄광 또는 하청탄광을 일컫는 은어. ‘쫄딱’은 ‘규모가 작다’는 뜻 외에 ‘망하기 쉽다’는 의미도 지녔다. 국내 최대 민영탄광인 동원탄좌는 취업 문턱이 높았다. 쫄딱구덩이를 전전한 뒤에야 동원탄좌 광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쫄딱구덩이를 졸업하고 동원탄좌 정규직이 된 광부들은 폐광 뒤 다시 강원랜드 하청업체 직원이 됐다. 더 이상 석탄을 캐지 않는 사북에서 그들의 쫄딱구덩이 인생은 되풀이되고 있다.
[반대말]모광(원청 탄광).
[비슷한말]덕대(모광으로부터 갱구 일부를 임대한 탄광 혹은 업자), 조광(덕대를 법적으로 현실화한 탄광).
개청부[명사]하청탄광 광부들을 비하해 부르는 표현. 직영 광부와 하청 광부가 갱도를 함께 쓰는 탄광에선 직영 광부 안전모 뒤에만 소속 회사명을 써붙이곤 했다. 하청 광부들은 안전모 소속 표기를 하지 않는 방법으로 ‘신분’을 구별당했다. 직영 광부들은 하청 광부들을 ‘개청부’라고 얕잡아 부르기도 했다. ‘개청부는 뒤에서만 봐도 안다’는 말이 있었다.
[사용례]ㅈ(56)은 현관문을 잠그지 않았다. 무엇인가 훔쳐갈 만한 집으로 여겨준다면 오히려 고마울 것 같았다. 현관은 곧 방문이었다. 현관을 열면 곧바로 방이어서 방문이었고, 방문을 열면 곧바로 바깥이어서 현관이었다. 좁고 구부러진 골목에서 올려다보는 하늘도 좁고 구부러졌다. 갱 안에서 보이지 않던 하늘은 갱 밖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뭐해?”
‘웃통’(55)이 한 남자를 달고 골목 끝에 서 있었다. 광부 동료 ‘웃통’은 수도까지 끊긴 동원아파트(동원탄좌 광부 사택)에서 귀신처럼 숨어 살았다(恨국어사전 ‘사북광부’편 ① 참조). 폐허가 된 아파트 주차장 한켠에서 웃통을 벗고 산이 흘려주는 물에 하루의 먼지를 씻었다. 1년 전만 해도 ㅈ도 웃통이었다. 회사와 읍사무소의 퇴거 종용에 남은 웃통들이 아파트를 떠날 때 ㅈ도 ‘더럽고 치사한’ 웃통의 삶을 포기했다. 보증금 없는 월세 20만원짜리 단칸방이 ㅈ의 새집이었다. 폭 1m 남짓한 골목길 양쪽으로 그의 집과 그의 집을 닮은 집들이 비밀처럼 스며 있었다.
ㅈ은 열여섯 살 때 쫄딱구덩이 스데바(난장 잡부)로 광부가 됐다. 안전모에 전기충전 램프가 아닌 간드레(카바이드 등. 캔들(Candle)의 일본식 발음)를 달고 막장을 밝히던 ‘옛날’이었다. 백운산 운탄길(석탄을 운반하는 길)을 10리씩 걸어다니며 국민학교만 마쳤다. 햇돼지(신입 광부) 시절부터 열갱이(일에 능하지 못하고 둔한 광부)로 찍히지 않으려 ‘좆 빠지게’ 일했다.
탄광이 산 위에서부터 석탄을 털어먹고 바다 밑까지 내려가는 동안 탄맥에서 뻗어나온 구덩이 운영권 하나만 따내도 떼돈을 번다고들 했다. 모광과 계약한 쫄딱구덩이 업자들이 쌀가마니를 풀어놓으면 곤궁한 인부들이 찾아가 곡괭이를 들었다. ㅈ은 개청부 소릴 들을 때마다 동원탄좌 직영 광부를 꿈꾸며 등에 동발(갱 붕괴를 막기 위해 받치는 나무 또는 쇠)을 올렸다. 올림픽이 있던 해 ㅈ은 쫄딱구덩이를 졸업하고 동원탄좌 정규직이 됐다. 동원탄좌 인감증(사원증)만 보여주면 사북 어디서든 쌀과 술을 살 수 있었다. 그의 인생 최고의 날들이었다.
“왜 연락이 안 돼요?”
‘웃통’ 옆의 남자는 ‘고놈’이었다. “동원아파트에 와서 널 찾길래 데려왔다”고 웃통이 말했다. 5년 만이었다. 고놈이 고놈인 놈들 중에서 ‘고놈’과는 연이 끊길 듯 이어졌다. 밥벌이가 남 이야기 주워먹는 기자질인 ‘고놈’한테 5년의 시간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ㅈ은 성가시고 귀찮았다.
“휴대전화는 왜 착신정지 시켰어요?” 전화요금 연체료가 60만원을 넘어서자 통신사가 서비스를 중단했다. “망치 형님도 ‘3년 전부터 토끼 소식은 모른다’고 하던데요?” 망치 마누라가 자꾸 무시해서 망치도 안 보고 살기로 했다. “어떻게 형님 가족들도 형님 소식을 몰라요?” ㅈ은 세상에 없는 듯 살고 있었다.
그도 출근 때마다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고(인사하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믿는 광부들 금기), 집을 나선 뒤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뒤를 돌아보는 것은 두려움을 드러내는 행위). 흉몽을 꾼 날이면 회사의 마른공수(출근하지 않아도 일당 처리)를 믿고 결근(나쁜 꿈자리는 공식 결근 사유로 인정)했다. 죽음 앞에선 탄광 금기들도 무기력했다. 그가 “○○야, ○○야, ○○야, 나가자, 발파다, 나가자”며 갱내에서 터뜨린 다이너마이트(망자의 이름을 세 번씩 부른 뒤 다이너마이트를 발파해 영혼을 갱 밖으로 인도하는 일종의 진혼 의식)가 몇 개인지도 알 수 없다. 평생 광부로 살았던 아버지는 5년 전 진폐증 진단도 못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선탄장(석탄 더미에서 돌을 골라내는 작업장) 광부였던 아내는 14년 전 사고로 세상을 버렸다. 가장 친한 광부 친구였던 ㅇ(56)은 폐광 2년 뒤 만취 상태에서 누군가의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 지난 늦봄과 초여름 ㅈ은 두 번의 자살을 시도했다. 한번은 목을 매고 죽음을 찾아갔고, 한번은 술을 마시며 죽음을 초대했다. 2주 동안 식도로 넘긴 물질은 하루 대여섯 병씩의 소주뿐이었다. 죽는 것은 한 인생의 절멸인데, 살아남으니 죽음이 너무 흔했다.
ㅈ은 폐광(2004년) 뒤 ‘어린 애들’ 속에 섞여 쓸 일 없는 자격증을 세 개(자동차정비·자동차검차·지게차운전)나 땄다. 한나절 일하면 장화에서 땀이 주르륵 흐르는 태백의 쫄딱구덩이에 취업했다 그만두기도 했다. 건물을 타며 물탱크를 청소했고, 38번 국도 공사장에서 노가다를 뛰었다. 고랭지 배추밭에서 배추를 뽑았고, 산에 올라 오미자 덩굴에 매달렸다.
“안녕하세요.”
파란 유니폼을 입은 ㅈ이 ‘여사님들’을 볼 때마다 인사를 건넸다. 그는 강원랜드가 운영하는 콘도를 오르내리며 쓰레기를 치웠다. ‘객실정비’ 여사님들이 정리한 쓰레기들을 엘리베이터로 실어내려 집하장에 버렸다. 더러운 콘도 바닥에 윤기를 냈고, 콘도 주위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웠다. 눈이 오면 눈을 치웠고, 풀이 자라면 풀을 뽑았다. ‘랜드’에선 그의 일을 ‘일반정비’라고 불렀다. ‘기물정비’(식당 설거지) 쪽에서 일손이 모자랄 때면 그릇도 닦았다. 일의 명칭은 고상했고, 일의 내용은 거칠었다. 그는 지금 강원랜드 하청업체 직원이다.
ㅈ의 키는 158cm다. 180cm 남짓의 동발을 지고 1m 높이의 갱도를 수백m씩 기며 일했다. 농자는 한 번도 ‘천하지대본’이었던 적이 없었고, 광부는 한 번도 ‘산업혁명의 주역’이었던 적이 없었다. 현란한 ‘언어정치’에 속으며 그들은 일만 하다 죽었다. 강원랜드는 폐광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탄광 주민들이 대정부 투쟁 끝에 얻어낸 ‘마지막 미래’였다. 그들이 만든 ‘미래’에서 강원랜드 정규직이 된 폐광 광부는 한 명도 없다. 그들이 진폐증으로 죽고, 무직자가 되고, 공장을 찾아 떠날 때, 외지인들이 찾아와 러브호텔을 세우고, 땅투기를 하고, 강원랜드 정규직이 됐다.
ㅈ은 가끔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얼굴과 손등을 파고든 거무튀튀는 그의 것일까 석탄의 것일까. 평생 알아내지 못한 것이 있다.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광부로 폐기된 인생은 그의 선택일까 핏줄의 유전일까. 끝내 알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땅 위에서 연장시킨 그의 삶은 땅 밑에서 유예시킨 죽음만큼 가치 있는 것일까 아닐까. 강원랜드 하청업체는 쫄딱구덩이를 벗어나려 필사적으로 살았던 그가 다시 갇혀버린 더 깊은 쫄딱구덩이다. 동원탄좌 폐광 광부(734명)의 3분의 1이 쫄딱구덩이에 빠졌다.
“아저씨, 지금 청소하고 있는 거 안 보인대요? 걸레질하는데 어찌 춤(침)을 딱딱 뱉고 그런대요?”
강원랜드 바카라 게임장 흡연실에서 ㅎ(55)이 눈을 치떴다.
도움말 정연수 탄전문화연구소장
*이 독자와 ‘恨국어사전’을 편찬합니다. 여러분 각자의 恨국어를 제보(moon0@hani.co.kr)해주세요.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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