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경찰의 일제 단속을 일컫는 말. 과거 투망식 범인 체포나 실적 위주의 검거 활동으로 말썽이 많았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전과가 있고 주거가 일정치 않은 넝마주이들은 경찰의 실적 달성에 자주 ‘활용’되곤 했다. 단속 기간이 되면 ‘몇 명 잡아가겠다는 흥정이 들어왔다’는 증언도 있다.
【아파트벌이】[명사] 특정 아파트 단지와 계약을 맺고 구입한 쓰레기들 중에서 헌 옷, 고철, 빈 병 등을 골라내는 작업 방식. 비교적 일이 손쉽고 수입의 진폭이 좁다. 현재 넝마공동체 같은 집단적 성격의 넝마주이는 보통 아파트벌이의 형태를 띤다.
【또박벌이】[명사] 정해진 공간 없이 거리·상가·공사장을 걸으며 쓰레기를 뒤지는 작업. 근래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줍는 노인들은 또박벌이를 하는 경우다. [비슷한 말] 떡다방.
【때림벌이】[명사] 구리나 철근처럼 값나가는 고물을 주인 허락 없이 가져오는 것으로 절도의 경계를 오간다.
[사용례] 중력은 그리움이다.
우주를 떠돌던 천체 하나가 불타(11월29일) 죽었다. 고향(오르트 구름)을 떠난 외로운 혜성(아이손)은 암흑 저편에서 손짓하는 태양의 중력을 따라 날았다. ‘그리운 불덩이’의 가장 가까운 곳(근일점)까지 비행했을 때 혜성은 비로소 알았다. 그리움은 잡아당긴다. 그리움에 몸을 맡긴 혜성은 무섭게 잡아당기는 고온의 중력에 부서져 소멸했다.
그(67)는 중력이 그리웠다. 흐르는 것들은 결국 마찬가지라고 체념한 적도 있었다. 안온하고 평온한 흐름엔 끼지 못해도 불안하고 둔탁하게 흐르면 그뿐이라고 위안했었다. 흐를 수 없는 곳까지 흘러갔을 때 그는 비로소 알았다. 흐르고 떠다니다 불타버리는 것이 운명이라면, 흐르고 떠다녔던 그리움의 거리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도 중력이 필요했다. 부서지도록 자신을 잡아당길 보이지 않는 힘줄이 그리웠다.
“멸치는 좀 남았십니까?”
비닐 한쪽을 들추며 백발의 그가 기어들었다. 강남구청(서울 강남구 삼성동) 앞에 누에고치처럼 엎드린 비닐방(恨국어사전 강남 넝마공동체편 ① 참조) 안에서 집을 잃은 그녀들이 그를 맞았다. 그가 김 다발을 바닥에 부렸다.
“밥들 든든하게 잡숴. 그래야 추위를 이기지.”
올겨울 그는 계속 흐르고 있었다. 경기 평택으로 흐르고, 전북 군산으로 흘렀다. 공사장 방수 대모도(‘조수’를 뜻하는 일본말)로 흐르며, 어제에서 오늘로 흘렀다. 강남구청이 1년 전 넝마공동체(강남구 대치동 영동5교 다리 밑)를 철거하면서 그는 계속 흘렀다. 늙은 그를 불러주는 늙은 십장이 있었다. 친구가 부르는 곳으로 떠돌고 흐르면서 그는 겨울을 견디고 있었다. 흐르며 번 돈으로 그녀들의 반찬거리를 샀다. 그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영동’이란 땅이 있었지.
근로재건대(5·16 쿠데타 직후 박정희 정권이 경찰 관할하에 편입시켜 관리하던 넝마주이 조직)로 흘러들어간 그는 재건대를 탈출해 영동으로 흘러왔다. 조마리(넝마주이 막의 왕초)의 횡포도, 지정벌이(하루 정해진 양을 채워야 하는 의무벌이)의 강요도 없는 공동체를 그와 그들은 꿈꿨다. 영동5교 다리 밑은 정처 없는 삶들의 마지막 정처였다. 무한의 우주에서 한 뼘의 땅도 얻지 못한 그들을 중력으로 잡아당긴 단 하나의 정류장이었다. 영동이 개발되기 전부터 영동의 애기통(쓰레기통)을 캐며 흘러다니던 그들이, 허망 위에 열망을 섞고, 절망 위에 희망을 비비며, 하루를 정거하는 그리움의 교각이었다. 누군가 왔고, 바람이 불었고, 누군가 떠났고, 비가 내렸다. 누군가 웃을 땐 태양이 따사로웠고, 누군가 죽었을 땐 구름이 잿빛이었다. 앞다리가 부러져 거리에서 흐르던 개들도 공동체에 와서야 다리를 쉬었다.
거지는 모닥불에 살찐다(‘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사는 재미 한 가지는 있다’는 속담)고 했다. 지랄 마라. 모닥불 쬔다고 살찌는 거지가 어딨나. 흘러다니기만 한 거지의 평생이 얼마나 춥고 잔인한지 아는가. 압도적이제.
과거 죽음을 치를 돈이 없던 넝마주이들은 죽어가는 친구를 리어카에 싣고서 물었다. “알지? 우리가 죽는 방식을.” 친구는 흐린 웃음을 띠며 안다는 신호를 보낸다. 형들의 죽음도 그랬고, 동생들의 죽음도 그랬으며, 자신들의 죽음도 그럴 것이었다. 친구들은 파출소 앞에 친구를 내려놓고 뛴다. 경찰들이 욕을 하며 친구를 시립병원으로 옮긴다. 병원에서 죽은 친구는 화장터로 넘겨져 재가 된다. 양아치(넝마주이의 속된 표현)의 죽음이 처리되는 방식이었다.
담배 연기가 그의 폐 속 깊이 빨려 들어갔다.
또박또박 걸으며 또박벌이를 했다. 고급 아파트들을 찾아다니며 열가(부유한 사람들)들이 버린 쓰레기를 주웠다. 음식은 익혀 먹으면 됐고, 옷은 빨아 입으면 됐다. 상양(상품)을 건지면 뿌듯했고, 하양(하품)을 만나도 고마웠다. 어성(그림·전자제품·공구·만년필 등 값나가는 쓰레기)이 아니어도 물렝이(플라스틱)도 귀하게 여겼다. 때림벌이의 유혹은 힘써 눌렀다. 방바리(방범)나 야방(야간경비)에게 도둑으로 몰린 날 이불을 깔 때면, 뒤따라온 설움이 그보다 먼저 누워 곯아떨어졌다. 아파트벌이를 시작하면서 중력의 힘은 강해졌다. 공동체 철거 전까지는 29명 식구들이 흐르지 않고도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워서 못 떠나는데 그리워할 데가 없네.
영동5교 다리 밑에서 멈췄던 그가 다시 흐르고 있다. ‘영등포의 동쪽’으로 규정되며 고유의 이름을 갖지 못했던 땅이 ‘강남’이라는 윤기 나는 이름을 갖게 됐을 때 그 땅의 중력은 우주에서처럼 느슨해졌다. 구청의 공동체 철거는 그를 잡아당기던 그리움의 줄을 끊어버렸다. 사라진 줄 알았던 후리가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평생 후리가리를 당하며 살았다. 벽돌 운반 일을 하다 간조(월급) 날 술 한잔 먹고 시비가 붙었다. 경찰서 신분 조회 때 부랑인 명단에 올라 있다는 이유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1981년 9월). 강원도 5사단에서 맞고, 기고, 쇠고랑을 찼다. 소총 개머리판을 휘두르며 선임하사는 말했다. “너희 같은 새끼들은 그냥 죽여버려도 돼. 보고서 한 장만 긁으면 끝나.”
씨발 같은 후리가리. 공동체 살 때도 만만한 게 홍어좆이여. 단속 기간 되면 형사들이 머릿수 채운다고 잠복하고 있다가 고철 쪼가리 하나만 주워와도 도둑이라며 형무소에 처넣었어. 올림픽(1988년) 때가 피크였제. 더러운 인간들 안 보이게 한다고 다 잡아갔어. 잘난 놈들끼리 올림픽 즐기겠다고 못난 놈들 후려친 ‘내림픽’ 아니었냐고.
담배 연기 입자 사이로 강남구청이 울렁거렸다. 그들이 창조한 정치와 경제는 앞도 없고 뒤도 없이 위와 아래만 있는 수직의 구조물이었다. 어지러워서 황홀한 그 세계는 간절한 동경이면서 격렬한 혐오였다.
신문지로 똥구멍 닦을 때부터 우리가 강남을 닦았어. 우리가 없었으면 청소는 누가 하고 재활용은 누가 했나. 이젠 필요 없으니까 안 보이게 치워버리고 싶다는 거제.
의탁 없는 우주에서 그를 지구로 끌어당기던 중력이 사라지는 담배 연기처럼 옅어지고 있었다. 그녀(77)가 비닐 너머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고마 우리도 하늘로 핑 날아올랐으면 좋겄다.”
그가 일어섰다.
“아짐들 잘 견디소. 다음엔 돼지고기 열 근 사갖고 올게.”
흐르면서 닳아버린 검은 살 대신 하얀 뼈로 걷고 기며 그와 그녀들은 또 흘러갈 것이었다.
“대마찌(‘공치는 날’을 뜻하는 일본식 표현)가 아니어야 할 긴데.”
그가 휘적휘적 걸었다. 이문영 기자
*넝마공동체 주거공간과 작업장 문제 해결을 위한 서울중앙지검의 중재가 답보 상태다. 강남구청 앞에서 얇은 비닐 한 장에 의지해 24시간 노숙농성 중인 공동체 주민들은 12월5일 서울시청을 찾아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항의농성을 벌였다.*이 독자와 ‘恨국어사전’을 편찬합니다. 여러분의 恨국어를 제보(moon0@hani.co.kr)해주세요.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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