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서[명사]해피콜의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해당 수리 기사의 셀(Cell·두 개의 셀이 하나의 팀을 이룸) 구성원 전체가 일과 뒤에 모여 ‘대책회의’를 열고 원인 분석과 향후 계획을 담은 ‘대책서’를 쓴다.
0730 미팅[명사]대책회의 다음날 아침 7시30분에 전 직원과 사장이 보는 앞에서 대책서를 토대로 문제점을 반성하고 개선 방향을 보고하는 시간. 정식 명칭은 ‘대책보고회’.
CS 롤플레이[경영용어]‘Customer Satisfaction’ 혹은 ‘Customer Service’의 약자. 실적이 부진한 수리 기사들이 고객을 연기하면서 응대 기술을 익히도록 하는 역할극. 삼성전자서비스의 경우 월별로 전국에서 실적 하위자 10%를 뽑아 특정 공간에 모아놓고 가정집과 동일한 구조의 무대에서 역할극을 시키기도 했다.
지역 쪼개기[명사]본사가 개입해 협력업체 소속 직원들이 담당하던 수리 지역을 분할해 일감을 가져가는 행위. 노조 결성 이후 삼성이 조합원들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마이너스 성과급[명사]고정급을 주지 않는 삼성전자서비스가 월급명세서에 기재한 편법 항목. 직원에게 지급하는 적은 급여의 서류상 근거를 짜맞추기 위해 사용한다. ‘성과가 마이너스’란 의미로 급여 액수를 깎기 위한 방법.
[사용례]가파르고 완고합니다. 흠이 없고 틈도 없습니다. 성뿐이며 벽뿐입니다. 부유한 시대에 궁핍한 우리는 설 곳도 쉴 곳도 없습니다.
제수씨(28)가 웁니다. 삼성 본관(11월6일 서울 서초동) 앞에 주저앉아 흐느껴 웁니다. 하늘에 도전하는 자신만만한 수직 아래에서 이를 악물어도 막을 수 없는 울음이 스스로 웁니다. 삼성 직원들과 정보과 형사들이 우리의 울음을 무전에 태워 타전합니다. 햇볕에도 숨이 차고 바람에도 허기집니다. 빙하기에 갇힌 사람처럼 제(최종호·35) 목소리에서도 얼음이 서걱거립니다.
푸른 나이에 죽어 푸른 혼이 된 동생“삼성은 동생(최종범·32)의 주검 앞에 진심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푸른 하늘에 푸른 어둠이 오고 있었을 것입니다. 푸른 동생이 푸른 나이에 죽어 푸른 혼이 됐습니다.
늦은 밤 제수씨는 동생의 전화(10월30일)를 받았습니다. 동생은 술을 한잔 한 듯했습니다. 집엔 들어오지 않고 별이를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돌을 한 달 앞둔 딸 별이는 아빠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미안해, 나는 떠나.” 동생의 말이 제수씨는 이상했습니다. 전화기를 붙든 채 종이 위에 글자를 휘갈겨 썼습니다. 옆에 있던 친오빠에게 전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이상해. 어딘지 알아봐줘.” 제수씨는 남편과의 전화 통화를 최대한 이어가려고 했습니다. 통화는 17분 동안 계속됐습니다. 통화를 끝낸 뒤 동생은 전화기 전원을 껐습니다. 위치 추적으로 확인한 마지막 발신지는 집 근처였습니다.
장례식장 밖이 소란스러웠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가 보낸 조문 화환을 동생의 동료들이 부수었습니다. 삼성은 동생과 동료들을 ‘삼성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노조 결성(7월14일) 뒤엔 지역 쪼개기로 조합원들의 생계를 위협했습니다. 수리 건수가 가장 많은 쌍용동과 불당동을 떼어 가져갔습니다. 동생은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며 동료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일이 없어, 나 일해야 하는데, 돈 벌어야 하는데.” 삼성은 조합원들을 찍어 표적감사도 벌였습니다. 동생도 감사 대상이었습니다. 동생이 아끼던 후배는 19만원이 찍힌 월급명세서를 받기도 했습니다. 회사가 이관정지(수리 작업 자체를 배정받지 못하도록 센터에서 콜을 막아버리는 조처)를 시킨 탓입니다. 냉장고 수리 부품을 공장에서 잘못 보내준 일로 고객 VOC(‘Voice of Customer’의 약자로 고객불만 사항)가 뜨자 책임을 후배에게 물은 결과입니다. 19만원이라는 ‘있을 수 없는’ 월급명세서를 만들기 위해 회사는 56만원의 마이너스 성과급을 책정했습니다.
천안센터 사장이 보낸 꽃도 땅바닥에서 뒹굴었습니다. 그가 동생을 몰아붙이던 전화 통화 녹음을 저도 들었습니다. “새끼야, 고객을 잡으려면 확실히 개같이 잡아버리든지, 칼로 꼭꼭 쪼아서 갈기갈기 찢어버리든지 해야 될 거 아냐. …확실하게 지져버리라니까. 가서 죽여버리든지 갈기갈기 찢어서 널어버리든지.” 사장의 욕설 음성 사이로 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동생은 아내와 딸이 듣고 있는 곳에서 사장의 욕설에 찔리고 찢겼습니다.
삼성 센터 사장의 교활한 거짓말동생은 꿈을 말하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아팠습니다. 큰 수술만 7차례 하는 동안 살림은 기울었습니다. 삼수생이 된 제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생은 말했습니다. “형이 공부해. 난 대학 안 가.” 동생은 공장을 다녔고,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에 취직했을 때 우리 가족은 모두 기뻐했습니다. 동생은 명함 사진 밑에 “고객의 기쁨은 우리의 기쁨”이란 말을 새겼습니다. 별이를 낳았을 때 동생이 SNS 대문에 올린 글은 벅찼습니다. “오늘부로 최종범 인생 끝. 최별 인생으로 다시 시작.” 5년 전 어머니를 보살피느라 고생만 하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5년 뒤 아버지가 안치됐던 병원에 동생의 주검이 도착했습니다. 지난해 초 어머니는 뇌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했습니다. 어머니에겐 아직 동생의 죽음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동생이 삼성 직원이라고 자랑합니다.
몰랐습니다. 동생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었는데, 동생의 고단함은 제 생각이 닿지 않는 곳에 가 있었습니다. 동생은 냉장고와 에어컨을 고치는 중수리(용접 작업이 필요한 수리) 기사였습니다. 동생은 센터에서 세 손가락에 드는 실적을 올렸다고 합니다. 입사 15년 된 선배들보다 입사 3년이 조금 넘은 동생의 수입이 더 많았답니다. 고정급이 없는 삼성전자 수리 기사들은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는 만큼 벌었습니다.
센터 사장은 종범이의 월급이 평균 410만원이라고 언론에 이야기했습니다. 동생 동료들은 분노했습니다. 삼성전자 기사들은 수리에 필요한 장비와 재료, 차량 연료·유지비, 식대, 휴대전화 사용료 같은 모든 비용을 개인이 지불합니다. 410만원은 에어컨과 냉장고 소비가 많은 7~9월 성수기 때의 평균이었습니다. 나머지 아홉 달 비수기 때 실수령액은 100만원대를 맴돌았습니다. 성수기 때 번 돈으로 비수기를 메우면서 동생은 살았습니다. 동생은 출근 전부터 한두 ‘콜’(수리 의뢰)을 처리했고, 남들은 퇴근한 새벽 1~2시까지 일했습니다. 지난 추석에도 하루만 빼고 동생은 건물에 매달렸습니다. 동생은 ‘개처럼’ 일했습니다. 스스로를 ‘여왕개미’(삼성)를 먹여살리느라 죽어나는 ‘일개미’라고 동료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지난해 결혼한 동생은 처갓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장인·장모에게 떳떳하려고 악착같이 일했습니다.
동생과 동료들 모두가 개 혹은 개미였다종범이 동료들 모두가 개 혹은 개미였습니다. 해피콜(수리를 요청한 고객을 대상으로 만족도를 묻는 조사)이 뜰 때마다 대책회의를 해야 했습니다. MOT(‘Moment of Truth’의 약자. 고객 응대에 초점을 맞춘 마케팅 기법으로 ‘약속시간 준수→양해 전화→공손한 인사…’로 이어지는 삼성의 ‘외근 MOT 항목’은 12~18개로 구성) 절차에 따라 ‘마무리 인사’까지 해도 만점이 안 나오면 무조건 대책서를 썼습니다. 본사 간부들까지 참석한 0730 미팅에선 죄인 된 기분으로 반성했습니다. CS 롤플레이에 불려가 고객을 연기할 때면 자신과 자신을 다그치는 또 다른 자신 사이에서 혼란을 느꼈을 겁니다. 미스터리 쇼퍼(고객을 가장해 직원의 서비스를 평가하는 사람)란 이름으로 본사가 몰래카메라나 안경카메라로 지켜볼 때부터 그들은 자신이 삼성 직원이 맞는지 자문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사회는 ‘나의 감정’에 가격을 매기며 ‘나의 태도’를 상품으로 판매합니다. 나의 노동을 고용한 기업은 나의 감정과 생각까지 고용하고 관리합니다. 노동자를 감시한 고객은 자신의 일터에서 누군가의 감시를 받는 노동자가 되고, 고객에게 감시받은 노동자는 다시 다른 노동자를 감시하는 고객이 됩니다. 고객이 노동자를 감시하게 만드는 사회는 자기가 자기를 감시하는 거대한 롤플레이를 하고 있습니다.
10월30일 회사에 출근하지 않은 종범이는 오후 2시께 회사 친구(32)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친구에게 ‘술 한잔 하자’고 청했다고 합니다. 오후 4시께 동생은 한 ‘콜’을 처리한 뒤 오후 5시께 술자리에 합류했습니다. 5명 중 친구를 포함한 4명이 고향인 충남 천안 직산에서 함께 자랐습니다. 주머니가 가벼운 그들은 술을 마실 때면 각자 자신의 술값을 계산했습니다. 그날 동생은 술값을 전부 내겠다고 했습니다. 밤 9시30분께 헤어졌습니다. 밤 10시께 노조 SNS 대화방에 동생의 글이 떴습니다.
“저 최종범이 삼성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새벽일을 나가던 직산읍의 한 할머니는 낯선 자동차를 봤습니다. 아름드리 나무 옆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차 안이 마을을 감싼 안개만큼 뿌옜습니다. 오후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할머니는 그때까지 꼼짝 않고 있는 차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낡은 차였습니다. 차의 뒤범퍼는 가뭄 든 논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고, 부러진 백미러는 테이프로 칭칭 감아 고정한 채였습니다. 며느리가 차 안을 살폈습니다. 쇠세숫대야 안에 다 타버린 번개탄 두 개가 남루했습니다. 운전석 뒤엔 담뱃갑 하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단 한 개비가 모자란 새 담배였습니다. 번개탄이 타들어갈 때 동생은 새로 산 담배를 뜯어 마지막 연기를 뿜었습니다. 경찰의 사망 추정 시간은 오후 5시30분이었습니다.
“나무만 떠올렸어도….”
제수씨는 통곡했습니다. 직산까지 갔는데도 나무를 찾지 않은 스스로를 원망했습니다. 결혼 전 부부가 가끔 데이트를 하던 장소였습니다. 동생은 나무를 사랑했고 ‘천년나무’라고 불렀습니다. 동생과 두 팔 벌려 나무 둘레를 재며 놀았던 어린 시절을 저는 기억합니다.
삼성은 동생 주검 앞에 진심의 사과를“형,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살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거야.”
언젠가 동생이 전화를 걸어와 울며 말했습니다. 열심히 하면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말에 동생은 화를 냈습니다. “지금도 죽어라고 일하는데 얼마나 더 죽어라고 일해야 하냐”고 했습니다. 동생은 살려고 했습니다. 나약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전태일을 배우고 노조 활동을 열심히 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언젠가 전태일 교육이 끝났을 때 자리를 뜨지 않고 남아 있던 동생이 강사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열심히 하면 바꿀 수 있는 거죠?” 노조 출범 뒤엔 동료들과 입사 후 처음으로 여름휴가를 갔습니다. 동생이 말했습니다. “산다는 게 이렇게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요.”
동생은 병원 냉동고에 꽁꽁 얼어 있습니다. 동생이 얼마나 추울지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동생을 언제까지 냉동고에 둬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생과 동생의 동료들은 이건희 회장 같은 대재벌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가족과 소박하게 살고 싶었을 뿐입니다. 동생은 유언으로 말했습니다. 자신의 죽음이 노동자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살았을 때 지켜주지 못한 동생입니다. 죽으며 남긴 마지막 바람이라도 꼭 지켜주고 싶습니다. 동생의 유언이 이뤄지려면 삼성이 노조를 인정해줘야 합니다. 노조 없이 동생의 유언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삼성은 동생의 주검 앞에 진심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이문영 기자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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