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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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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백골 세상

고독사 남녀 세 사람의 백골 같던 삶
죽어서 썩어간 짧은 시간보다 살아 견딘 긴 시간이 훨씬 외로웠다
등록 2014-01-02 11:20 수정 2020-05-03 04:27
【백골화】

[법의학 용어] 사체의 연조직이 모두 붕괴돼 뼈만 남은 상태. 보통 백골화된 사체는 사후 수개월 이상 지난 것으로 추정한다. 사체에 산란한 곤충 알을 깨고 구더기들이 태어나면 연조직을 빠르게 먹어치우며 부패와 백골화를 촉진한다.

【목장갑】

[명사]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값싼 면장갑. 일반적으로 작업용 장갑으로 사용되나, 누군가에겐 옷이 되기도 하고 이불이 되기도 한다.

【이력서】

[명사] 개인의 학력이나 경력을 적은 문서. 취업을 위해 회사나 조직에 제출하는 가장 기본적인 서류지만, 누군가에겐 이룰 수 없는 꿈을 확인시켜주는 낙인이기도 하다.

【고독생】

[명사] 고독한 죽음 이전에 고독한 삶이 있음을 강조한 표현.

라면 한 개, 소주 한 병이었던 하루 식량
2013년 11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한 노인이 홀로 앉아 비를 피하고 있다.한겨레 김봉규

2013년 11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한 노인이 홀로 앉아 비를 피하고 있다.한겨레 김봉규

[사용례] 그 새끼가 다녀간 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 새끼가 나(57·남)의 집 담을 넘어 방문을 딴 게 3개월 전이다. 전화도 없었고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다. 술이 깼을 때 그 새끼가 말도 없이 다녀갔다는 걸 직감했다. 무정한 새끼. 소주 한 병 안 사온 새끼는 친구도 손님도 아니다.

야 이 개새끼야.

소주병 몇 개가 개 뒷다리에 차여 데굴데굴 굴렀다. 저 새끼 다리에 걸려 100여 개의 소주병이 엎어지고 깨지고 난장판이다. 방바닥에 코를 처박고 킁킁거리던 개새끼는 잠깐 흠칫하더니 금세 다시 코를 벌름거리며 바닥을 긁어댔다.

그 새끼가 왔다 간 것도 모르는 개새끼.

2012년 12월 여동생에게 1만6천원만 송금해달라고 부탁했다. 2000년 이후 여동생을 만난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족은 모래처럼 흩어졌다. 여동생은 불쌍하다며 5만원을 보내왔다. 개 짖는 소리를 들은 여동생이 전화기 너머에서 말했다.

“제 몸뚱이도 감당 못하는 주제에 무슨 개를 5마리나 키워. 얼른 내보내.”

나는 혼자 자고, 혼자 일어나며, 혼자 일하고, 혼자 운다. 폐허 같은 방에 쪼그리고 앉아 소주를 삼키며, 나는 내 집에서 노숙인처럼 살고 있다. 누구에게 뜯기고 누구에게 빨리는지도 모르는 나를 저 개새끼 5마리가 지켰다. 시끄럽고 냄새난다는 주민들을 피해 저 새끼들만 데리고 이곳으로 이사왔다.

나의 하루 식량은 라면 한 개와 소주 한 병이다. 사람들은 나를 알코올중독자라며 멀리했다. 내가 입을 열면 술로 절여진 내장 속에서 썩는 냄새가 피어오른다고 그들은 말했다. 그들이 나를 비난할 때마다 나는 그들과 싸웠고 경찰서로 불려갔다.

개새끼들아 간지럽다.

개 3마리가 자꾸 몸을 핥는다. 배고픈 녀석들은 내 팔다리가 밥인 줄 아나보다. 녀석들에게 한동안 먹이를 주지 못했다. 두 놈은 기력이 쇠했는지 꼼짝도 않는다. 개새끼들의 치우지 못한 똥만 방바닥에서 짓이겨지고 있다.

술이 오른 내 눈이 열목어(熱目魚) 눈처럼 빨갛다. 눈알에 열이 너무 나서 눈이 빨간 열목어는 수온이 올라가면 기진해 배를 드러낸다. 모두가 살아남느라 눈이 벌건 세상에서 빨간 눈을 식히려고 깊은 산속 차가운 물로 헤엄쳐 오른다. 죽어서라도 허연 배를 드러내놓을 수 있어 물고기는 다행이다. 편한 가로를 거부하고 힘든 세로로 버티느라 힘겨웠을 물고기가 힘을 빼고 뒤집어졌을 때의 편안함이 나는 부럽다.

개새끼들아 아프다.

머리를 핥고 눈을 핥아대던 개새끼들이 이빨을 세웠는지 온몸이 따끔따끔하다. 텔레비전을 언제 켰더라. ‘입력신호가 없다’는 글자만 화면을 채우고 있다. 개새끼들이 컹컹거리고 낑낑거린다. 짖는지 우는지 모를 소리가 슬레이트 지붕 너머로 기어오른다. 내장이 다 뽑힌 것처럼 몸이 가벼운데, 뱃속 저 밑에서 쓰린 허기가 깊다.

사람들은 나를 ‘꽃보살’이라 불렀다

당신이 다녀간 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당신이 나(67·여)를 버리고 간 게 5년 전이다. 어질러진 집도 그때 그대로다. 당신이 정지시킨 단절의 시간만큼 나는 주름졌고 말하는 법도 잊었다. 내 말이 들리냐고 내가 물었지. 못 들은 척 당신은 침묵했지. 정말 안 들리냐고 내가 물었지. 네 몫일 뿐이라고 당신은 침묵으로 답했지. 내 말이 당신에게 건너가지 못하는 동안 나는 묻다 지쳐 명태처럼 말라갔지.

오래 누워 지낸 방은 세월에 비례해 누추해졌다. 설움이 깊을수록 겨울은 빨리 온다는 사실을 나는 이 방에 누워 알게 됐다.

산 아래 단칸방 밖으로 초록의 기운을 느끼자마자 갈색의 계절이 닥쳤고 흰색의 한기가 몰려왔다. 집주인한텐 미안하다. 1999년 보증금 700만원에 월세 10만원으로 얻은 방인데 2년밖에 세를 못 냈다. 2001년 이후 동네 절에 살며 집주인을 피했고, 집주인은 보증금에서 월세를 까면서도 짐을 들어내진 않았다. 2008년 6월 마지막 건강보험료 독촉장이 배달됐고, 2008년 9월 집주인과 마지막으로 마주쳤다.

방바닥에서 냉기가 펄펄 끓는다. 아래위로 껴입은 아홉 벌의 옷을 뚫고 한겨울이 몸속으로 들어온다. 단칸방은 먹고 자는 공간으로 계약하지 않았다. 짐만 머무는 조건으로 얻은, 사람은 살 수 없는 쓰레기통 같은 방이다. 절 일을 도우며 1천원에 한 끼의 밥과 하루의 잠을 얻는 사람들은 절 주위에 값싼 방을 얻어 짐만 보관했다. 절 사람들은 나를 ‘꽃보살’이라고 불렀다.

꽃을 못 본 지 오래됐다. 쳐다볼 사람 없이도 피는 것이 꽃인데 창문 밖으로 꽃이 졌는지 폈는지 알 수 없다. 절을 떠나 몰래 숨어든 방에서 5년을 견디며 나는 누워 있다. 발엔 두꺼운 양말을 신었고, 손엔 목장갑을 끼었다. 아홉 벌의 옷과 두꺼운 양말과 실로 짠 목장갑은 추운 겨울과 추운 봄과 추운 여름과 추운 가을을 버텨준 ‘내 모든 온기’다. 숨어 있다지만 찾는 이가 없는 사람은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것이다. 40여 년 전 내 자궁을 찢고 세상에 도착한 아이들은 오래전에 내가 죽은 줄 안다. ‘발견되지 않는 시대’인 줄 알면서도 아직 쓸쓸한 걸 보니 내 마음이 딱딱해지려면 한참 멀었다. 한때 작은 생명들이 내 몸에서 보글거린 뒤부터 살이 급격하게 빠졌다. 옷도 양말도 장갑도 헐겁다. 뼈가 방바닥에 닿을 때마다 온몸이 덜그럭거린다. 천장에서 자라기 시작한 거미줄이 얼굴까지 뻗어내렸다. 절에서 가져온 목탁 옆에서 먹지 못한 밥 한 공기가 새까맣게 썩어 말라가고 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간

그놈이 다녀간 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놈이 나(34·남)의 목을 누른 건 8개월 전이었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원룸으로 그놈을 내가 불렀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 두통약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시간이 갈수록 머리가 무겁고 거추장스럽다. 밀가루를 북북 치대듯 뒤통수와 옆통수를 눌러 뇌를 짜내고 싶다.

이력서를 쓸 때마다 내 마음은 충혈됐다. 군대 제대, 대학교 졸업,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취득, 보일러 기사 자격증 취득…. 나의 이력서는 늘 거기서 멈췄다. 채울 것 없는 이력서를 쓰는 일은 취조하는 형사 앞에서 자술서를 쓰는 것처럼 잔인했다. 이력서의 여백 앞에서 내가 살아온 역사 전체가 하얗게 지워질 때, 나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간이 됐다. 야윈 이력서를 쓰고 찢을 때마다 살찐 이력서들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자꾸 마른 뼈가 돼갔다. 세상은 내게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세상의 벽에 부딪혀 내가 준비한 답은 그놈을 부르는 것이었다.

목이 축축 처진다. 머리를 지탱하느라 힘겨워 쭉쭉 늘어나는 것만 같다. 머리가 목에 붙어 있는지 의심스러운 나는 하루 종일 두개골을 노크하며 안부를 묻는다.

나도 꿈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허공에 머무르며 내 머리는 꿈을 기억하려 했으나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시를 좋아했다. 소박하고 따뜻하게 살고 싶다는 내 바람은 뜯어먹히고 발라진 생선뼈처럼 뾰족하고 무기력한 시가 됐다.

머리가 겨우 바닥에 닿았다. 화장실 공중에 매달려 있은 지 몇 달 만에 간신히 무거운 몸과 작별했다. 나는 더 가벼워진 것일까 더 무거워진 것일까. 누군가 그랬다지. “나는 원래 길 잃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며 구원받는 것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고.

구름 빽빽하고 싸늘한 날에 태양에 대해 생각했다. 태양이 갑자기 사라지면 생명도 함께 사라질지 궁금했다.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생명은 이토록 집요하고, 이토록 지독하며, 이토록 지겨우니까. 파리가 자꾸 달려든다.

고독사 이전, ‘고독생’을 살다

탕탕탕. 누군가 나(57·남)의 집을 두드린다. 그 새끼(죽음)가 다녀간 뒤 석 달 만에 처음 찾아온 사람이다.

2013년 3월 경기도 김포에서 혼자 살던 남자가 숨진 지 3개월 만에 백골화 상태로 발견됐다. 알코올중독과 간질환에 따른 사망으로 경찰은 추정했으나 정확한 사인은 미상이다. 남자의 몸엔 머리뼈와 골반뼈, 팔다리뼈만 남아 있었고 살은 없었다. 기르던 개 5마리 중 2마리는 바짝 말라 미라처럼 죽어 있었고, 살아 있는 개 3마리는 입 주위에 붉은 얼룩을 묻힌 채 통통했다. 뼈 주위마다 개에게 뜯어먹힌 흔적이 있었으며 뇌와 장기와 눈도 파먹히고 없었다. 3마리 개는 유기견 보호센터로 보내진 뒤 안락사됐다.

탕탕탕. 누군가 나(67·여)의 집을 두드린다. 당신(죽음)이 다녀간 뒤 5년 만에 처음 찾아온 사람이다.

2013년 9월 부산 부산진구에서 숨진 지 5년이 지난 할머니가 백골로 발견됐다. 난방이 되지 않는 집에서 추위에 떨다 사망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으나 동사인지 아사인지는 확증하지 못했다. 아홉 겹의 옷을 껴입은 시신은 발에 두꺼운 양말을 신고 손엔 목장갑을 낀 채 반듯이 누워 있었다. 구더기가 파먹고 남은 뼈는 앙상했다. 오래전 연락이 끊긴 자녀들과 이복동생은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

탕탕탕. 누군가 나(34·남)를 찾아왔다. 그놈(죽음)이 내 목을 누른 뒤 8개월 만에 처음 찾아온 사람이다.

2013년 11월 부산 동래구에서 숨진 지 8개월 된 남자가 백골로 발견됐다. 원룸 화장실 철봉에 케이블선이 감겨 있는 것으로 보아 남자가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군 제대, 대학 졸업, 워드프로세서·보일러 기사 자격 취득’ 사실만 기록된 이력서가 방에서 발견됐다. 시신은 몹시 부패했고 머리와 몸이 분리된 상태였다.

고독과 외로움은 수사되거나 부검될 수 있는 사인이 아니다. 나(57·남)와 나(67·여)와 나(34·남)는 죽어서 썩어간 짧은 시간보다 살아서 견딘 긴 시간이 훨씬 외로웠다. 나와 나와 나는 고독사 이전에 ‘고독생’을 살았다. 살았을 때 이미 몸의 살이 모두 뜯기고 마음의 살이 모두 발라진 백골이었다. 삶은 오로지 산 자의 몫이었고, 죽음도 오로지 죽은 자의 몫이었다. 나와 너와 우리에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삶과, 아무도 함께하지 않는 임종과,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죽음이 있을 뿐이다. 여기는 백골 세상이다.

*이 독자와 ‘恨국어사전’을 편찬합니다. 여러분의 恨국어를 제보(moon0@hani.co.kr)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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