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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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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도 밥도 자유도 없다 나는 헬바다

알바, 불의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불온한 노하우 ①
“기계가 될 수 없는 동지들이여, 전원 차단기를 내려라”
등록 2014-02-06 14:09 수정 2020-05-03 04:27
【꿀바】

[명사] 비교적 힘이 덜 들고 시급이 높은 ‘좋은 알바’. [반대말] 헬바. 힘들고 ‘나쁜 알바’를 뜻하는 은어.

【선인】

[명사] ‘꿀바’를 소개해주는 사람.

【먹튀】

[명사] PC방 등에서 게임비나 음식값을 내지 않고 도망가는 ‘먹고 튀는’ 손님.

【폐기】

[명사]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하는 식료품. 편의점은 일반적으로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밥값을 아끼려는 알바들은 ‘폐기’로 한 끼를 대신한다.

【생동성】

[의·약학]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지칭하는 알바계 준말. 새로 만든 복제약이 기존 의약품과 비슷한 약효를 내는지 검증하기 위한 테스트. 알바들은 돈 때문에 생동성에 자원하는 자신들을 ‘마루타’라고 부른다.

[사용례] 어떤 세계가 있다. 개인의 불행이 많을수록 전체의 선은 부푼다고 그 세계의 종교는 가르친다. 그 종교가 섬기는 신은 기하학적으로 일을 처리한다. 신은 노동(아르바이트·arbeit)의 갈비뼈를 떼어 알바를 창조했다. 자신을 대신해 세계를 건설한 노동을 신은 쪼개고 썰어 알바로 만들었다. 알바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했다. 의문을 억누른 채 평화로울 수 있다고 말하는 세계는 불의하다.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세계에 맞서 ‘받는 돈만큼만 일하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5210원(2014년 최저시급)어치만 일하는 법’이 절박한 어떤 세계에 그들이 있다.

차단기를 내려라 주사기가 팔뚝에 주둥이를 박고 피를 빨았다. 아침부터 1시간 단위로 ‘흡혈’은 계속됐다. 나(23·남)는 몽롱해지고 아득해졌다. 약에 반응하는 신체 변화가 내 피로 판독되길 의료진은 바라고 있었다. 허삼관(위화 소설 의 주인공)이 된 듯했다. 피를 팔아 내가 받을 돈은 40만원이었다. 나는 ‘1022번 마루타’였다.

입학 한 학기 만에 대학교를 자퇴하며 나는 다짐했다. 오직 마음이 원하는 길을 따라 살겠다. 생활비를 버느라 닥치는 대로 알바가 되면서, 휴대전화 사용료를 3개월마다 체납하면서, 나는 알게 됐다. ‘오직 마음이 원하는 길’은 ‘단지 마음이 원하는 길’일 수도 있다. ‘머나먼 꿈’ 앞엔 ‘잔혹한 밥’이 있었다.

온몸의 피가 머리로 쏠리는 듯했다. 비아그라 복제약을 삼킨 뒤부터 혈압이 뛰었다. 뭔가 스치기만 해도 따끔거렸고 불쑥불쑥 발기가 됐다. 온몸이 극도로 예민해진 채 수면과 각성을 오갔다. 병상 50~60개가 다닥다닥 붙은 임상센터엔 ‘고요한 사람들’이 있었다. 챙겨온 만화책 수십 권에 동요 없이 집중했다. 1년에 네 번(생동성은 3개월에 한 번만 지원 가능) 그들은 예외 없이 피를 뽑을 것이었다.

꿀바는 없다. 생동성이 꿀바일 리도 없다. 알바비는 불안의 크기에 비례(마약성 진통제 생동성은 80만~90만원)한다. 꿀바를 주선해 선인이 됐던 친구들도 며칠 뒤면 악인으로 돌변한다. 헬바는 차고 넘친다. 최악의 헬바는 프랜차이즈 PC방 야간 알바였다.

“너 왜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고 있어?”

전화기 너머에서 점장이 말했다. “충전할 때 빼곤 근무시간에 휴대전화 보지 말랬잖아.” 소름이 쫙 끼쳤다. 면접 때 점장이 했던 말을 그때 이해했다. “PC방에 사각은 없다.”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은 사장과 점장의 눈이었다. ㅈPC방 간부들은 자기 사무실에서 전국 알바들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녹화 영상을 몇 배속으로 돌려보며 근무태도를 체크하기도 했다. 나를 내려다보는 CCTV에서 그들의 눈알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들은 ‘인종주의자’가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알바는 가장 노골적으로 감시당하고 가장 당연하게 감시당하는 인종’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다.

그날은 너무 아팠다. 몸살이 자꾸 다리를 주저앉혔다. 사장은 ‘알바 무의자 원칙’을 고수했다. 나는 의자 없는 카운터에서 꼬박 10시간(밤 10시~다음날 아침 8시)을 서서 밤새 일했다. 라면을 끓였고, 재떨이를 비웠으며, 빈자리를 닦았고, 커피를 내렸다. 먹튀 손님들까지 잡아내야 했다. 먹튀는 전적으로 알바가 변상했다. 그렇게 나는 기계가 돼갔고, 그렇게 나는 기계가 될 순 없었다. 그래서다.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비법’을 공유한다.

시간을 잘 골라야 한다. 새벽 5~6시가 적당하다. 손님은 거의 없고 사장·점장도 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카운터 옆을 잘 찾아보라. 전원 차단기가 있다. CCTV가 보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바닥 청소하는 척하다 기습적으로 단행해야 한다.

나는 차단기를 내렸다.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사장님, 차단기가 내려갔어요. 수리기사를 불러야겠어요.” 잠결의 사장은 “알았다”고만 했다. 컴퓨터는 물론 CCTV까지 다운됐다. 개점 초기 기술자가 전압 검사를 하러 왔었다. 그가 차단기를 내렸을 때 CCTV까지 아웃되는 걸 보고 생각했다. 이거다.

나는 비로소 의자에 앉았다. 담배를 피웠고, 음료수를 뽑아 마셨다. 기계를 돌리던 모터가 멈추고 인간의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너무 오래 쉬어도 안 된다. 10~15분이 적당하다. 길어도 30분을 넘기면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아파도 쉴 수 없는 사람이 우리다. 하루의 휴식과 해고를 맞바꿔야 하는 사람이 알바다. 알바 동지들에게 ‘직방의 처방’을 드린다. “혹사당한 몸엔 차단기가 약이다.”

네 몫의 한 끼를 현금화하라 편의점도 CCTV의 지배를 받는다. CCTV 아래 자유의 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센터(그날 팔 물건들을 물류차가 한꺼번에 실어 배달하는 것)가 다녀간 새벽 1~2시는 알바에게 가장 피곤한 시간이다. 혼자 매장을 지키는 알바라면 더욱 지옥이다. 잠깐이라도 자줘야 죽지 않는다. CCTV를 속이고, 손님도 볼 수 있고, 자는 것도 들키지 않을 ‘고난도의 자세’가 필요하다.

카운터에 앉아 고개를 CCTV 반대로 돌린다. 손으로 턱을 받치고 시선은 카운터를 향한다. 다른 손을 카운터 위에 올려둔 뒤 휴대전화를 잡는다. 휴대전화를 보는 척하며 10여 분씩 눈을 붙인다. 주의할 점이 있다. 요즘은 1시간마다 손님 수와 매출액을 꼼꼼히 전산 대조하는 사장이 있다. 사장의 활동 시간을 파악해 피하는 게 좋다.

폐기는 ‘불가근불가원’의 물질이다. 편의점 알바들은 대부분 폐기로 밥을 때운다. 사장들 중엔 ‘매장 음식 2천~3천원어치를 먹으라’며 식사 제공을 대신하는 경우가 있다. 알바는 먹은 음식을 계산대에서 찍고 영수증으로 기록을 남긴다.

‘2천~3천원어치’를 현금화하라. 최저시급도 안 되는 급여에 보태라. 선대 알바들로부터 전수되는 유구한 노하우가 있다. 손님이 식료품을 살 때 버리고 간 영수증을 골라 2천~3천원 안팎으로 맞춘다. 식사 음식과 동떨어진 제품 영수증은 곤란하다. 영수증을 계산대에 넣고 2천~3천원을 꺼내 알바가 가지면 된다. 어디까지나 임시 처방이다. 폐기로 허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슬픔은 그대로다. ‘세상에서 가장 짠 성분’인 알바비의 염도를 낮추려면 알바 자신의 몸을 녹여 보태야 한다.

편의점 야간 알바만 5년 했다. 나(31·여)는 되고 싶은 게 없다.

이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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