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은어. 힘들고 부당한 일을 못 견딘 알바가 연락을 끊고 잠적하는 행위. 원뜻은 도망간 노비를 뒤쫓아 붙잡아 오는 일을 말한다.
<font color="#C21A1A">【스페어】 </font>[명사] 미용실에서 하루이틀 초단기 알바로 일하는 미용보조원. 별도 인력 채용 없이 스페어를 고용해 바쁜 일손을 해결하는 미용실이 많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허드렛일만 시키는 경우가 잦다. 용어에선 ‘잉여’로 바라보는 시선도 묻어난다.
<font color="#C21A1A">【장콜】</font> [명사] 인바운드(다산콜센터처럼 고객에게서 걸려온 통화를 처리) 콜센터에 전화한 고객이 장시간 끊지 않고 시시콜콜 묻고 따지는 경우를 뜻한다. <font color="#C21A1A">【진상콜】</font> [명사] 상담원을 괴롭히는 진상 고객의 전화. <font color="#C21A1A">【콜드콜】</font> [텔레마케팅] 아웃바운드(콜센터에서 고객에게 전화) 상담원이 인연 없는 고객에게 상품 구매나 투자·대출 등을 권유하는 전화. 고객은 일반적으로 냉담(콜드)한 반응을 보인다. <font color="#C21A1A">【오토콜】</font> [텔레마케팅] 기계가 자동으로 전화를 걸어 응답하는 고객을 대기 중인 상담원에게 연결하는 시스템. 상담원이 일일이 전화를 돌리는 시간을 줄여 통화 횟수를 늘리는 ‘효과’가 있다.
[사용례] 당신.
당신과 전화 통화할 때마다 나(24·여)는 두려웠다. 나의 전화를 재촉하는 당신과 나의 전화를 배척하는 당신과 나의 전화를 갈망하는 당신과 나의 전화를 모욕하는 당신 사이에서 나는 갈피를 못 잡고 허덕였다.
“다신 전화하지 마.”
전화기 너머에서 밀려오는 냉기와 적대로 귓속이 눅눅하고 아릿했다. “ㄱ은행입니다….” 당신은 첫마디부터 잘라냈다. “볼일 없수다.” 나는 반복 연습한 매뉴얼에 의탁했다. “ㄴ고객님….” 너무 파리해서 새된 욕설로 당신은 나의 발신을 끊었다. “좃까.” 검붉게 녹슨 철가루처럼 당신의 불쾌만 습한 공기 속에 남아 까칠하게 바스러졌다. 내 입 밖으로 뛰쳐나가려던 매뉴얼의 언어들도 더불어 소멸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찰나의 연결은 ‘관계’가 아니었다. 말은 숙련될 수 있어도 뚫린 마음은 연습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전화로 누군가의 마음을 사야 하는 자에게 <font color="#A6CA37">콜드콜</font>은 벗을 수 없는 굴레였다. 전화로 누군가의 요구에 답해야 하는 자에게 <font color="#A6CA37">장콜</font>과 <font color="#A6CA37">진상콜</font>이 족쇄이듯.
어차피 하나 마나 한 전화였을 것이다. ‘공짜 전화번호’의 주인은 더는 대출이 불가능한 사람들이었다. 당신의 허기는 시커먼 맨홀처럼 깊었고, 당신의 피로는 침몰하는 배처럼 묵직했다. 당신 중엔 젊은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당신의 불안정한 일자리와 불투명한 미래는 빚조차 고개를 돌렸다. 살이 모조리 뜯기고 발린 생선뼈처럼 빚진 당신의 목소리는 앙상하고 메말랐다.
당신.
당신은 ○(통화 성공)스럽다. 당신은 △(다시 통화)스럽고, 당신은 ×(통화 실패)스럽다. 전화번호의 가격만 보고도 나는 당신이 무엇스러울지 알 수 있었다. 전화 통화를 끝낼 때마다 동그라미와 세모와 가위로 당신은 분류됐다.
“뚝~.” ‘1천원짜리 당신’은 전화를 받자마자 끊었다. 1천원에 사들인 전화번호의 효용은 공짜 번호의 쓸모와 차이가 크지 않았다. 당신은 준파산 상태였다. 당신은 나의 말이 건너갈 틈을 주지 않았다. 30명의 번호를 누르면 2명 정도가 통화에 응했다.
“지금 바쁩니다.” 정말 바쁜 것인지 통화를 거부하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2천원짜리 당신’의 화법은 불분명하고 모호했다. 나는 당신이 대기업에서 일하는 아저씨쯤 된다고 생각한다. 담보를 끼고 2천만원 안팎을 빚진 당신의 전화번호는 2천원 안팎에 사고팔렸다. ‘바쁜 지금’이 지나면 추가 대출을 끌어낼 수 있다는 실낱같은 기대로 나는 다시 신호를 띄울 것이다.
“2시간 뒤에 다시 전화 주시죠.” ‘5천원짜리 당신’은 ‘다시’란 단어에 박하지 않았다. 대화를 잇진 못했으나 나는 한 차례 더 통화할 기회를 얻는다. 추가 대출이 가능할수록 전화번호는 비싸게 거래됐다. 공무원이거나 연봉이 높은 사람들이 5천원에 책정됐다. “다른 콜센터(대출 권유 아웃바운드)에서도 반응이 좋았던 번호”라며 사장은 번호 값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업계에서 당신은 뽑아낼 것이 꽤 남은 사람으로 공유된다.
당신.
당신의 직업과 당신의 대출 능력이 당신 번호의 가치를 결정했다. 빚이 많아 어떻게 쥐어짜도 추가 대출금이 고작 몇백만원인 번호는 값이 쌌다. 빚이 있어도 담보를 갖고 있으면 값이 올랐다. 5천만원쯤 빚진 당신에게 담보가 있다면 콜센터는 2천만원쯤 대출한 것으로 봤다. 소득 파악이 안 되는 자영업자들은 적은 돈을 자주 빌렸다. 이 콜센터에서 사고 저 콜센터로 팔리면서 당신의 번호엔 정보가 쌓이고 값이 매겨졌다. ‘이 번호는 실적이 좋았으니 값 좀 쳐줘야 한다’고 요구하거나 ‘이걸로는 별로 못 건졌다’며 덤으로 끼워주는 번호도 있다. 당신에게 신호를 보내며 우리의 전화는 ‘불법의 탑’을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나는 오랜 시간 야간 알바로 일했다. 중학생 때부터 여학생이 할 수 있는 ‘세상의 거의 모든 알바’를 했다. 시급 몇백원 더 벌려고 역류하는 위액을 되삼키며 밤을 낮처럼 일했다. <font color="#A6CA37">스페어</font>라는 알바가 있다. 이름부터 ‘스페어’인 족속이 살아가기에 이 세계는 너무 빽빽하고 빡빡했다. 시간당 5210원(2014년 최저시급)도 못 받던 나. 알바가 시급 7천원을 받으면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지 알고 싶었다.
당신과의 첫 전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휴대전화 구입을 권하는 아웃바운드 콜센터에서였다. 사장은 일 시작 뒤 두 주 안에 그만두면 일한 돈을 주지 않는다는 ‘노예 계약서’를 내밀었다. 두 주 이상 일해도 석 달 안에 그만두면 급여의 80%만 받는다는 데도 사인했다. 전화기를 들면 기계가 무작위로 전화를 걸었다. <font color="#A6CA37">오토콜</font>이라고 했다. 알 수 없는 번호로 알지 못하는 당신에게 기계는 지침 없고 거침없이 발신했다. 10분에 4통 이상씩 기계는 나를 당신에게 연결했다. 어떤 당신은 대꾸 없이 전화를 끊었고, 어떤 당신은 목청껏 소리 질렀으며, 어떤 당신은 나를 조곤조곤 모욕했다. 통화 시작 뒤 3시간이 지나서야 자신의 개인정보를 알려주는 첫 번째 당신을 만났다. 사장은 하루에 연락처 3개씩은 받아내라며 닦달했다. 자퇴생인 듯한 10대 수십 명이 기계가 안내하는 대로 당신들과 통화했다. 사장은 실적이 좋지 않은 직원을 옆에 앉혀 특별교육을 했다. 살아가는 것은 자주 나와 남을 속이는 일이란 사실을 그는 가르쳤다. 나는 탈진해 <font color="#A6CA37">추노</font>했다.
당신.
“ㄷ고객님, ㄱ은행입니다.” 당신은 물었다. “내 번호 어떻게 알았어요?” 매뉴얼대로 대답했다. “무작위로 걸었습니다.” 당신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선별된 타깃’이란 것까지 당신은 알았을까. 당신의 번호는 콜센터가 ‘시장’에서 값을 치르고 구입한 번호였다. 대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번호만 모아 콜센터 사장들에게 파는 사람이 있었다. 얼마 전 ‘사상 최대’라는 금융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있었다. ‘그렇게’ 털린 전화번호가 ‘이렇게’ 유통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저렴한 대출상품이 있어 전화드렸습니다.”
나의 하늘에 무지개 따위가 뜰 리 없다. 휴대전화 권유 콜센터를 참지 못해 추노한 내가 대출 콜센터에서 당신에게 빚을 권했다.
ㄱ은행은 미끼였다. 사장은 발신자의 정체를 묻는 당신에겐 ㄱ은행이라 밝히라고 지시했다. ㄱ은행이라고 하면 전화를 바로 끊지 않는 당신들의 심리를 이용했다. ㄱ은행과 콜센터 사이에 실제 ‘어떤 거래’가 있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사장은 ㄱ은행 전문 상담원처럼 목소리를 꾸미라고 했다. 나도 모르는 전문용어를 섞어 쓰라는 ‘가르침’도 받았다. 조심 많은 어떤 당신은 ㄱ은행에 전화해 해당 상품의 존재 여부를 확인(ㄱ은행은 실제 동일 명칭의 상품을 팔고 있어 당신이 사실관계를 파악하긴 쉽지 않다)한 뒤 나와 상담했다. 콜센터가 진짜 대행하는 것은 ㄱ은행이 아닌 대부업체의 대출 업무였다.
나는 싼 금리의 대출로 갈아타라거나 <font color="#A6CA37">대환</font>(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아 이전 대출·연체금을 갚는 것으로 카드대금 연체자가 연체금을 장기대출로 바꿔 분할 납부)을 권했지만 콜센터는 그 상품을 취급하지도 않았다. 당신을 추가 대출로 끌어들이는 ‘존재하지 않는 밑밥’일 뿐이었다. 애초 콜센터가 택한 당신은 싼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는 신용등급이 아니었다. 결국 전화 통화는 이름도 생소한 대부업체의 고금리 대출상품 안내로 이어질 것이다.
당신.
당신은 이혼 여성이라고 했다. 빚이 너무 많고 직장에서도 해고될 것 같다며 울먹였다. 이야기 들어줄 사람 하나 없던 당신은 대출 상담원인 나의 전화를 놓지 않고 황량한 삶을 하소연했다. 나의 머리는 파산을 신청해 빚을 털어내라고 이야기했지만, 나의 입은 추가 대출로 급한 불을 끄라(돌려막기)고 말했다. “건당 5천원 현금 박치기.” 전화 성공 실적이 시원찮다며 팀장들이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외쳐댔다. 빚에 허덕이는 당신이 파산할 때까지 대출을 권하며 나는 이 정글 같은 세상을 살았다.
대출을 파는 콜센터 언니들도 모두 채무자였다. 월급을 받으면 대출금 갚는 데부터 썼다. 언니들 몇 명은 각자 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 한 명씩 몰아주며 빚을 견뎠다. 내게 절대 ‘빚의 덫’에 걸리지 말라고 충고하던 언니들이 전화기를 들자마자 ‘싼 금리’를 읊으며 대출을 권했다. 당신에게 전화를 걸어 대출을 부추기는 언니들은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 대출을 종용하는 다른 언니들의 당신이었다.
나의 엄마도 빚쟁이다. 대출 권유 콜센터에서 오래 일했다. 이제 엄마는 ‘대출은 위험하다’고 설득하러 당신에게 전화한다. 대출 상환 능력이 없는 채무자와 파산 전문 변호사를 연결시키며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 빚쟁이 엄마는 오늘도 회생 콜센터에서 당신의 전화번호를 누르며 당신의 파산을 밑돌로 자신의 회생을 고대한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빚을 물려받은 한 선배는 추심 콜센터에서 일한다. 오빠의 빚 수천만원까지 떠안았다.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 ‘빚을 갚으라’고 당신을 닦달하느라 꿈도 친구도 잃었다. 그는 하루 벌어 하루밖에 못 사는 당신에게 전화를 걸어 상환을 독촉하고 그 실적으로 인센티브를 받는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선배는 <font color="#A6CA37">헬바</font>(힘들고 험한 알바)를 수없이 하며 나이 서른을 넘겼다. 선배에게 추심 콜센터 계약직은 지금껏 가져본 가장 안정된 직장이다.
당신.
당신과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나는 지쳐갔다. 당신과 통화할 때마다 찢어졌고, 병들었으며, 너덜너덜해졌다. 나와 당신의 세계에선 사람이 눈물이고 상처다. 나와 당신과 우리는 서로에게 당신이 되어 빚을 권하고, 뜯기고, 뜯는다. 나는 당신을 이용하고, 당신은 나를 적대하며, 우리는 서로에게 ‘당신이란 이름의 자본주의’가 된다. 너무 비열하고 악착같아 도망칠 수 없고 놓여날 수도 없는, 당신, 자본주의와의 미궁 같은 전화 통화.
이문영 기자<font color="#C21A1A">*이 독자와 ‘恨국어사전’을 편찬합니다. 여러분의 恨국어를 제보(moon0@hani.co.kr)해주세요.</font>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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