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제주도 강정천(서귀포시 강정동)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 일대. 매의 부리를 닮았다는 뜻으로 ‘맷부리’라 일컫는다. 한라산 줄기가 바다 앞까지 흘러와 툭 튀어나왔다고 해서 ‘묏부리’란 설도 있다. 선이 부드러운 구럼비와 비교해 거칠고 뾰족한 바위 생김새 때문에 ‘개구럼비’라고도 불린다.
【절대보전지역】[법] 제주도의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지정된 지역. 절대보전지역은 전국에서 제주도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환경보호 장치다. 해군기지 공사 착수를 위해 ‘날치기 해제’(2009년 12월23일 한나라당 도의원들 주도)된 절대보전지역은 강정과 제주의 한(恨)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고착】[경찰 용어] 경찰이 집회·시위 참가자 등을 둘러싸 꼼짝 못하게 만드는 진압 방식. 강정 지킴이들은 고착을 ‘인간 감옥’이라고 부른다.
【말질】[지명] 고려가 몽골의 지배를 받던 시절 ‘제주에서 기른 말을 몽골로 끌고 가던 길’에서 유래한 지명. 도로명 ‘대천동 말질로 14’와 접한 감귤밭은 강정마을 안에 있는 제주 4·3 학살터 3곳 중 하나(큰당밭 학살터)다.
【가매기 모른 식게】[제주 방언] 까마귀도 모르게 지내는 제사. ‘빨갱이’란 굴레를 쓰고 살아야 했던 4·3 생존자들은 희생자를 기리는 제사조차 남의 눈을 피해 지낼 수밖에 없었다.
[사용례] “무사(왜) 강정 왕(와서) 햄시니(저렇게 하냐).”
마을 어른이 목청을 돋웠다. 그가 뽑은 고성의 질책은 듣는 이 없는 한탄이 되어 공사장 저편으로 부서졌다. 해상 크레인들이 동정 없는 가시처럼 바다를 찌르고 헤집었다.
바람이 억셌다. 바다를 메워 만든 해군기지 공사장 흙길에서 먼지가 솟아 범섬까지 날아갔다. 하늘이 놓아버린 빗방울이 흙과 몸을 섞어 바다로 달려드는 날도 있었다. ‘파괴의 거처’가 될 땅의 잔해들이 일기(日氣)의 동요를 빌려 섬과 바다를 괴롭혔다. 흙탕물은 오·탁수 방지막을 넘고 흘러 연산호가 일군 ‘바다 꽃밭’까지 진군했다.
“우린 계획대로 하고 있으니 당신은 관찰하고 기록이나 하세요.”
‘맷부리 박’(본명 박인천·43)의 항의 전화에 기지사업단은 냉담했다. 관찰과 기록‘이나’가 아니었다. 그의 싸움은 ‘관찰’과 ‘기록’에서 시작했다. 보고, 살피고, 써서, 알리는 일은 가진 것이 눈과 글밖에 없는 자들의 하나뿐인 무기였다. 해군기지는 낮을 먹고 밤을 삼키며 쑥쑥 자라났다. 형상을 갖춰가는 거대한 괴물 앞에서 카메라와 전화기를 든 왜소한 남자가 ‘전쟁과 싸우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은어가 줄고 있어.”
그가 ‘냇깍’(강정천과 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폭포 형태를 띤 주상절리)을 바라보며 말했다. 은어도 알고 있었고 앓고 있었다. 강정천에서 태어나 바다로 여행 갔던 은어들은 매년 4~5월께 강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냇깍까지 차오르는 밀물을 타고 강을 거스르는 은어떼를 강정 주민들은 ‘올림은어’라고 이름 붙였다. 해군기지 공사장에서 모래를 파내면서 바다의 수심이 깊어졌다. 바닥이 구멍 난 바다로 강정천의 모래가 쓸려가면서 산란처를 잃은 은어들은 앓았다. 냇깍을 뛰어오르는 은어의 개체 수가 감소한 사실을 깨달으며, 맷부리 박은 파괴에 반응하는 바다의 이치를 읽었다.
맷부리였기에 그는 맷부리 박이 됐다. 뾰족하고 울퉁불퉁한 비정형의 바위 사이로 용암이 쓸고 간 맷부리의 길이 보였다. 현무암 구멍에서 싹을 틔운 육상의 식물들과 얕게 고인 물속에서 고물대는 수중의 생명들이 깨진 구럼비를 대신해 맷부리에 의탁했다. 지금은 일흔을 넘긴 마을 주민들이 4·3 때(1948년) 경찰을 피해 몸을 숨기던 곳이 구럼비와 맷부리였다. ‘절대’ 훼손해선 안 될 절대보전지역이었던 구럼비와 맷부리는 끝내 보전되지 못했다. ‘절대’는 난개발과 맞서온 제주도민의 열망이 분신(1991년 양용찬)까지 하며 얻어낸 두 글자였다. 구럼비가 조각조각 깨져 사라질 때 맷부리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사업 대표부지(강정동 2694)가 됐다.
맷부리 박은 강원도 사람이었다. 그가 맷부리를 집과 전쟁터로 삼은 지 1년6개월이 됐다. 2012년 7월 평화대행진을 따라 제주에 왔다 걸음을 멈췄다. 그는 한때 용접 노동자로 일했다. 사다리에서 용접을 하다 사고로 허리를 다쳤다. 노무사의 도움을 받아 산업재해 미가입 사업주와 2년을 싸웠으나 보상받지 못했다. 25년 전 ‘아는 형’의 공장에서 프레스기에 왼손 검지와 중지와 약지를 잃었다. 세상에서 거부당한 두 개의 손가락은 사람이든, 바위든, 바다든, 아픈 것들의 마음을 촉각하는 더듬이가 됐다. 한라산부터 강정까지 걸어왔다고 ‘한라산 아저씨’로 불렸던 그는 2013년 1월1일 맷부리에 천막을 치며 맷부리 박이 됐다.
맷부리의 이름을 얻은 남자는 기지 공사를 눈으로 ‘관찰’하고 글로 ‘기록’했다. 맷부리의 동쪽을 세로로 갈라 기지사업단이 펜스와 철조망을 세웠다. 살아 있는 것들의 접근을 불허하는 장벽 너머로 섬을 깨고 부수는 야만이 펼쳐졌다. 말질을 오갈 때마다 수치와 학살의 기억을 견뎠던 강정 주민들이 있었다. 가매기 모른 식게를 지내며 수많은 날을 숨죽여 살았던 그들이었다. 해군기지의 흙탕물이 범섬(고려 공민왕이 최영을 보내 제주에서 말을 기르던 원나라 관리 ‘목호’와 그들을 도운 제주도민들을 토벌한 곳)을 더럽히는 장면을 지켜보며, 맷부리 박은 ‘수탈의 섬’ 제주의 슬픈 역사를 알아가고 있었다. 언젠가 그는 기지사업단을 향해 “당신들도 감시받고 있다”고 쓰고 싶었다.
맷부리 박의 낡은 거처는 강정 바다처럼 수척했다. 맷부리 바위 틈새를 옮겨다니던 그의 천막은 “바람이 솔잎에 걸려 기분 좋은 소리를 내는 소나무 아래” 정착했다. 밤을 날 이불과 끼니를 때울 라면이 좁은 천막을 채웠다. 유통기한이 지난 빵은 개의 먹이로 수북했다. 섬 밖을 다녀오는 주민들이 그에게 개를 맡겼다. 누군가 말없이 나무에 묶어두고 간 개들도 그 빵으로 먹이고 돌봤다. 멀리서 묵주기도 소리가 들렸다. 맷부리는 전선의 척후로서 차라리 고요했다. 맷부리를 등진 공사장 진입로 앞은 매일 전쟁터였다. 공사장 입구를 막고 앉은 신부·수녀·주민·평화활동가들을 경찰이 번쩍 들어(이들은 ‘공중부양 당한다’고 표현) 한곳에 모아 고착시켰다. 날마다 강정 땅에 고착되면서 그들의 몸에선 강정에 붙박는 뿌리가 내렸다.
4월엔 주민들이 소음 고문을 당했다. 태풍 볼라벤(2012년 8월) 때 파손돼 방치된 케이슨(방파제 축조용 구조물) 분쇄 작업이 재개되면서다. 크레인이 사다리꼴 모양의 쇄암봉을 들어올려 바다 속에 잠긴 케이슨 위로 떨어뜨리면 70데시벨(dB) 정도의 소음이 발생했다. 그는 사진을 찍고 기지사업단과 해양경찰에 항의 전화를 걸었다. ‘또’ 찍고 ‘또’ 전화를 걸었으며, ‘다시’ 찍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기정사실’(기지 해상공사 공정률 약 60%)에 맞서는 방법은 ‘또’ 하고 ‘다시’ 하면서 포기하지 않는 것뿐이다. 맷부리 너머에서 움직이는 것은 파괴하는 것들밖에 없었다. 강정 앞바다가 잔인한 풍경 안에 갇히고 있었다.
‘썩은섬’(서건도) 주위에서 소라를 따는 해녀들이 보였다. 기지사업단의 예인선이 해녀들 옆에서 매연을 뿜어댔다. 새들이 공사장 매립지로 몰려들었다. 펌프 준설선 파이프에 빨려들어 죽은 물고기의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모래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모든 생명이 매립되고 있었다.
“너희들 때문에 나도 나쁜 놈이 돼간다.”
맷부리 박이 카메라를 들고 뛰었다.
이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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