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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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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행제로 피부색

식당 철거 위기에 맞서다 기소된, 소설 <나마스테>의 주인공 텐진 델렉 혹은 라마 다와 파상 혹은 민수씨…
아이 셋까지 낳아 가족 이뤘지만 벌금형 확정 뒤 ‘품행미단정’으로 귀화 불허
등록 2014-06-27 04:42 수정 2020-05-02 19:27
티베트 전통 상의를 입은 민수(오른쪽)씨와 이근혜씨가 티베트 음식점 ‘포탈라’ 주방에서 점심 손님을 맞기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있다. 김명진

티베트 전통 상의를 입은 민수(오른쪽)씨와 이근혜씨가 티베트 음식점 ‘포탈라’ 주방에서 점심 손님을 맞기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있다. 김명진

【품행 단정】

[명사] 품성과 행실이 얌전하고 바르다. 과거 도덕 교과서와 학교 급훈에서 자주 등장했던 이 단어가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면 무서운 칼로 변한다. 국적법 제5조 3호는 귀화 요건에 “품행이 단정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행정청에 광범위한 재량을 부여한 이 규정은 한국으로 귀화를 원하는 외국인들에게 ‘예측 불가’의 걸림돌이 돼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2년 12월 ‘품행 단정’의 구체적 기준이 없어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법무부 장관에게 기준 마련을 권고했다.

근혜씨 아버지 목숨값으로 얻은 식당

[사용례] 밖에선 녹슨 봄바람이 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국가를 향한 충성심이 없네요.”

면접관의 말이 어지러웠다. 출입국관리사무소(서울 양천구 목동) 귀화 면접실에서 아지랑이가 울렁거렸다.

국적난민과는 (이)근혜(35)씨가 그의 배우자가 맞는지 확인한 뒤 방에서 내보냈다. 두 명의 면접관이 번갈아 물었다.

“동해에 있는 한국 섬 이름이 무엇입니까.” “독도입니다.”

“한국은 민주주의국가입니까.” “민주주의국가입니다.”

“민주주의국가는 다수의 뜻에 따라 운영됩니까, 소수의 뜻에 따라 운영됩니까.” “….”

민수(38·박범신 소설 의 주인공 ‘카밀’의 실제 모델)씨는 어지러웠다.

“남북한 사이에 전쟁이 났습니다. 국민으로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휴대전화를 누르며 면접관이 물었다. 그가 등진 벽에서 각진 태극기가 울창했다.

“언론을 지켜보며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포탈라. 세계에서 가장 높은 땅(해발 3700m)에 세워진 궁전이다. 달라이라마가 진군하는 중국군에 쫓기며 망명 직전까지 머물렀던 ‘통한의 성소’다. 티베트 정치·종교의 중심이며 나라 잃은 민족 ‘독립의 상징’이다. 3평 좁은 면접실에서 그의 눈엔 포탈라가 어른거렸다.

“당신은 충성심이 없군요.”

휴대전화에 시선을 고정한 면접관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즐기면서 말했다.

머릿속에서 꿀벌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민수씨는 어지러웠다. ‘내 아이를 군에 입대시키겠다’는 말이라도 하라는 뜻일까. 국방의 의무로 충성심을 잴 수 있다면 충성심은 재산과 권력의 크기에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15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그는 체득하고 있었다. 그는 항변했다.

“아이가 셋입니다. 아이들을 지켜내는 것이 대한국민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음날(2013년 4월17일) 그에게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귀화 면접심사 재면접 처리되었습니다. 법무부 국적난민과.”

텐진 델렉. 달라이라마(제14대·본명 텐진 갸초)로부터 받은 이름. 1950년 망명하는 지도자를 좇아 인도로 이주한 티베트인의 손자. 그에게 식당 포탈라(서울 명동)는 중국의 티베트인 대량학살(2008년 3월) 직후 한국에 티베트의 눈물을 알리려 놓은 징검다리(국내 유일의 티베트 음식 전문점)였다.

라마 다와 파상. 라마 불교의 ‘라마’를 성씨(티베트 이름엔 성이 없음) 삼아 지은 네팔 이름. 네팔 카트만두에 정착한 ‘티베트계 네팔 국적’ 카펫 사업가의 반항아 아들. 그에게 포탈라는 만삭(셋째아이)의 아내 근혜씨가 7개월간 식당 바닥에서 자며 철거용역들로부터 지켜낸 근혜씨 아버지의 목숨값(1989년 노태우 정권의 노점상 단속에 항의하며 분신한 이재식씨의 민주화운동 유공자 보상금으로 얻은 식당)이었다.

“사람 위험해요”라고 외친 죄

민수. 그에게 멸시와 모멸을 선사한 한국 공장(1997~2007년 이주노동)에서 부르기 편하다며 붙인 이름. 스스로는 입에 올리지 않았던 ‘공장용 이름’이 언제부턴가 진짜 이름이 돼버린 남자. 그에게 포탈라는 ‘네 가지 죄명’에 맞서 2년간 법정싸움을 벌이는 동안 한국의 완고함에 밀려나는 ‘이방인’을 상징했다.

문자메시지(2013년 5월15일)가 도착했다. “귀화 (재)면접심사 안내. 5월29일 오전 11시30분. 서울출입국사무소 별관 2층 A.” 면접관은 혼자였다. 같은 절차가 반복됐다. 애국가를 불렀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으며, 국민의 4대 의무를 외웠다.

“죽여.”

2011년 9월9일 철거용역들의 주먹이 세입자대책위 방송차량 유리를 깨고 날아들었다. 승합차 위로 올라가 발을 구르며 몽둥이로 차를 부수었다. 핸들 위로 엎드린 그의 목에 밧줄을 걸어 차에서 끌어냈다. 집단폭행을 당하며 그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폭력을 신고하러 경찰서에 갔을 때 용역 두 명이 뒤따라 들어왔다. 한 명은 손가락뼈가 부러졌다며 깁스를 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허리를 다쳤다며 다리를 끌었다. 민수씨가 방송차로 자신들을 치려 했다고 그들은 주장(재판 과정에서 과거 다른 일로 부상당한 사실이 드러나 무죄판결)했다. 경찰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처법) 위반이라며 민수씨에게 수갑을 채웠다. 경찰은 ‘외국인’인 민수씨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편견은 국적이 아니라 피부색에서 비롯된다는 사실( 226쪽)을 그는 모르지 않았다.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라고 누군가(신현림) 썼다. ‘텐진 델렉이자 라마 다와 파상이면서 민수’인 그가 그냥 민수가 되는 것은 자신과 가족을 지키려는 다급한 싸움이었다.

문자메시지(2013년 5월30일)가 도착했다. “귀화 면접심사 합격하였습니다.”

“크레인 움직이지 마요. 사람들 다쳐요.”

2011년 9월5일 철거용 크레인에 사람이 올라갔다. ‘철거 반대’를 외치는 남자를 태운 채 크레인이 움직였다. “크레인 안 돼요. 사람 위험해요.” 소리치는 민수씨를 경찰이 연행해 3가지 혐의(업무방해·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공무집행방해)를 붙였다. 유치장에서 이틀을 갇혀 있다 풀려났을 때 용역에 밀려 넘어진 근혜(당시 세입자대책위원장)씨는 유산 위험으로 입원해 있었다. 2008년 민수씨와 임대계약을 한 건물 주인은 한 달 반 만에 재개발 회사(명동도시환경정비사업)에 건물을 넘겼다. 철거민이 된 민수씨는 뇌수막염을 앓았다.

올해 초 대법원은 벌금 500만원을 확정 판결했다.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폭처법 위반 혐의가 무죄로 입증됐으나 벌금은 1심 300만원에서 거꾸로 뛰었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기억들”로 남았다. 귀화 허가 최종 통보가 늦어지고 있었다. 대법원 판결 전 법무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진행 중인 재판 결과가 나왔냐”고 국적난민과 직원이 물었다. 민수씨는 불안해졌다.

“귀화 신청이 불허되었습니다”

문자메시지(2014년 3월12일)가 도착했다. “라마 다와 파상님. 귀화 국적 신청이 불허되었습니다. 법무부 국적난민과.” 불허 사유는 ‘품행 미단정’이었다. “1997년 10월부터 2007년 1월까지 9년3개월간 불법체류”한 사실(벌금 납부 2년 뒤 실효)까지 품성과 행실이 바르지 못한 이유에 포함시켰다. 귀화 불허는 강제퇴거로 이어질 수도 있다.

민수씨의 귀에 지구가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회에 계속)

이문영 기자*귀화 불허 취소를 요구하며 민수씨가 제기한 행정소송이 6월20일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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