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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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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설주의 ‘디오르’는 개혁·개방 메시지?

추문설 논란 뒤 24일 만에 공개 석상 나타난 김정은의 여인 리설주
거침없고 화사한 퍼스트레이디는 북한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까
등록 2013-10-15 15:46 수정 2020-05-03 04:27

그러니까 24일 만에 북한 TV에 등장했다고 남한 TV와 신문이 일제히 대서특필해대는 사람이 궁금했다. 이건 뭐 24년 만의 외출도 아니고, 수지나 설리만큼 예쁘지도 어리지도 않은데 도대체 왜 이 난리? 남한에는 ‘퍼스트레이디’가 없어서 그런가?
리설주.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부인이다. 우리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리씨의 이력은 대략 이렇다. 1989년생으로 만 24살, 키 164cm.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북한 최고의 예술중학교인 평양 금성 제2중학교를 다녔다. 그때 남한 땅을 밟은 적도 있다. 청년학생협력단(124명)의 일원으로 인천 아시아육상경기대회(2005년)에 참가했단다. 중국에서 성악을 공부한 뒤 은하수관현악단의 가수가 됐다. 2009년 김정은 위원장과 결혼해 슬하에 딸 하나를 뒀다. 딸 이름은 주애. 근데 이게 또 닭살 행각?
북한에선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 붙이는 풍습이 있단다. 김정은 비서의 아버지 김정일이란 이름은 부친인 ‘김일성’에서 ‘일’을, 모친인 ‘김정숙’에서 ‘정’을 따왔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자녀의 이름을 자기 이름의 ‘정’자를 따서 ‘정남’ ‘정철’ ‘정은’ ‘여정’이라고 지었다. 그럼 ‘주애’는? 김정은 비서가 자신의 이름자 대신 리설주의 이름자를 따서 붙였단다. 아내 사랑이 그만큼 달달하다는 얘기? 여기서 예언 하나, 김정은과 리설주가 딸을 또 낳으면 내 이름, ‘은주’ 나온다. 잘 조합해보시라.
한때 리씨를 둘러싼 추문설이 퍼진 적 있다. 등 일부 언론과 일부 북한 소식통의 입이 근원지였다. 은하수관현악단과 왕재산예술단 일부 단원들이 음란 동영상 촬영 혐의로 공개처형됐는데, 이는 이들의 혐의에 리씨가 연루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추문설의 뼈대다. 사실 여부? 현재로선 확인할 길은 없다. 지난 10월8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에 나와 일부 단원이 처벌받은 사실은 있다고만 밝혔다. 북한 당국은 추문설과 관련해 “모략적 악담질”이라고 분개했다. 어쩌랴, 그것도 모두 ‘공개 연애’의 숙명? 하여튼 논란 속에 공개 석상에서 사라졌던 리설주는 10월9일, 24일 만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활짝 웃으며 에 재등장한다.
지난 1년간 익숙해져서 그렇지, 리씨가 남편 김정은 비서의 팔짱을 끼고 공개 석상에 나타나는 건 어마어마한 파격이다. 기억해보라, 김일성·김정일, 그들은 항상 혼자였다. 옛 소련과 중국 주석 등 사회주의 체제 지도자들도 다 그랬다. 예외라곤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아내 라이사가 유일하다. 서방세계의 대통령이나 총리처럼 그들은 해외 순방에도 동행했다. 라이사는 화제를 모았고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김성재 연세대 석좌교수는 말한다. “북한 여성은 통상 한복을 입는데 리설주는 멋진 양장을 한다. 최고지도자의 의상은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곧 리설주의 의상은 개혁과 개방의 메시지다.” 짧은 쇼트커트의 리설주는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핸드백과 티파니 목걸이를 걸치고 밝은색 원피스와 하이힐을 즐긴다. 스위스에 체류했던 김정은도 유럽의 잔디광장이나 테마파크 조성에 나섰다니 부창부수(婦唱夫隨)가 따로 없다. 그렇게 리설주란 이름은 회색빛 북한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끄는 것인가.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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