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주말, 강화도로 회사 MT를 다녀왔다. 금요일 밤부터 다음날 오후까지 이어진 가열찬 술자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내는 끼니도 거른 채 하루 종일 잠만 잤다고 했다. 저런, 남편 없는 주말이 심심했구나. 그래서 계속 잤구나. 그럼 내가 저녁을 차려줘야겠구나.
집 앞 슈퍼에서 장바구니를 든 채 생각에 잠겼다. 김치찌개라도 끓이고, 그것만으로는 심심하니까 달걀찜을 푸짐하게 만들어보면 어떨까. 돼지 목살을 비롯해 필요한 재료들을 후다닥 챙겨넣었다. 집에 들어갔다. 과연, 아내는 핼쑥한 표정으로 아직도 절반쯤 잠에 취해 있었다. “정말 배가 고픈데, 정말 졸려. 그래서 계속 잤어.” 잠 때문에 끼니를 놓치고, 배가 고프기 때문에 다시 잠들어야 하다니. 허기와 졸음의 변증법이랄까. 이건 뭐 무간지옥도 아니고, 어떤 비애마저 느껴졌다.
조금만 참으라.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밥을 안치고, 냄비에 돼지 목살과 장모님표 묵은지를 썰어 넣은 뒤 약간의 물과 함께 자박자박하게 끓였다. 고명으로 올릴 재료를 손질했다. 표고버섯에 칼집을 내고 살짝만 데쳤다. 냉장고 안에서 굴러다니던 생밤을 소금물에 삶고, 쑥갓의 줄기 부분을 잘게 다졌다. 줄기는 달걀찜 위에 올리고, 잎 부분은 찌개에 넣을 요량이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달걀 5개를 잘 풀고, 가쓰오부시 장국과 간장, 물을 적당히 섞어 양념물을 만들었다. 달걀물과 양념물은 1대1 정도의 비율로 섞었다. 접시를 위에 덮은 그릇을 찜통 안에 넣고 뚜껑을 덮었다. 3~4분가량 강한 불로, 표면이 어느 정도 단단해진 뒤에는 약한 불로 8분가량 더 쪄내 속까지 잘 익도록 했다. 뚜껑을 열어봤다. 너무 단단하지도, 너무 무르지도 않은 부드러운 달걀찜의 표면이 반짝거렸다. 그 위에 삶은 표고버섯과 밤을 수북이 쌓아올린 뒤 쑥갓 줄기를 듬뿍 뿌렸다.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에 마지막으로 두부 반 모와 쑥갓을 넣고 살짝 숨만 죽여 완성했다.
지난 추석 처가에서 챙겨주신 열무김치와 파김치를 곁들여 상을 차렸다. 한 숟갈 크게 퍼올린 달걀찜이 손의 움직임을 따라 찰랑거렸다. 간간한 장국 맛이 나는 달걀찜을 입안에 넣으니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표고버섯이나 밤과 함께 먹어도 잘 어울렸다. 마지막에 씹히는 쑥갓의 향이 상큼했다.
갓 지은 하얀 쌀밥에 달걀찜을 양껏 넣어 비빈 뒤 팔팔 끓여 부드러워진 묵은지 한 점과 돼지 목살을 그 위에 올려 입안에 밀어넣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아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배를 두드렸다. 그런데 가만, 내가 배가 고팠던가? 강화도에서 꽃게탕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한 게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그런데도 밥 한 공기를 또 비우고 말았다. 망했다.
송호균 사회부 기자 uknow@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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