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막걸리 대학교’다웠다. 그땐 막걸리를 정말 많이 마셨다. 학교의 풍토가 그랬다. 비가 오면 비 온다고, 눈이 오면 눈처럼 하얀 술이라고, 신입생 들어왔다고, 시험 때라고, 방학했다고, 개학했다고 마셔댔다. 어, 오늘은 아무 일도 없네? 그러면 또 막걸릿집에 모였다. '초식'도 다양했다. 평범한 대접에도 마시고, 냉면 사발에도 마시고, 병째로도 마셨다. 문대 풍물패 행사에 놀러갔다가 들이켠, 꽹과리에 담긴 막걸리에선 비릿한 쇠맛이 났다. 선배들은 자기 몸에 붉은 피가 아닌 막걸리가 흐른다며 되도 않는 구라를 쳤다.
학교에서 내로라하던 주당들이 즐겨 찾던 막걸릿집이 몇 군데 있다. ‘누나집’의 누나는 오토바이에 막걸리를 말통으로 싣고 다니며 학교 안으로 배달을 해줬다. 대낮에 찾아가 배고프니 밥 좀 주시오, 하면 달걀부침을 얹은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줬다. 물론 공짜였다. 3학년 때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게를 다른 분에게 넘겼는데, 외상값은 다 갚았는지 기억이 안 난다. 어디에서든 늘 건강하시길 빈다.
‘나그네파전’으로 유명한 파전 골목길에선 입구에서부터 기름 지지는 냄새가 났다. 6천원짜리 파전은 그 크기와 두께가 패밀리 사이즈 피자보다 컸다. 대파 반 단과 오징어 한 마리가 다 들어간다는 설이 있었다. 파전을 반으로 가른 뒤 쟁반만 한 접시에 담고, 그 사이에 간장 종지를 얹어 내줬다. 그렇게 두꺼운 파전을 태우지 않으면서 속까지 잘 익히는 기술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어쨌든 막걸리는 끝없이 들어갔다. 아내와 연애를 시작한 뒤에도 몇 번 간 적이 있다. 물론 10년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격은 올랐고 크기는 작아졌다. 그래도 맛은 그대로였다. 막걸리 대학 출신도 아닌 아내는 넙죽넙죽 잘도 받아마시다가 인사불성이 되곤 했다.
옛 기억을 되살려 파전을 만들기로 했다. 나그네식 파전은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겸손하게 쪽파와 해산물이 들어가는 동래파전을 준비했다. 흙 묻은 쪽파는 미리 다듬어 길이를 맞춰뒀다. 양파 반 개를 다져 묽은 밀가리(밀가루) 반죽에 섞었다. 오징어 한 마리를 손질한 뒤 손가락 굵기로 썰었다. 동래파전은 재료들을 반죽에 미리 섞어 부치는 게 아니다. 기름을 두른 팬에 쪽파를 가지런히 놓고, 그 위에 오징어를 흐트러트렸다. 밀가루 반죽을 적당히 부은 뒤 젓가락으로 쪽파를 살살 벌려가며 그 사이에 반죽이 스며들게 했다. 어느 정도 익었을 때 달걀 두 개를 적당히 풀어 맨 위에 뿌렸다. 그리고 딱 한 번만 뒤집어 반대편을 노릇노릇하게 지졌다. 식감을 살리기 위해 절대 파전을 눌러 익히면 안 된다. 가위로 자른 단면에 쪽파의 구멍이 살아 있어야 진짜 동래파전이다.
파전 한 장과 막걸리로 차린 조촐한 술상이 정겨웠다. 통통한 오징어와 아삭한 쪽파가 살아 있었다. 느끼할 수도 있는 기름맛을 투명하게 잘 익은 양파의 단맛이 잡아줬다. 아내는 막걸리에서 맥주로, 다시 와인으로 주종을 바꿔가며 달렸다. 시큼털털한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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