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송호균
아내는 3일째 고기로 회식을 했다고 했다. 과연, 눈빛이 노리끼리한 게 심상치 않아 보였다. 고기가 잘못했네. 그럼 오늘은 풀 좀 먹자. 풀을 먹되, 맛도 포기할 수 없다면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가지나 감자, 양파, 각종 버섯, 두부 등을 불판에 구워 먹는 거다. 상추와 깻잎을 한 손에 펼쳐 들고, 따뜻하게 구워진 채소와 버섯 등을 올린 뒤 쌈장과 마늘을 곁들어 먹으면 마치 고기 파티를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의외로 맛도 좋다. 배가 터질 때까지 먹어도 속은 편안하다. 그 효과는 다음날 아침에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는 색다른 시도를 해봤다. 월남쌈이다. 얇은 라이스페이퍼에 고기나 채소 등의 재료를 싸먹는 월남쌈은 물론 베트남에서 유래됐다. 베트남어로는 ‘고이꾸온’이라고 한단다. 라이스페이퍼는 휴대가 간편하고 상하지 않으며, 물에 적시면 바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전쟁통에는 군인들의 비상식량으로도 애용됐다고 한다. 호찌민의 군대는 그 안에 뭘 넣어서 먹었을까? 정글인데? 어쨌든 월남쌈은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간 베트남 이민자들에 의해 쌀국수와 함께 대표적인 ‘상품’으로 개발됐다.
라이스페이퍼와 양상추, 오이, 파프리카, 당근, 무순, 새싹잎 등 각종 샐러드 재료를 샀다. 혹시 심심할지도 모르니 게맛살도 챙겼다. 절반은 게맛살을 넣고, 절반은 채소만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각종 재료들을 손질한 뒤 따뜻한 물을 볼에 담았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바삭하게 말라 있는 라이스페이퍼 한 장을 물에 담갔다. 투명하게 풀어지기를 기다려 물기를 살짝 뺀 뒤 속재료를 조금씩 넣고 돌돌 말아줬다. 의외로 손이 많이 갔다. 한 장을 말면서 다음 라이스페이퍼를 물에 넣어야 하는데,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찢어지기 일쑤였다. 게맛살이라는 변수가 추가되자 손이 더 꼬였다. 포디즘(소품종 다량생산)에서 포스트포디즘(다품종 소량생산)으로의 이행이랄까. 우여곡절 끝에 한 접시는 완성했다.
스위트칠리소스에 찍어 먹는 월남쌈은 상큼했다. 투명한 라이스페이퍼 아래로 터질 정도로 푸짐하게 밀어넣은 각종 채소가 싱싱해 보였다. 한입 베어물자 ‘와사삭’ 하며 양상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부부가 앉아 몇 개 집어먹다보니 벌써 한 접시가 다 사라졌다. 원래 월남쌈을 만들던 과정에, ‘식탁으로 뛰어가 접시를 집어든다’ ‘부엌으로 돌아와 재빨리 쌈을 싼다’ ‘완성품을 다시 식탁으로 배달한다’는 프로세스가 추가됐다. 모양이고 뭐고, 대충대충 말았다.
그래도 맛은 똑같았다. 슬슬 배도 불러왔다. ‘오늘만은 풀’을 외쳤던 아내의 눈에 허전한 기운이 스쳤다. 슬쩍 일어난 그녀는, 지난 명절 때 남아서 얼려뒀던 고기전과 동그랑땡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있었다. 나도 애써 말리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절대 고기는 끊지 못하겠구나. 그랬다. 아내의 ‘고기 회식’은 4일차를 맞았다.
송호균 사회부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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