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다이어트를 선언했다. 시작한지 석 달도 안 된 본 칼럼도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원래는 프라이드치킨을 만들려고 했다. 용암처럼 뜨거운 기름이 바삭바삭한 튀김옷 사이를 무서운 기세로 파고든다. 잘 튀겨진 닭다리살이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 한 모금과 입안에서 섞이는 순간의 짜릿함, 캬오~! 가정식 치맥의 꿈은 김 빠진 맥주 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각종 채소와 닭가슴살을 함께 삶아 치킨스톡과 채소스톡의 맛이 동시에 나는 정체불명의 음식(그것을 음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으로 3일째 연명하는 중이었다. ‘마녀의 수프’란다. 어떤 레시피를 제시해도 퀭한 눈의 마녀는 쓸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고 오직 칼럼만을 위해 그녀의 다이어트를 포기시킬 수도 없는 노릇. 대안이 필요했다.
손님상을 차릴 때 가끔 냈던 잡채를, 당면 대신 실곤약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칼로리는 대폭 낮추고도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곤약을 가는 면발로 가공한 실곤약은 원래 열을 가하지 않고 찬물에 씻어 쓴단다. 생각보다 면발의 탄력이 나쁘지 않았다. 염분은 최소한으로 줄이기로 했다. 각 재료의 맛을 살리기 위해 따로 볶아주는 게 잡채의 생명이렷다. 닭가슴살을 삶는 사이 두 가지 색의 파프리카, 양파, 당근을 가늘게 채썰어 올리브오일 몇 방울에 약간의 소금과 후추를 넣고 차례로 볶았다. 느타리버섯과 삶은 껍질콩, 살짝 데친 뒤 물기를 뺀 시금치도 같은 방법으로 볶았다. 닭가슴살은 가늘게 찢어만 뒀다. 뭔가 단백질을 더하고 싶었다. 두부를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만 가늘게 썰어 팬에 구운 뒤 고명으로 쓰기로 했다.
준비한 재료들과 실곤약을 커다란 볼에 넣고, 약간의 간장만을 넣어 버무렸다. 참기름도 살짝 둘렀다. 곤약 잡채를 접시에 담고 구운 두부를 올린 뒤 참깨를 뿌렸다. 모양만은 그럴듯해 보였다. 소금기와 기름기가 도는 음식을 며칠 만에 마주한 그녀가 젓가락을 들었다. 후루룩! 한입 가득 밀어넣는 모습이 안타깝기까지 했다. “이건…, 이건 천상의 맛이로세!”
과연, 곡기와 고기를 동시에 끊은 게 며칠이던가. 구두를 삶아 먹여도 맛있게 먹어줄 그녀였다. 따라서 한입 먹어봤다.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평생을 대식가, 애주가, 애연가로 살았던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말했다. “먹고, 마시고, 피울 수 있는 모두를 엄격하게 물리치는 사람들이 있다. 건강이라는 이유로 이 모든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그리고 얻는 것이란 오로지 건강뿐이다.” 즐길 건 즐기고 살자는 얘기다. 그러고도 천수를 누린 그는 핼리혜성이 돌아오는 해(1835)에 태어나, 다음 핼리혜성이 돌아오는 해(1910)에 죽었다. 실곤약 잡채를 만든 그날 저녁 내린 결론이다. 마크 트웨인이 옳았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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