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오늘은 밥을 먹자.”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동안은 ‘밥’이 아니었단 말인가. 생각해보니 그랬다.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칼럼을 쓰고 있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사실 부부가 집에서 차려 먹는 식사는, 한 러시아 혁명가의 표현을 빌리면 ‘칼럼용’이 99%는 아닐지라도 90%는 됐다. 맞벌이인 탓에 평일 저녁은 거의 각자 해결하고, 주말에는 왠지 귀찮아져서 외식을 하는 일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어쩌다 한 번씩 어렵게 시간을 만들어 해먹었던 ‘집밥’은 정겨웠다. 거창한 요리는 필요 없었다. 대충 끓인 김치찌개에 물기를 탁탁 털어낸 푸성귀를 쌈장, 풋고추와 함께 차린 밥상만으로도 즐거운 저녁이었다. 늦은 밤 야식의 유혹이 밀려들면 냉동실에 넣어둔 국수를 삶아 찬물에 씻은 뒤 고추장 양념에 송송 썬 김치를 곁들인 비빔국수를 만들었다. 각자의 그릇에 깔끔하게 담아내기보다 양푼에 대충 비벼 이마를 맞대고 먹어야 제맛인, 그런 비빔국수 말이다.
고백하건대, 칼럼을 시작한 뒤에 그런 기회가 오히려 줄었다. 며칠 전부터 메뉴를 고민하고, 거창하게 장을 보고,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 몇 시간 동안 부엌에서 씨름했다. 배고파 죽겠다며 달려드는 아내를 저지하고, 밥상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사진을 찍어댔다. 그리고 결과물을 두고 아내가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괜히 서운해했다. 생각해보니 칼럼을 시작한 뒤에 쌀 소비량이 더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정체성의 혼란은 그렇게 찾아왔다. 요리사도 아닌 주제에, 나는 혹시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쇼윈도 음식’을 만들어왔던 건 아닐까?
오케이, 집밥을 먹자. 일단 냉장고를 뒤졌다. 얼린 오징어 두 마리가 나왔다. 이걸로 뭘 할까. 일단 녹였다. 당근과 양파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꺼내뒀다. 밖에 나가 두부 한 모, 미나리, 양송이버섯, 막걸리 한 통을 사왔다. 다진 마늘과 간장, 고춧가루로 간단한 양념장을 만든 뒤 당근과 양파에 버무려 뜨거운 팬에 던져넣었다. 단단한 재료를 먼저 볶아 익는 속도를 맞추는 것이 포인트다. 슬라이스한 양송이버섯이 그다음이었다. 적당한 길이로 투박하게 썰어낸 미나리와 오징어를 마지막에 넣어 익힌 뒤 통깨를 뿌려 완성했다. 소금과 후추로 살짝 간한 두부는 기름을 두르지 않은 팬에 구웠다. 막 지은 따뜻한 쌀밥에 오징어볶음과 두부구이, 그리고 김치로 조촐한 밥상을 완성했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준비하는 시간은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심심하면서도 푸짐한 오징어볶음은 그냥 먹어도 짜지 않아 좋았다. 아직 아삭함이 살아 있는 미나리와 함께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하얀 쌀밥 위에 얹어 양볼이 터지게 씹었다. 잘 구운 두부에 김치 한 조각을 곁들이니 반찬으로도, 막걸리 안주로도 충분했다. 그래, 이런 느낌이었지. “집밥, 좋다!” 아내는 그 어느 때보다 맛있어했다. 여보, 미안해. 앞으로 집밥 자주 해줄게요.
송호균 사회부 기자 uknow@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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