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심플한 마르게리타 피자를 만들려고 했다. 바삭한 도(밀가루 반죽)에 향긋한 토마토 소스와 부드러운 모차렐라 치즈가 혀가 델 정도의 온도로 뜨겁게 엉겨붙어 있다. 한입 베어무는 순간 스르르 눈이 감기며 자신도 모르게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을 떠올린다. 아내는 대학생 시절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먹었던 마르게리타 피자 이야기를 아직도 가끔 한다. 잊히지가 않는다는 거였다. 당장 장을 보러 갔다. 생 모차렐라 치즈와 홀 토마토, 밀가루 등 기본적인 재료를 챙겼다.
그대로 돌아가야 했다. 이놈의 욕심이 문제였다. 모차렐라 치즈의 부드러움과 체더 치즈의 짠맛이 어우러지면 어떨까. 베이컨도 조금 넣을까. 양송이도 싱싱해 보였다. 기왕이면 검은 올리브를 살짝 올리면 눈도, 혀도 즐겁겠지. 꽉 찬 장바구니처럼 부푼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반죽을 시작했다. 강력분 250g과 박력분 50g을 곱게 채 친 뒤 소금과 올리브 오일을 약간 넣었다. 집에 있던 드라이이스트 한 자밤을 따뜻한 물에 풀었다. 거품이 살짝 올라오기를 기다려 함께 붓고 반죽을 시작했다. 말캉말캉한 밀가루 반죽이 몇 분 만에 만들어졌다. 밀봉한 채로 상온에 1시간 정도 두면 발효도 끝난다.
발효가 이뤄지는 동안 소스와 속 재료를 준비했다. 올리브 오일로 통마늘 몇 알을 익히고, 그 기름을 이용해 슬라이스한 양송이 버섯을 센 불에 볶아 수분을 날렸다. 베이컨도 몇 장 구운 뒤 잘게 썰었다. 홀 토마토와 바질잎, 마른 오레가노, 좀전에 익힌 통마늘, 약간의 올리브 오일을 블렌더에 넣고 돌렸다. 열을 가하지 않은 소스에서 상큼한 토마토 향이 퍼져나갔다.
도를 완성할 차례였다. 도마와 밀대에 밀가루를 펴 바르고, 반죽을 올렸다. 처음엔 손으로 눌러 모양을 잡은 뒤 밀대를 사용했다. 최대한 얇게 만들고 싶었다. 계속 밀었다. 역시 밀가루를 살짝 발라둔 둥근 오븐팬에 도를 올린 뒤 주변의 남은 부분을 칼로 정리했다. 너무 얇았나. 살짝 찢어진 부분을 남은 반죽으로 봉합했다. 도를 균일하게 익히기 위해 포크로 여기저기 구멍을 뚫었다. 준비해둔 토마토 소스를 펴 바르고, 각종 토핑과 치즈를 올린 뒤 280℃로 예열한 오븐에 15분 동안 구웠다. 얇은 도는 금세 노릇하게 익어갔다. 치즈가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녹아들었다.
야근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내에게 맥주라도 몇 캔 사오라는 문자를 자신 있게 날렸다. 오븐에서 꺼낸 피자에 바질잎 몇 장을 올려 잔열로 숨을 죽였다. 아내와 마주 앉아 시원한 맥주로 입가심을 한 뒤, 한 조각씩을 잘라 입안에 넣었다. 스르르 눈을 감았다. 뜨거운 태양…, 지중해가…, 토마토와 치즈의 앙상블이…, 응? 뭔가 이상했다. 뜨거운 태양이긴 한데 여긴 왠지 서울의 OO헛? 아내가 말했다. “맛있긴 한데 뭐랄까, 조금 과해.” 부인할 수 없는 평가였다. 이런 강레오 같은 마누라 같으니라고. 약간의 심리적 상처와 산더미 같은 설거지만이 남았다. 앞으론 그냥 시켜 먹자.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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