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하려던 건 아니었다. 간만에 부부가 마트 나들이를 갔을 때 큼직한 연어가 눈에 띄었을 뿐이다. 회를 뜬 뒤 소맥 한 잔을 곁들여 저녁을 때웠다. 연어는 너무 컸다. 1kg이 넘는 불그스름한 살덩이는,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었다. 자신이 태어난 강줄기를 거슬러 오르는 대신 식도를 역류할 기세랄까. 진격의 연어님? “내일은 남은 연어로 스테이크를 해먹으면 어떨까?” 운명의 수레바퀴는 그렇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레퍼토리 구상에 들어갔다. 연어를 그냥 구워 먹은 적은 있어도 이런 도전은 처음이었다. 스테이크만으로는 심심하니까 간단한 샐러드와 파스타를 곁들이기로 했다. 내친김에 단호박 크림수프도 시도했다. 단호박을 찌는 사이 큼직한 연어살을 소금과 후추로 밑간하고 레몬즙, 올리브오일, 타임, 파슬리로 잠시 재워뒀다. 소스가 필요했다. 삶은 달걀 하나와 피클, 파프리카, 올리브를 다지고 레몬즙, 마요네즈, 고추냉이 맛이 나는 호스래디시소스를 섞어 타르타르소스를 만들었다. 가니시(고명)로 올릴 줄기콩을 삶고, 싱싱한 아스파라거스를 그릴팬에 지졌다. 연어도 그릴팬에 구워 그럴듯한 불자국을 만 들었다. 찐 단호박은 씨를 발라내고 속을 판 뒤 부드럽게 갈아냈다. 우유와 생크림을 한 컵씩 부어 뭉근하게 끓였다. 버터도 한 덩이 넣었다.
마지막으로 파스타 차례인가! 바질잎과 볶은 잣, 소금과 후추, 올리브오일을 한꺼번에 블렌더에 돌리면 30초 만에 엄청난 맛이 나는 바질페스토를 만들 수 있다. 파스타를 만들어도 좋고, 따뜻한 빵에 발라 먹어도 잘 어울린다. 문제는 재료의 공급이다. 생바질을 안정적으로 구입할 루트를 찾던 때가 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바질은 대형마트나 외국 식재료 전문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사실 바질이 없는 마트가 더 많다. 그렇다고 매번 희한한 식재료를 파는 전문점을 찾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 에라, 직접 키우고 만다는 생각에 화분을 들여놓은 게 지난봄의 일이다. 다행히 무럭무럭 자라 매달 꽤 많은 양의 바질잎을 수확하고 있다. 식당 차릴 것도 아니고 두 식구가 먹기엔 충분한 양이다. 면을 삶고 팬 위에서 바질페스토에 버무려 잠시 볶은 뒤 올리브오일을 조금 뿌려 파스타를 코팅했다.
모든 음식을 한 상에 차려냈다. 인생 뭐 있나? 우리는 코리안 스타일이다. 화이트와인 한 잔을 곁들이니 값비싼 정찬이 부럽지 않았다. 단호박수프는 부드러우면서 풍부했고, 파스타 면발에 스며든 바질향이 혀끝을 자극했다. 달지 않은 타르타르소스를 슬쩍 끼얹은 연어스테이크는 입안에서 춤을 췄다.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 걸까!” 아내의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났다. 응, 누려도 됩니다. 하지만 설거지는 부탁해요. 그녀는 저항하지 못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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