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굴의 계절이 돌아왔다는 뜻이다.
대식가로 유명한 소설가 발자크는 앉은 자리에서 144개의 굴을 먹어치웠다던데, 아내는 그 정도는 아니어도 굴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굴귀신’으로 통했다. “굴이라니, 신의 한 수로세!” 아내는 만족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랬구나, 당신은 어려서부터 굴을 많이 먹어서 그렇게 예뻐졌구나. ‘꿀피부’가 아니라 ‘굴피부’였구나. 나도 많이 먹었는데, 내 피부는 왜 굴이 아니라 ‘굴껍질’일까.
발자크적인 고민을 뒤로하고, 수산물 코너 앞에서 자연스럽게 발길을 멈췄다. ‘통영산’이라는 양식굴 한 봉지를 샀다. 믿거나 말거나, 모양은 실했다. 가격도 500g에 8천원밖에 안 했다. 절반은 굴무침을 하고, 나머지는 굴전을 만들 생각이었다. 소금물로 흔들어 씻은 굴을 채반에 받쳐두고, 재료 손질에 들어갔다. 배 반쪽을 채썰고, 파와 마늘을 다졌다. 미나리는 줄기만 송송 썰어뒀다. 양념맛보다는 크리미한 굴맛을 살리고 싶었다. 간장과 멸치액젓을 한 큰술씩만 넣고, 고춧가루는 색이 날 때까지만 조금씩 넣어가며 무쳤다.
10분 만에 완성된 굴무침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굴전을 준비했다. 소금간도 생략하고 통통한 굴에 하나씩 밀가루옷을 입힌 뒤 달걀물에 담가 기름팬에 지졌다. 스무 개쯤 부치는 데 굴무침 만드는 시간밖에 안 걸렸다. 헛? 그런데 완성작은 절반밖에 안 된다. “모양이 이상한 애들은 어차피 사진 찍는 데 필요 없잖아.” 부엌에 선 채로 순식간에 10여 개의 굴전을 먹어치운 아내는 여전히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그래, 일단 먹읍시다. 접시 한쪽에 굴전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다른 쪽에는 굴무침을 푸짐하게 담았다.
겉면이 노릇하게 잘 익은 굴전은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적당한 기름기와 굴 특유의 풍부한 바다 내음이 입안에서 섞여들어갔다. 굴무침도 끝내줬다. 아삭한 배와 미나리는 탱글탱글한 생굴과 잘 어울렸고, 강하지 않은 양념은 굴의 맛을 짓누르지 않으면서도 비릿함을 잡아줬다. 한입을 먹고 나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배가 고픈 상태가 아니었는데도 얼린 밥을 녹였다.
하루이틀은 두고 먹을 생각으로 넉넉하게 만들었지만, 김이 올라오는 뜨거운 쌀밥에 굴무침을 비벼 한 숟가락씩 먹다보니 벌써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을 외치는 아내의 입에 시험 삼아 한 숟가락을 더 들이밀었다. 그녀는 넙죽 받아먹으며 괴로워했다. 마지막 한 숟가락도 역시 아내가 해치웠다. 그렇게 좋아하는 굴을 먹으니 행복하니? 그녀가 말했다. “행복…한데, 너무 배가 불러서 행복이 조금 덜한 느낌이랄까.” 오케이, 여기까지.
8천원어치 굴 한 봉지로 부부가 참 푸짐하게도 잘 차려먹었다. 곧 서해안에서는 굴 축제도 열린다. 주말의 서해안고속도로는 최악이지만, 감수할 수밖에. 조만간 한번 뜹시다.
송호균 사회부 기자 uknow@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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