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인물 가뭄에 시달리다, “정녕 금주의 인물은 단군 할아버지밖에 없단 말이냐” 푸념을 토하자 구둘래 편집팀장이 “다음주 인물로 세종대왕도 있어” 하시더라. 허탈한 마음에 몸도 허물어져 있으니, 최우성 편집장 오시어 한숨만 쉬신다. 임박한 마감에 비로소 처지가 비슷한 인물을 발견하고 안도하였으니, 이것은 ‘안 만나도 다 알아?- 동병상련 버전’ 되겠다. 지금 쓰려고 하는 분이 명분을 중요히 여기는 분이니, 그분을 고른 명분도 찾자면, 개천절과 한글날 사이 호시절, 애국적 상남자 걸맞지 아니한가.
홍명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님, 취임 뒤에 백년 같은 백일을 보내시었다. 백일을 한 줄로 요약하면, 성용이는 사고 치고, 주영이는 놀고 있고, 경기는 지고 있고. 원래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12년 런던올림픽, 10년에 한 번 방긋하는 ‘상남자’라 하더라도 지금의 처지는… 아, 외로우니까 감독이다, 기성용도 몰라주고 최강희도 몰라준다.
브라질 경기(12일)를 앞두고 기성용 선수에게 “최강희 감독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다시 돌려보낼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지만, 먼저 응답한 사람은 선수가 아니라 선배다. 최강희 감독은 “홍명보 감독도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상남자 졸지에 말리는 시누이 되셨다. 옆에서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도 있다. ‘사과했는데 또 사과해?’ 이런다. 누구도 반기지 않는 사과 요구다.
축구 엘리트로 살아온 사나이, 런던올림픽을 끝내고 러시아 안지에 연수 가서 비로소 외로움 절절했다. 히딩크 감독 말고는 생면부지인 곳에서, 임재범의 가사가 그렇게 가슴을 후벼팠단다. “이젠 세상에 나갈 수 있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줄 거야.” 이런 가사를 듣고 A 대표팀 감독을 수락할 힘을 얻었지만, 지금은 다른 가사가 심금을 울릴 듯하다.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에 온통 내 자신을 가둬두었지.”
흔들리니까 감독이다. 무섭지만 나쁘지는 않은, 집념을 위해서 달리지만 이기적이지 않은, 홍명보는 그런 좋은 한국 남자의 상징이다. 이름 있는 한국 아저씨들에게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책임감, 그에겐 보인다. 그래서 남자들의 ‘워너비’가 되었다. 10년 넘게 축구기자를 해온 어떤 아저씨는 “40대 중반의 남자가 이토록 매력적일 수 있다니, 특히 여성들에게”라며 부러워한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얄미울 정도로” 덧붙인다. 그리고 이어진 아저씨의 충고, “갈 길이 많이 남았어. 홍 감독이 힘들다고 하면 안 돼. 본인도 알 거야.”
상남자에겐 야망이 있다. “한국 축구에 ‘유산’을 남겨주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꿈을 따라주지 않는다. 취임 뒤 6경기 1승3무2패. “니가 뛰어” 하는 윤운식 출판사진부장의 말처럼 ‘정말 내가 뛰어’ 싶을 만큼 답답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연령별 대표팀을 함께해온 ‘내 새끼들’에 대한 집착도 버려야 할 시간. 지금껏 그래왔듯 우리는 그가 말이 아니라 승리로 상남자의 존재감을 증명해주길 바란다. 묵묵하니까 홍명보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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