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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과학서적들 유감

공감제로인 사이먼 배런코언의 <공감제로>
등록 2013-10-05 17:43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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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과학서적’이 과학출판 시장을 더럽히고 있다. 과학 저술로 얻은 명성을 빌려 개똥철학을 펼치기도 하고, 정치체제와 자본주의 경제에 편승한 과학을 객관성이라는 이름으로 옹호하기도 한다. 매트 리들리가 전자다. 과 등을 통해 유려한 문장과 명확한 비유로 이름을 날린 그가 2010년 들고 나타난 를 보라. 양육과 본성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게놈의 손을 살며시 쥐어주던 조심성은, “인간 종의 미래는 무조건 밝다, 인류는 교환을 통해 부를 일으켰고, 과학이 산업을 증진시켰으며, 자원은 고갈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조절할 경제가 있으니까” 식의 소리를 지루하게 늘어놓았다(한국판이 624쪽이다). 매트 리들리가 돈맛을 본 뒤 예전의 명민함을 팔아먹은 것이리라. 그는 영국 노던록 은행의 사장을 지냈고, 2008년 이 은행 앞에 길게 선 줄은 금융위기의 상징이 되었다.

케빈 켈리의 은 후자다. 정보기술(IT) 잡지 의 공동 창립자인 케빈 켈리는 아미시파(현대 문명의 기술을 거부하고 18세기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종교집단)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히피적 생활을 하다가 생활을 180도 바꿔 ‘기술 옹립론자’가 되었다. 기술을 일곱 번째 생물계라 하며 ‘테크늄’이라 이름 짓고, 이 테크늄은 한 끗의 어긋남도 없는 필연적 과정이라고 과장한다. 결론은 ‘위대한 기술’이 가난한 사람을 배 곯지 않게 하고, 가난한 이도 휴대전화를 들게 한단다.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 대신 휴대전화를 들게 한 게 무엇인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하여 기술이라는 신이 있으니 모두 행복하리라. 이 책이 나왔을 때 한국 신문의 서평은 가관이었다. “이 책에 대한 리뷰를 한 단어로 압축하면 ‘뷰티풀!’이 아닐까? 증명하지 못했던 난제를 푼 천재 수학자의 활약 앞에 동료들은 ‘뷰티풀!’이라며 찬탄한다는데, 이야말로 그렇다.” 해외 언론들의 ‘방귀 뀌시니 시원하시겠습니다’라는 식의, 무릎을 어찌 꿇어야 바싹 엎드린 것으로 보일까 하는 찬탄에 자극받은 것 같다.

세 번째 유형은 서비스자본에 합류한 과학서다. 뇌과학이 그런 운명에 처했다. 사랑을 나누는 사진을 보여주면 어디가 활성화되고 화난 사진을 보여주면 어디가 활성화되더라는 식의 뇌지도를 ‘절대지도’로 삼는 것은, 유전자 매핑을 통해 인간의 본성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과 비슷한 오해다. 이 올망졸망한 뇌과학의 성과에 정신의학이 합류한다. 병을 만들고 처방을 통해 성장하는 선진 의료 시스템. 사이먼 배런코언의 (사이언스북스 펴냄)는 공감 부족 테스트를 통해 공감 능력의 줄을 세운다. 병리적이지 않은 사람도 뭔가 부족한 사람이 된다. “당신은 공감 능력이 부족하니 좀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세요”라고 하진 않을 거다. “화가 자주 나시죠? 이 약을 드시고 화를 누르시고 일주일에 한 번 상담 예약할까요?” 더 나아가 과학서는 자기계발서가 된다.

아주 선한 얼굴을 한 개똥철학도 책에는 포함돼 있다. 책은 유대인이 겪은 끔찍한 실험부터 시작한다. 저자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를 통해 ‘공감 능력 부족’은 저자의 필생의 화두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론은 공감 능력이 사회를 풍족하게 할 것이란다. “반유대주의의 물결을 피해 도망친 유대인 난민들이, 1948년 이스라엘 건립 하루 만에 아랍인 이웃들에게 침략당했”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감 능력’에 의해 화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주장 어디에 ‘공감’이 있단 말인가. ‘공감제로’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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