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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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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카세트

오래된 매체에서 미래를 찾은 인디밴드들,
발매 즉시 희귀본이 되어도 좋아…
이상한 음반시장이자 공연장 ‘카세트 폐허’에 다녀오다
등록 2013-08-10 10:12 수정 2020-05-03 04:27

비 오는 일요일, 평소 크고 작은 카페를 드나드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서울 홍익대 앞 산울림 소극장 인근 도로는 한산했다. 문 닫은 가구점 옆에 유일하게 몇몇 사람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도 저기인가보다. 모여든 사람들을 지표 삼아 가까이 다가가니 지하로 내려가는 작은 문이 있다. 쿵쿵 발아래에서 음악이 울린다. 쿵쿵 심장도 뛴다. 계단을 내려가니 클럽 주인이 음악에 따라 몸을 흔들고 있다. 흔들흔들 손바닥을 펼쳐 보인다. 5천원. 입장료를 내고 쿵쿵대는 세계로 들어갔다.

지난 7월21일 서울 홍익대 앞 ‘살롱 바다비’에서 열린 ‘카세트 폐허’에 모인 이들이 들고나온 풍경들. 카세트 폐허에서 소개된 일렉트로닉 밴드 퍼스트에이드의 새 앨범, 밴드 자이언트 베어의 무대, 공연 현장에서 판매된 오래된 카세트테이프(왼쪽부터).신소윤

지난 7월21일 서울 홍익대 앞 ‘살롱 바다비’에서 열린 ‘카세트 폐허’에 모인 이들이 들고나온 풍경들. 카세트 폐허에서 소개된 일렉트로닉 밴드 퍼스트에이드의 새 앨범, 밴드 자이언트 베어의 무대, 공연 현장에서 판매된 오래된 카세트테이프(왼쪽부터).신소윤

기괴한 춤사위, 미미시스터즈의 후예…

홍대신의 걸출한, 까지는 아니고 떠오르는 밴드들이 무대에 올랐다. 인디밴드 중에서도 어쩌면 마이너인 밴드들도 포함됐다. 공연에 가보기로 미리 마음을 먹었어도 이들의 노래를 예습하기는 어렵다. 음원이나 음반을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래를 모른 채 그 세계에 발을 들이더라도 무대는 흥겹다. 사람들은 춤을 춘다.

무대 위에서 흰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듯하더니 기타 연주에 맞춰 퍼포먼스에 가까운 춤을 췄다. 노래 대신 기괴한 춤사위를 보인 보컬을 향해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밴드 이씨이의 무대다. 어떤 밴드의 보컬은 노래를 마치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어쩌면 오늘 공연만큼이나 중요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관객을 향해 구인 광고를 한 밴드 전성기는 여전히 멤버를 모집 중이다. “얘 어디 갔어요?” 밴드 자이언트의 멤버들은 노래 한 곡을 마치고 사라진 기타리스트를 찾아야 했다. 멤버들이 노래하고 연주하는 동안, 기타리스트는 악기에 문제가 생겨 결국 쭈그리고 앉아 악기를 손봐야 했다. “이제 괜찮아요!” 기타리스트가 환하게 웃자 모두들 박수를 친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무대가 이어진다. 자이언트 베어는 소리치고 몸을 흔들면서 응답해준 관객들에게 “여기 오신 분들 1천원씩 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그리고 나타난 묘령의 여인들. 이들은 미미시스터즈의 후예인가. 새까만 선글라스를 낀 여성 3인조 밴드 요실금이 도도한 표정으로 무대에 올랐다. 평소 밴드 활동을 하지 않지만 오늘 무대만을 위해 음악을 준비하고 음반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오늘이 이들에게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무대라는 것. 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씩씩하게 무대에 올랐던 신여성들은 처음 내뿜던 포스가 무색하게, 노래를 시작하니 쑥스럽게 웃었다. 이번 공연의 기획자 노컨트롤의 황경하씨가 트위터에서 예고했던 대로 이 무대는 “그들이 신세 망치는 현장”이 될 것인가.

이외에도 헬리비전, 제8극장, 위댄스, 악어들, 데이드림, 피해의식 등 홍대 앞 클럽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밴드들이 출격했다. 무대 끝에 걸터앉아 캔맥주를 마시는 관객, 공연을 마치자마자 관객석에 녹아들어 몸을 흔드는 밴드 멤버들이 한데 뒤섞였던 이 현장은 지난 7월21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살롱 바다비’에서 열린 ‘카세트 폐허’다. 카세트 폐허는 2012년 6월부터 시작한 ‘레코드 폐허’의 외전 격이다.

레코드 폐허 때부터 꾸준히 기획자로 활동해온 노컨트롤의 황경하씨에게 카세트 폐허를 하게 된 계기를 묻자 레코드 폐허의 시작부터 설명한다. 음반 판매와 공연을 겸한 레코드 폐허는 대중적인 레코드 판매 시장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경로로 접하기 힘든 자체 제작 음반이나 상품 등을 판매해왔다. “언더그라운드 안에서 음반유통을 위해 노력하는 친구들을 돕다가 일이 커졌어요.한국은 음반 유통 방식이 소비자와 판매자에 초점이 맞춰져 생산자에게 불리하게 자리를 잡았고, 음반의 시대가 끝나가면서 밴드 하는 친구들이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이들이 시작한 레코드·카세트 폐허는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미국 등 비교적 지역 인디신이 탄탄한 지역에서는 익숙한 방식이다. 지역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디밴드들이 소규모 음반 제작을 해도 지역 안에서 팬들에게 충분히 음반이 판매되고 소비된다. 외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인디밴드의 음반 전반에 초점을 맞춘 것이 레코드 폐허라면 매체를 카세트테이프로 한정한 것이 카세트 폐허다.

모자라는 앨범은 즉시 복제해드립니다?

참여한 밴드는 취지에 맞춰 대부분 카세트테이프에 자신들의 노래를 담아왔다. 황경하씨의 말을 빌려 “좀 게으른 20% 정도 빼고는 참여 밴드 모두” 카세트테이프 음반을 제작·판매했다. 밴드로 참여하진 않았지만, 오래된 음반을 들고 나와 판매하는 이도 있었다. 시나위, A-HA, U2 등 색이 바랜 음반들이 테이블 한쪽을 차지했다. 의외로 박진영 1집, 토이 1집 같은,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국내 가수들의 초창기 앨범이 잘 팔렸다고 한다.

국내외 가수들의 옛 음반뿐만 아니라 이날 판매된 앨범들은 어떤 측면에서 모두 희귀본이다. 요실금은 자신들의 데뷔 무대이자 고별 무대에 호기롭게 새 앨범을 내놓았다. 이날 무대에서 부른 등이 담겼다. 헬리비전은 5장의 데모 테이프를 갖고 나와 ‘완판’했다. 이씨이는 멤버별로 각각 다른 스플릿 앨범(두 아티스트가 반씩 트랙을 채워 모아 내는 앨범)을 들고 왔다. 앞면에는 밴드의 지난 공연 실황 등을 담고, 뒷면에는 각 멤버의 즉흥연주나 코멘터리를 넣었다. 멤버 수에 맞춰 4장만 만든 앨범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앨범이다. 이씨이 또한 공연을 마치자마자 앨범을 모두 팔았다. 밴드 데이드림은 당일 제작된 따끈따끈한 앨범을 판매했다. 공연 2시간 전부터 클럽에 와 더블데크 오디오를 이용해 부지런히 음반을 녹음했다. “그걸로 20분짜리 음반이면, 한장 만드는 데 20분 걸리는데 그렇게 계속 만들더라고요.”(황경하) 데이드림은 공연 중에도 카세트테이프가 판매되는 족족 ‘녹음을 떠서’ 모자라는 분량을 채워넣었다.

데이드림의 예처럼 단순한 이용법 덕분에 카세트테이프는 가장 대중적인 음악 저장 매체가 될 수 있었다. 인디신에서 카세트테이프가 재조명받고 있는 이유다. 인디레이블이자 음악 웹진을 내는 영기획의 대표 하박국씨는 디지털 음원이 일반화하면서 CD 시장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오히려 과거의 음악 저장 매체들이 주목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CD라는 매체가 매력을 급격히 잃으면서 해외의 경우 LP 판매량이 계속 상승 중이다. 레코드는 음반도 크고 커버도 크고, 소장 매력이 있다. CD가 가청 주파수 외 위아래가 잘리게 음악을 담는다면 레코드는 다른 질감을 담는다. 카세트테이프도 마찬가지다. LP는 포터블하지 못한데, 카세트테이프는 가지고 다니기 용이 하다. 제작 비용이 싸다는 점도 매력 있다. 경향이라고까 지 말하긴 어렵지만 국내에서도 카세트테이프로 음반을 만드는 이들이 몇몇 나타나고 있다.”

하씨가 언급했듯, 카세트테이프가 가지는 특유의 음 감 또한 근래 인디밴드들이 카세트를 되돌아보는 이유 다. 노컨트롤의 황경하씨는 “CD가 아니라 카세트테이프 에 들어갔을 때 더 좋은 음악이 있다”고 설명했다. “테이 프나 LP의 경우 핀으로 비닐을 눌러서 소리를 내는 방식 인데, 이때 카세트테이프가 만들어내는 적당한 노이즈 (잡음)가 음악을 따뜻하게 들리게 한다. 여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있다.” 이날 무대에 서지는 않았지 만 카세트테이프로 음반을 만들어온 퍼스트에이드는 카 세트 폐허에서 신보를 선보였다. 하씨는 퍼스트에이드에 대해 “일렉트로닉 음악을 하는 밴드인데, 이들이 하는 음악은 하이파이하지 않고 로파이한, 어떻게 보면 지저 분한 느낌이다. 이런 음악을 카세트로 들었을 때 그런 질 감이 잘 잡힌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현실적으로 제작 단가가 싸고(CD 제작의 절반 이하 수준) D.I.Y가 쉽다 는 점도 매력적이다. 손에 잡히는 물리적인 것들, 예컨대 앨범 커버, 포장 등 아날로그적으로 변주할 수 있는 요 소가 다양하다는 점도 음반을 대량 생산·유통하지 않 는 인디신에서 유리한 매체일 수 있다. 황경하씨는 인디 신이 건강하게 살아남기 위한 매체로서 카세트테이프를 주목하고, 카세트 폐허도 지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디신을 건강하게 살찌우는 수단일 수도

이날 공연을 구경하고 두 장의 앨범을 사서 집으로 돌 아왔다. 요실금과 위댄스의 음반이다. 그런데 생각해보 니 내게서 카세트 플레이어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 테이 프들을 어떻게 듣지? 하지만 굳이 듣지 않더라도, 밴드 의 개성이 고스란히 실린 이들 앨범 재킷을 보는 것만으 로도 공연장에서 느꼈던 질감이 새록새록 살아났다. 그 렇게 두 장의 카세트테이프는 어떻게든 ‘플레이’가 된 셈 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추억 track 1~4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카세트테이프는 음악을 저장하는 매체 중 가장 대중적인 것이었다. 음반시장에서 카세트테이프 는 CD보다 훨씬 오래도록 시장을 점유했다. 음 악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수도 카세트테 이프가 대중화했던 시절에 멈춰 있다. 1983년 마이클 잭슨이 발표한 는 세계적으로 1 억500만 장 팔리면서 그 이상의 기록을 허용하 지 않았다. 카세트테이프는 음반으로 음악을 듣 던 시절의 전성기 한가운데 놓여 있다. ‘테이프 가 늘어날 때까지’ 한 음반을 반복해서 듣던 시 절이었다. 1980~90년대 카세트테이프의 시대 를 보낸 이라면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카세트테이프의 추억.
#track 1. 늘어난 노래도 복구되나요 카세트테이프의 가장 큰 단점은 오래, 자주 들 었을 때 마그네틱테이프가 늘어나면서 음질이 엉망이 돼버린다는 것이었다. 이를 방지 하기 위해서 가장 널리 쓰인 방법은 시시때때로 냉동실에 카세트테이프를 감금하는 것이었다. 냉동실로도 해결되지 않거나, 테이프가 리코더에 ‘씹혀’ 복구가 불가능할 정 도로 늘어나거나 엉켰을 때는 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늘어난 부분을 정교하게 칼 로 오려내고 스카치테이프로 남은 부분을 연결하는 것. 중간이 뭉툭하게 잘려나가지 만 어쨌거나 노래는 감쪽같이 이어졌다.
#track 2. 공테이프의 비밀 카세트테이프는 사적으로 녹음이 가능한 매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안 쓰는 노래 테이프의 윗부분 구멍을 막으면 공테이프로도 사용할 수 있 었다. 문제집에 딸려 나오는 학습용 테이프는 공테이프로 가장 자주 활용됐다. 엄마는 모르셨다, 그때 우리가 귀에 꽂고 있던 것이 영어 테이프를 가장한 가요 믹스 테이프였 다는 것을.
#track 3. 믹스 테이프는 사랑을 싣고 그러니까 공테이프가 된 어학용 테이프는 누군 가를 향한 세레나데 모음집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사랑에 빠지면 라디 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다 자기 노래 같다. 달콤한 노래들을 녹음해 그(녀)에게 바 친다. 세트 상품으로 커플 일기장(좋아하는 아이를 향한 연서 모음집. 단짝인 친구가 꼭 ‘둘이 잘되기 바란다’는 메시지를 써준다)이 있었다.
#track 4. 워크맨과 마이마이의 대결 1979년 소니에서 워크맨을 출시하면서 카세트 테이프는 전성기를 맞았다. 서울 남대문시장이나 부산 깡통시장에는 보따리 장사들 의 짐가방에 들려 온 소니, 아이와, 파나소닉 등에서 나온 소형 카세트테이프 플레이 어가 전시되곤 했다. 국내 업계에서도 이를 위시한 제품들이 출시됐는데, 삼성전자의 마이마이와 LG의 아하프리가 쌍두마차다. 하지만 모두 고릿적 얘기가 됐다. 마이마이 는 2004년 단종됐고, 아하프리는 한 해 이른 2003년 이후 더 이상 판매되지 않는다. 소니 워크맨은 올해 초 생산이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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