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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노동자들의 피로도시 탈출기, 문화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
등록 2013-06-21 15:09 수정 2020-05-03 04:27

인구 1천만의 도시 서울은 화려한 만큼 번잡하고 거대 한 만큼 압도적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도시에 계속 머 물고 싶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 도시를 떠나고 싶다. 최 근 (남해의봄날 펴냄)이라는 책 이 출간됐다. 책 내용을 요약하면 ‘지식노동자들의 피로 도시 탈출기’다. 문화연대에서 꾸린 플랫폼 ‘우물터’는 문 화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터다. 귀농의 방식이 아니더라도 지역으로 옮겨가 자신의 삶을 전환하려는 사 람들이 하나둘 모이고 있다. 서울을 떠나고 싶거나 혹은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서울 생활자 들은 자신이 품고 있는 탈서울의 로망 혹은 불가능함을 털어놓았고, 가방을 싸서 지역으로 떠난 이들은 지역 생 활의 낭만 혹은 현실을 들려줬다.

자신의 진짜 욕망을 계속 유예하고 있다

시나리오작가 김지현씨는 서울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김씨는 한 번도 서울을 벗 어나 생활해본 적이 없지만 이제는 이 도시의 “소음과 질 나쁜 광고와 아름답지 않은 건물들이 싫다”. 하지만 이 것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 수도 있다. 그를 더 못 견디 게 하는 건 “내가 진정 원하지 않는 게 중요하게 여겨지 고 거기에 자꾸만 휘둘리게 되는 것. 가령 돈, 외모, 그 런 것들”이다. 나중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됐을 때 들 끓는 사교육 시장 한복판에 아이를 던져넣고 싶지 않다 는 생각까지 이어지면, 그는 더더욱 서울에 살아야 할 필 요성을 못 느낀다. 심신을 다독여줄 이런저런 도시를 물 색하다 마음속으로 정한 지역은 경북 경주다. “주거비와 생활비가 적게 들고, 자연과 좀더 가깝고, 개발될 가능 성이 적고, 갈 때마다 느낌이 좋았기 때문이다.” 연고가 없는 지역이 주는 막연함과 불안함이 있지만, 거꾸로 아 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가서 모든 걸 “리셋하고 싶기도 하다”. “순전히 내가 선택한 곳에서 원하는 대로” 살아보 고 싶은 욕망이 때때로 김씨를 흔든다. 하지만 김씨는 몇 년째 떠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는 산업 시스템이 강하고 사람들과 세게 얽혀 있는 일이라 계속 영화를 한다면 수 도권에 살아야 할 것 같다. 내 일에서 자리를 잡고 그것으로 삶을 지속할 수 있다면 난 서울에 살고 싶지 않다. 경주에서 글을 쓰면서 그곳 아이들과 영화 찍기나 글쓰 기 수업을 하며 살고 싶다.”

탈서울을 꿈꾸는 이들은 대부분 아직 떠날 계획은 없 지만 멀거나 가까운 미래에 서울이 아닌 곳에 자신이 머 물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명원(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씨는 “언젠가 서울을 떠나려 한다”. 그는 서울 생활 에 대해 “혼을 빼놓고 사는 느낌, 도시적 삶이라는 게 계 속 비정해진다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이씨는 최근 문 화귀촌 움직임이나 서울을 떠나는 지식노동자들의 행보 에 대해 “그동안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욕망을 계속 유 예하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이씨는 조만간 아내와 충남 홍성을 방문할 생각이다. 그곳에 머무는 지인들에게 홍 성에서의 삶이 어떤지 물을 계획이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그림은 없다. 지역으로 옮겨가 는 일은 물리적 이주와 같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 이다. 에서 강원도 화천으로 떠 난 연극연출가 배요섭씨는 이렇게 썼다. “이것은 단지 공 간을 이동하는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긴긴 회의를 통 해 깨달았다. …(그것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이명원씨가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소 비 형태부터 시작해 모든 게 바뀔 것”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종종 아내와 막연하게 이런 이야기 를 나눈단다. “시골에 조그만 도서관을 하나 만들어 운영하고 마을신문을 만드는 삶은 어떨까.” 그래서 이씨는 아이가 7살쯤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세계여행을 떠날 궁리를 하고 있다. “1년 동안 유랑한 다음 그 경험과 느 낌을 가지고 다음을 기획해볼 것”이다. 몇 년 뒤 이씨가 세계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그는 다시 서울에 정착할까, 아니면 아내와 그린 도서관과 마을신문의 꿈을 실현하 고 있을까.

서울의 밤은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나 탈서울을 꿈꾸는 이들에게 밤에도 불밝힌 이 도시는 너무 뜨겁다(윗쪽). 연극단원들과 강원도 화천으로 떠난 연출가 배요섭씨는 “좋은 삶이 있을 때 좋은 연극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겨레 박미향 기자, 남해의봄날 제공
<b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좀더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의 밤은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나 탈서울을 꿈꾸는 이들에게 밤에도 불밝힌 이 도시는 너무 뜨겁다(윗쪽). 연극단원들과 강원도 화천으로 떠난 연출가 배요섭씨는 “좋은 삶이 있을 때 좋은 연극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겨레 박미향 기자, 남해의봄날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좀더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마음먹고 나니 많은 것이 바뀌어

칼럼니스트 이명석씨의 마음은 절반만 서울에 있다. 이명석씨는 서울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문 화 관련 행사가 서울에 집중해 있고 주변에 있는 여러 사 람들과 놀아야 하는데 이들이 서울 특정 지역에 모여 있 다보니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강원도 춘천이나 충남 천안 등 서울과 그다지 멀지 않은 중소 도 시로 언젠가 옮겨갈 생각은 있다. “지역에서 생활을 해도 생업에는 큰 상관이 없을 것 같다. 나이가 들면 가드닝을 본격적으로 해볼까 싶기도 한데 서울에서 마당 있는 집 을 구하기는 힘드니까.” 하지만 혼자서 낯선 지역으로 옮 겨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과 어 떤 지역에 다 같이 이주하자, 이런 얘기를 반농담식으로 한 적이 있다. 서울 근거리에 문화계 종사자들의 타운이 형성돼도 좋을 것 같다.”

사람을 품지 못하는 거대한 도시 시스템에 의해 결국은 자의 반 타의 반 밀려나게 될지 모른다고 말한 이도 있다. 대중음악 칼럼니스트 차우진씨는 탈서울에 대한 고민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서울을 떠나고 싶은 이유도, 떠날 수 없는 이유도 모두 경제적인 것 때문”이라고 말했 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울이란 도시는 너무 비정상적이 다. 버티다 버티다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는 것 같다. 하 지만 내가 일하는 분야가 대중문화이고 이게 어쨌든 서 울 중심으로 돌아가니까 일을 하려면 여기에 있어야 한 다.” 차우진씨는 서울을 떠나 조용한 중소도시에 머물고 싶다. “서울에서 끝까지 살고 싶지 않다”는 그는 나이 마 흔쯤에 탈서울을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자꾸만 발목을 붙잡는 이 도시를 냉정하게 물리친 이도 있었다. 프리랜서 출판기획자 김영진 씨는 요즘 경남 남해에 살 곳을 알아보러 다닌다. 그는 서울의 화려함, 복잡함, 북적이는 거리가 딱히 즐겁지 않다. “그걸 즐기고 좋아해 도시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그렇지 않은 편이다. 인생 한 번 사는데 어떻게 사는 게 더 가치 있느냐 따지다 보니 내려가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남해로 떠나기로 마음먹고 나니 많은 것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이제까지 해온 일을 포함해 다른 일도 도모하게 됐다. 김씨는 남해에 가서 작은 작업실과 더불어 숙박 공간도 열어볼 생각이다. 부족한 비용은 대출로 충당해야 하고 돈이 벌릴지 어떨지 불투명하지만 간다. “나는 여기에 있는 것을 다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왜 몸 버려가며 회사에 매여 사냐고, 이 도시를 떠나자고 쉽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동안 노동자로서 쌓아올린 것이 있을 텐데. 나는 어떻게 보면 운이 좋은 경우인 것 같다. 회사도 마침 그만뒀고 결혼도 아직 하지 않았고, 매여 있는 게 적어서.” 내년에 자신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오늘도 남해에 내려간다는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문제가 많다고 했다. 앞으로 닥칠 일이 두렵고도 설레는 듯했다.

단순한 이주가 아닌 삶의 방식을 바꾸는 귀촌
서울 토박이 정은영(왼쪽)씨는 아는 이 하나 없는 경남 통영에 뿌리를 내렸다. 통영에서 그는 “서울에만 있었다면 끝내 발견하지 못했을 것들”을 찾았다. 남해의봄날 제공

서울 토박이 정은영(왼쪽)씨는 아는 이 하나 없는 경남 통영에 뿌리를 내렸다. 통영에서 그는 “서울에만 있었다면 끝내 발견하지 못했을 것들”을 찾았다. 남해의봄날 제공

을 엮은 편집자 정은영씨는 서울에서 여러 번 과로로 쓰러지고 휴양차 경남 통영을 찾았다가 결국 그곳에 터를 잡았다. 출판사를 차렸다.

주변 사람들은 “통영에서 책을 만들기만 하고 팔지는 않 을 거냐”며 걱정을 쏟아냈다. 유통·마케팅 문제 때문에 서울을 자주 오가야 했지만 그런 고단함 대신 지역에서 는 서울에 없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었다. “가치 있는 콘 텐츠를 가진 사람이 많다. 예컨대 통영의 한 사진가는 수 십 개 섬을 일상적으로 돌아다니며 찍어놓은 사진을 수 천 장 갖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통영의 향토음식을 오랫 동안 연구해서 기록으로 남겨놓았더라. 서울에만 있었 다면 절대 알 수 없던 것들이다. 자비로 책을 낸 할아버 지도 있고, 우리 집 공사할 때 오신 아저씨 세 분 중 한 명은 장승 장인, 한 명은 유명한 화가를 사사한 이였다. 이 동네는 한 집 걸러 한 명씩 장인이 있다. (웃음)” 하지 만 정씨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서울 생활자들이 지역에 서 사는 것에 대해 환상을 갖는 걸 염려했다. “문화 차이 때문에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수밖에 없다. 타 지역민을 환대해주지만 사실은 오랫동안 지켜본다. 중간에 떠나 는 이가 많으니까. 우리도 회사를 열고 첫해에는 지역에 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한 해가 지나니까 네트워크 를 맺게 되고, 또 한 해가 지나니까 지역의 콘텐츠를 발굴해 책을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문화연대 문화귀촌 플랫폼 ‘우물터’ 활동을 하는 시민 자치문화센터 이광준 소장 또한 도시생활자들의 막연한 로망을 경계했다. 이 소장의 말에 따르면 “단순한 이주가 아닌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게 문화귀촌”이다. “지역에 가 서는 도시에서보다 바쁘게 살아야 한다. 낭만적으로 멋 있는 자연 등만 생각하고 떠났다가 6개월쯤 지나 외롭고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 현실적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이 소장은 이렇게 답했다. “지역에서 산다는 건 불편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질을 놓고 인생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도시가 아닌 곳이라면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삶도 준비해야 한다. 생활기술, 자연을 즐기는 법, 생활창작을 통해 일 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 등을 익혀야 한다.”

지역시장을 컨설팅하며 100곳이 넘는 지역을 돌아다 녀봤다는 이 소장도 귀촌은 조심스럽다. “올해 일단 제 주에 1년 임대를 얻어 내려가 살아볼까 한다. 제주, 전 남 해남, 전북 완주·진안, 경남 하동 등이 후보지였는 데 2년 동안 고민하다가 제주로 정했다. 도시에서보다 적게 벌더라도 원래 전공인 생태미학을 제대로 실천하 고 공부하면서 공동체와 엮인 문화예술 활동을 하며 살 고 싶다.”

자리잡은 이에게도, 지역도 ‘윈윈’

가수 오지은은 최근 3집을 내고 이런 노래를 불렀다. “서울살이는 조금은 힘들어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앞 에 앉은 사람/ 쳐다보다가도 저 사람의 오늘의 땀/ 내 것 보다도 짠맛일지 몰라… 서울살이는 조금은 즐거워서/ 가끔의 작은 행복에 시름을 잊지만/ 서울살이는 결국 엔 어려워서/ 계속 이렇게 울다가 웃겠지/ 계속 이렇게 울다가 웃겠지.”() 서울 생활자들은 이 거 대한 도시에서의 삶이 고단하고 어려워 울다 웃기를 반 복하며 때때로 탈서울을 꿈꾼다. 이광준 소장에 따르면 성공한 문화귀촌은 새 터에 자리잡은 이에게도, 이들 을 기꺼이 받아준 지역에도 ‘윈윈’이라고 한다. 젊은 층 이 쑥 빠져 삭막해진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이주민 또 한 번잡한 도시가 주지 못하는 새 에너지를 얻기 때문 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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