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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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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커플과 엄마 된 X의 개방전

숲 속이라 좋은 경기도파주 초이캠핑장
등록 2013-06-21 11:56 수정 2020-05-03 04:27

세 유부가 ‘물 위의 하룻밤’(964호 참조)을 보내고 개몰골로 맞은 아침, 축축한 매트 위에서 자느라 천근만근인 몸을 돌려 옆을 보니 석가의 아들 재원이가 혼자서 닌텐도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박편은 새벽녘 택시로 귀가했다). 아빠 어디 갔니? 석은 그 옆에서 대자로 뻗어 자고 있었다. 역시 석대인이구만. 평소에도 주말이면 뻗어 자고 있는 아빠를 대신해 일어나 TV 보고 과자 꺼내다 먹고 혼자 잘 노는 녀석다웠다. 그런 아들을 보고 석대인은 늘 ‘혼자 놀기의 달인’ 이라고 흐뭇해했다. 아주 셀프육아구만! 잔소리를 할 때마다 석은 “니도 좀만 있어봐라~”라고 대꾸하곤 했다. 근데 형~ 진짜 좀만 있으니까 나도 알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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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프다는 재원이를 위해 겨우 몸을 추슬렀다. 두두둑 삭신이 쑤셨다. 버너에 불을 올리고 짜파구리를 끓였다. 처자식 집에 두고 신새벽에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재원이는 맛있게 잘도 먹었다. 9시 넘어 일어난 석대인은 자기도 라면을 달라고 했다. 내가 엄마냐? 석은 “죽을래?” 짧은 팔을 들어 보였다. 후배인 난 짜파구리 끓인 코펠에다 대충 또 너구리를 끓였다. 라면을 먹고 난 석은 설거지를 한 뒤 일요일 아침보고를 한다며 차로 내뺐다. 짐정리는 내 몫이었다. 재원이와 둘이서 텐트·의자·테이블을 접고, 매트·침낭을 갰다. 휴대전화를 충전한다고 켜놓은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됐다. 긴급출동 서비스를 불렀다. 석은 재원이를 내게 맡기고 출근했다. 재원이를 데려다주고 파김치가 되어 집에 오니 와잎이 나가며 말한다. “재미 좋았지? 이제 애 좀 보셔~.” 야, 여태껏 애 둘 보다 왔는데 뭔 소리여~ 시방!

그 다음주 주말, 지난주 캠핑을 못 갔던 아들 녀석의 성화에 못 이겨 석 부자와 다시 캠핑을 나섰다. ‘아빠, 어디 가?’가 유부남 피를 말리는구나. 와잎은 싱글벙글이었다. 남편은 개고생하러 가는데 너는 아주 신났구나~. 오늘 야무지게 마시겠구만. 동네 어귀 마트에서 만난 석을 보고 난 깜놀했다. 나와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던 것. 남들이 보면 위장결혼한 게이 커플이 아들 데리고 캠핑 가는 줄 알겠다. 석이 말했다. “난 옷 없어. 니가 갈아입어.” 후배인 난 더워죽겠는데 검은색 티셔츠로 바꿔 입었다. 석이 예약했다는 경기도 파주 초이 캠핑장으로 가는 길,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사준 석이 내게 코다리 냉면을 두 개는 많으니 하나만 사오라고 했다. 후배인 난 코다리 냉면을 사왔다. 석이 냉면을 먹으며 말했다. “이렇게 냉면까지 나눠먹는데 옷까지 안 갈아입었으면 우리 완전 게이로 오해받았겠지?” 얼굴은 아니거든~.

숲 속에 위치한 초이 캠핑장은 조용하고 호젓했다. 텐트를 치고 의자와 테이블 세팅을 했다. 땀이 났다. 큰아기 석은 시원한 맥주 좀 가져 온나~고 지시했다. 후배인 난 맥주를 꺼내주고 불을 피웠다. 애들은 물총싸움에 정신이 없었다. 애들을 위해 물을 끓여 햇반을 데웠다. 석은 좋구나~를 연발했다. 좋으니? 이제 형이 좀 해~. 석이 짧은 손을 들었다. 후배인 난 저녁상을 차리며 되뇌었다. “애 셋 데리고 개방전하는구나~. 와잎아, 넌 노났구나~.” 문의 010-8779-5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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