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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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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유부의 ‘물 위의 하룻밤’

가까워서 더 좋은 경기도 하남 미사리 가야캠핑장
등록 2013-06-19 14:48 수정 2020-05-03 04:27

“다음 중 ○○○가 술 먹지 않을 때는? ① 휴가 때 ② 명절 때 ③ 잠 잘 때”
이제 제법 한글을 읽기 시작한 아들 녀석이 내 휴대전화 사진을 보 고 말한다. 와잎의 만취한 모습을 도촬해 ‘방송화면 어플’로 만든 ‘1 vs 100’ 패러디 사진을 본 것.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아들 녀석에게 물었다. 몇 번이 답일 것 같아? 아들 녀석은 “3번?”이라고 답했다. 너 도 아는구나~. 역시 넌 내 아들이야! 하지만 니 엄마를 부탁해~.
업소에서 쓰는 500ℓ짜리 생맥주잔을 냉동실에 얼려놓을 정도로 맥주 한 잔의 풍미를 아는 와잎이 언제부턴가 머그잔에 맥주를 따라 마셨다. 이유는 와잎이 술 먹을 때마다 아들 녀석이 옆에 와서 “엄마 또 술 먹어?”라고 묻는 통에 아주 술맛 떨어져서 못 먹겠다는 것. 잘 한다~ 우리 아들! 아버지대에 못 이룬 와잎 금주의 꿈을 아들이 대 신 실현해다오~. 최근에는 그 머그잔을 보고 “이거 술 아냐?”라고 아들 녀석이 묻길래 “보리차야~”라고 답했더니 마시려고 해서 큰일 날 뻔했다는. “으이구~ 애한테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더니 아주 잘한다~”고 하자 와잎은 “애 앞에선 냉수도 못 마신다는 옛말이 틀 린 게 없다”고 했다. 냉수 먹고 속 좀 차려라~. 근데 아들아, 벌써 술 이 당기니? 너 알고서도 마신 거 아니니? 너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 니? 니 엄마가 되고 싶어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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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부자들끼리만 캠핑을 가자며 그 대신 모든 장비는 “니 가 챙겨오라”는 회사 선배 석가의 횡포를 뿌리치지 못했던 것도 결 국은 (음)주말만이라도 음주하는 어미와 격리해야겠다는 아비의 자 식 사랑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들 녀석이 주중에 수족구 에 걸렸네~. 와잎은 애 상태가 안 좋으니 자신도 같이 가겠다고 배 수진을 쳤다. 그냥 집에 있으면 안 되겠니? 실랑이를 하던 중에 낭보 가 찾아왔다. 전 편집장 박아무개 선배도 캠핑에 합류하기로 했다는 것. 와잎은 원래 나 빼고 가려고 미리 입 맞춘 거 아니냐고 물었다. 이제 알았니? 결국 와잎의 개욕을 뒤로하고 열기운이 있는 아들 녀 석을 집에 둔 채 나 혼자 캠핑에 나섰다. 아들아~ 사랑한다. 와잎아 ~ 사(기 제대로 쳐라~ 머그잔 말고 텀블러에 빨대 꽂고 마셔라~ 애 잘 보고 캠핑은 박편과 석가랑 나)랑한다.

장소는 석가가 예약한 경기도 하남 미사리 조정경기장 옆 가야캠핑 장. 가야캠핑장에 가야~, 남자끼리 가야~, 마누라는 빼고 가야~. 말장난을 하다보니 25분 만에 도착. 가까운 거리가 장점. 파쇄석인 바닥 돌도 또 장점. 석가의 현지 지도를 받으며 박편과 텐트를 쳤다. 누가 선배야~. 박편은 소싯적 보이스카우트였는지 뼛속까지 캠퍼 의 모습~. 자리를 잡고 그릴에 불을 피워 토시살을 구웠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소맥을 따랐다. 맘 맞는 이들과 찧고 까불며 마시는 술은 다디달았다. 이것이 캠핑이다! 저녁 무렵부터 내린 빗소리와 휴 대전화 음악에 세 유부의 영혼도 사정없이 힐링됐다. 살아 있네~. 비록 열어놓은 뒤창으로 비가 들이쳐 ‘물 위의 하룻밤’을 보냈지만, 술과 음악과 비와 사람에 몸과 마음이 흠뻑 젖은 날이었다. 더 이상 ‘킬링’은 없다! 문의 010-8865-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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