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 마누라 개팔아먹고 누군 마누라 요리해주고 아이고 내 팔자야 ~.” 959호에 실린 송호균 기자의 칼럼 ‘옆구리 쿡쿡’을 본 와잎이 이 렇게 말했다. 내 팔자가 더 사나운 거 모르니? 니가 술 끊으면 나 요 리학원 등록한다! 와잎은 해외출장을 가는 아내를 위해 직접 수육 을 만들어준 남편의 갸륵한 정성에 감복한 듯했다. 나도 니가 해외출 장을 가면 왕족발이 뭐냐, 보쌈이라도 해주겠다. 그러니 부디 해외로 좀 나가주면 안 되겠니? 세상 물정 모르고 송 기자 코스프레를 외치 는 와잎에게 난 넌지시 말했다. “송 기자 아내분이 의사 선생님인 거 아니?” 나도 의사 와잎 있었으면 맨날 삼시세끼 다 해다 바치겠다~ 라는 말은 속으로만 되뇌었다. 플라스틱 술잔을 구기며 와잎이 나직 하게 대꾸했다. “의사 선생님 좀 만나게 병원 갈래?” 아놔~.
어쨌거나 와잎의 ‘남편 수육 타령’을 잠재우려면 약을 팔 필요가 있 었다. 지난주 초 ‘육체의 샴쌍둥이’인 절친 회사 선배와의 을지면옥 점심 냉면 회동에 와잎을 부른 이유였다. 샴쌍둥이 선배는 와잎의 술자리 폭탄 세례에도 와잎을 멀리하지 않고 귀여워한 몇 안 되는 대인배. 와잎과 선배는 살 빠졌다, 예뻐졌다는 사실과는 거리가 먼 덕담을 주고받더니 바로 주문에 들어갔다. 그럼 그렇지~. 제육과 소 맥으로 탐색전을 치른 우리는 바로 냉면전으로 돌진했다.
거나하게 먹고서도 우린 허기가 졌던 것일까? 와잎이 전설의 ‘냉면 대첩’을 요구했다. 냉면대첩은 4년 전 샴쌍둥이 선배와 L선배가 한낮 에 ‘1차 물냉-2차 비냉’ 냉면순례로 을지로 일대를 초토화했다는 데 서 유래했다. 이에 샴쌍둥이 선배는 답했다. “흥남집으로 진격하라!” 무슨 푸드파이터도 아니고 전쟁 치르듯 먹는구만~.
서울 중구 오장동 흥남집은 1953년에 문을 연 대표적인 함흥냉면 전 문점. 앉자마자 수육과 소주를 시켰다. 낮술 들어가니 아주 노곤하 고 좋구나~. 와잎은 소주잔을 들고 행복하다며 웃었다. 소주 CF 찍 니? 마지막 입가심으로 함흥냉면을 주문했다. 매운 양념과 새콤한 회무침이 낮술에 취한 속을 확 깨웠다. 오후 3시까지 이어진 냉면대 첩을 마무리하고 유치원에서 온 아들 녀석을 마중 나간 와잎은 그날 저녁, 동네 아줌마들과 생맥 회동을 하다 아이와 함께 뻗어버렸다.
캠핑 예약금 입금도 잊고 떡이 되신 와잎 덕분에 취소된 캠핑. 그로 인해 토요일 오전부터 아들 녀석에게 시달렸다. 봄날은 환장하겠고 아들 녀석은 캠핑에 환장했고 어디든 가야 했다. 궁여지책으로 아파 트단지 으슥한 정자 옆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이너텐트를 치고 매트 와 탁자를 펴니 이곳이 대자연이요, 이곳이 캠핑장이었다. 아들 녀 석은 진짜 캠핑 온 거 같다며 신이 났다. 아들아~ 다음번엔 엄마 빼 고 멀리 가자~. 멀리서 양손 가득 술과 안주를 사가지고 올라오는 와잎이 보인다. 참 열심히 산다~ 살아. 혹시 음주파이터니? 와잎은 불 피우면 주민신고가 들어올 수 있으니 치킨과 피자를 시키자고 했 다. 주민신고는 내가 하고 싶었다. 밤 10시, 난장판에서 미친 듯이 먹 고 미친 듯이 놀던 와잎과 아들 녀석이 춥다고 냉큼 집에 들어갔다. ‘닌자고 가마돈’처럼 팔이 4개라도 모자란 짐을 혼자 들고 집에 오며 난 절규했다. “내 봄날은 언제 오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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