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술빠따가 불러온 속죄의 임사체험

서울 근교라 더 좋은 경기도 안성 운모석캠핑장
등록 2013-03-29 18:29 수정 2020-05-03 04:27
한겨레21 X

한겨레21 X

쭈구리는 캠핑장에 도착하자마자 씩씩거렸다. 아내와 다투고 집을 뛰쳐나왔다며 술도 못 먹는 녀석이 맥주 한 캔을 원샷 때렸다. 어쭈 구리? 녀석은 “집안일은 마누라가 좀 해야 되는 거 아니냐. 남자가 사 회생활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지 않느냐”고 따져물었다. 의사 부 부인 녀석이 가사 분담 문제로 아내와 다퉜다는 것. 와잎이 득달같이 말했다. “오빠~ 오랜만에 봤는데 안 되겠네. 오늘 나한테 소맥으로 야무지게 빠따 한번 맞자. 뭔 임오군란 때 얘길 하고 있어~. 둘이 맞 벌이 아냐? 그럼 집안일 거드는 거 당연한 거 아냐? 똑같이 해도 여 자가 집안일 더 많이 하는 거 몰라서 그래?” 와잎은 집중포화를 퍼 부으며 거침없이 소맥을 말았다. 쭈구리는 어쩔쭈구리처럼 쩔쩔맸다. 와잎이 술잔을 건네면서 말했다. “마셔~. 참회주야!” 쭈구리는 “참외 주? 난 참외 먹으면 설사하는데~”라고 설레발을 깠다. 와잎이 대꾸 했다. “오빠 약사야? 어따대고 약을 팔어? 까불지 말고 마셔~.”

머뭇거리는 녀석의 술잔을 뺏어 마구 들이켠 뒤 내가 말했다. “야, 개 쭈굴~ 니가 복에 겨워 똥을 싸는구나~. 돈 많이 버는 마누라 만나 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르지? 돈 많이 벌기는커녕 쓰기만 하는 마누라를 만나봐야 니가 정신을 차리겠구나~. 나 같으면 집안일 내 가 다 하겠다~.” 말을 하다보니 아차 싶었지만 에라 모르겠다 질렀 다. 와잎이 싸늘하게 말했다. “안 되겠다. 너도 술빠다 맞자!”

쭈구리는 “말 한마디 했다가 욕만 바가지로 먹는구나~” 푸념했고 와잎은 “걱정 마~ 술도 바가지로 먹게 해줄게~”라고 화답했다. 녀 석의 망언이 몰고 온 소맥 쓰나미는 돼지 목살과 소등심 안주를 넘 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개쭈굴 때문에 졸지에 나까지 개피를 보고 야 말았다. ‘속죄의 임사체험’을 하느라 불콰해진 쭈구리를 보고 아 들 녀석은 만화 에 나오는 우주괴물 같다고 말했다. 아들~ 역시 예리해~.

와잎에게 지대로 줄(술)빠따를 맞은 쭈구리는 밤 10시경 가까스로 대 리운전을 불러 해수욕장을 탈출했다. 녀석을 붙잡으며 내가 말했다. “너 가면 남은 줄(술)빠따는 어쩌란 말이냐?” 쭈구리는 “나부터 살고 보자. 근데 이러려고 불렀냐? 누굴 죽일 셈이냐?”며 내뺐다. 그런 쭈 구리를 보며 와잎은 “어쭈구리~ 멕여주고 힐링해줬더니 적반하장이 구만~”이라고 말했다. 킬링이겠지~ 와잎아~. 1시간 뒤 쭈구리에게 서 카톡이 왔다. “제수씨를 보니 내가 감사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내라~.” 난 울컥하는 목구녕으로 술빠따를 받았다.

지난 주말, 제2의 캠핑 장소를 물색했다. 와잎은 술 먹는 건 어디서 나 마찬가지이니 근교로 잡으라고 하명했다. 쭈구리의 절친인 ‘남근 육봉’(별명)이 추천한 물 좋고 공기 좋다는 경기도 안성 운모석캠핑 장으로 향했다. 초대 손님은 근처 사는 추천자 남근육봉이. 옛날 금 광이 있던 장소로 게르마늄(운모석)이 다량 분포돼 있다는 안내판을 뒤로하고 ‘고라니 사이트’에 짐을 풀었다. 캠핑비는 2만5천원에 전기 사용료 3천원. 1년여 만에 만난 남근이는 20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스포츠 머리에 젤 발라 바짝 세운 스탈. 젤 값만 한 달에 3만원 드는 젤 마니아. 956호에 계속.

xreporter21@gmail.com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