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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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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와 주야장천 쓰레기

휴가가 가고 싶었던 강원도 여름휴가
등록 2013-08-29 14:31 수정 2020-05-03 04:27

와잎은 망설였다. “3박4일은 너무 길지 않냐. 나만 개고생하는 거 아니냐”며 난색을 표했다. 다음주에 강원도로 휴가를 같이 가자는 석대인(966호 ‘위장커플과 엄마 된 X의 개방전’ 참조)이 급제안을 한 차였다. 석대인이 이미 숙소를 다 마련했으니 우린 몸만 가면 된다고 달랬는데도 좀처럼 내켜하지 않았다. 왜? 5박6일 세부 가자며? 세부는 좋고 강원도는 싫으냐? 니가 아주 카드가 빵꾸나봐야 정신을 차리지? 글고 개고생은 니가 하냐? 너 데리고 휴가 가는 내가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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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와잎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며 애 보고 있을 테니 혼자 다녀오라고 넌지시 말했다. 앗싸! 이게 꿈이냐, 생시냐? 갑자기 심장박동이 거세지면서 몸에 피가 마구 돌았다. 근데 웬일이냐 니가? 어제 술 많이 먹었니? 제정신은 맞니? 술 먹고 노는 자리라면 회사 회식에도 따라올 기세였던 와잎이 왜? 우선, 진정해야 한다. 너무 급반색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난 담담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렇다고 자기가 안 가면 되나?”(당연히 되지~ 암 되고 말고!) “가족 휴가인데 같이 가야지.”(혼자만의 휴가 좀 가보자~ 제발~) “그렇게 가기가 싫어?”(억지로 가면 쓰나~ 집 나가면 개고생이야~)

이 정도면 됐을까? 하고 있는데 와잎이 말했다. “아냐~ 오래 가면 애도 힘들고 나도 힘들고 그냥 자기 혼자 갔다와~.” 누구냐? 넌! 니가 진정 내 와잎이냐? 난 벅찬 감격을 꾸역꾸역 겨우 숨기며 한마디를 보탰다. “자기가 없으면 재미없잖아~.”(재미만 있잖아~ 행복만 있잖아~ 자유만 있잖아~) 이 정도까지 했으면 먹고 떨어지겠지라고 생각하며 여행 가서 뭘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와잎이 말했다. “그래? 그지? 내가 없으면 재미없겠지? 정 그렇다면 같이 가야지, 뭐~.” 야~ 사람이 빈말도 못하냐?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냐? 귀에도 살쪘냐?

그렇게 나홀로 휴가는 저 멀리 사라지고 석대인 부자와 우리 가족은 한차로 휴가를 떠났다. 출발하자마자 뒷자리의 애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티격태격했다. 차는 올림픽대로를 빠져나가지도 못했는데 벌써 여행을 다녀온 듯한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저녁께 첫 숙박지인 하이원리조트에 도착했다. 대충 저녁을 때우자 석대인이 내게 사인을 보냈다. 카지노로 게임을 하러 가자는 것. 와잎에게 슬쩍 물었다. 와잎은 나를 물으려고 했다. 결국 석 먼저 카지노로 향했다. 애들을 억지로 재운 뒤 밤 9시쯤 우리도 카지노에 갔다. 별천지였다. 우리는 각자 자리에 앉아 가산을 탕진했다. 돈 1만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몇 시간 만에 본 석은 몇 년은 늙어 보였다. 그래도 자리를 잘 잡아서 돈은 별로 안 잃었다며 한 방 터지면 쇠고기 먹자고 했다. 석은 그 다음날 아침에도 쇠고기를 벌려고 카지노에 갔다. 우린 그날 라면을 먹었다.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둘째 숙소인 양양수련원에 도착한 게 저녁께였다. 와잎은 본격적으로 술을 먹어야 한다며 인근 마트에서 술을 샀다. 저녁을 먹인 뒤 또 억지로 애들을 재우고 술판이 벌어졌다. 우리는 숙소에서도 마시고 인근 하조대 해수욕장에서도 마시고 상경하다 들른 가평 닭백숙집에서도 마시고 주야장천 쓰레기처럼 마셨다. 난 휴가가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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