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잎은 망설였다. “3박4일은 너무 길지 않냐. 나만 개고생하는 거 아니냐”며 난색을 표했다. 다음주에 강원도로 휴가를 같이 가자는 석대인(966호 ‘위장커플과 엄마 된 X의 개방전’ 참조)이 급제안을 한 차였다. 석대인이 이미 숙소를 다 마련했으니 우린 몸만 가면 된다고 달랬는데도 좀처럼 내켜하지 않았다. 왜? 5박6일 세부 가자며? 세부는 좋고 강원도는 싫으냐? 니가 아주 카드가 빵꾸나봐야 정신을 차리지? 글고 개고생은 니가 하냐? 너 데리고 휴가 가는 내가 하지~.
다음날, 와잎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며 애 보고 있을 테니 혼자 다녀오라고 넌지시 말했다. 앗싸! 이게 꿈이냐, 생시냐? 갑자기 심장박동이 거세지면서 몸에 피가 마구 돌았다. 근데 웬일이냐 니가? 어제 술 많이 먹었니? 제정신은 맞니? 술 먹고 노는 자리라면 회사 회식에도 따라올 기세였던 와잎이 왜? 우선, 진정해야 한다. 너무 급반색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난 담담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렇다고 자기가 안 가면 되나?”(당연히 되지~ 암 되고 말고!) “가족 휴가인데 같이 가야지.”(혼자만의 휴가 좀 가보자~ 제발~) “그렇게 가기가 싫어?”(억지로 가면 쓰나~ 집 나가면 개고생이야~)
이 정도면 됐을까? 하고 있는데 와잎이 말했다. “아냐~ 오래 가면 애도 힘들고 나도 힘들고 그냥 자기 혼자 갔다와~.” 누구냐? 넌! 니가 진정 내 와잎이냐? 난 벅찬 감격을 꾸역꾸역 겨우 숨기며 한마디를 보탰다. “자기가 없으면 재미없잖아~.”(재미만 있잖아~ 행복만 있잖아~ 자유만 있잖아~) 이 정도까지 했으면 먹고 떨어지겠지라고 생각하며 여행 가서 뭘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와잎이 말했다. “그래? 그지? 내가 없으면 재미없겠지? 정 그렇다면 같이 가야지, 뭐~.” 야~ 사람이 빈말도 못하냐?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냐? 귀에도 살쪘냐?
그렇게 나홀로 휴가는 저 멀리 사라지고 석대인 부자와 우리 가족은 한차로 휴가를 떠났다. 출발하자마자 뒷자리의 애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티격태격했다. 차는 올림픽대로를 빠져나가지도 못했는데 벌써 여행을 다녀온 듯한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저녁께 첫 숙박지인 하이원리조트에 도착했다. 대충 저녁을 때우자 석대인이 내게 사인을 보냈다. 카지노로 게임을 하러 가자는 것. 와잎에게 슬쩍 물었다. 와잎은 나를 물으려고 했다. 결국 석 먼저 카지노로 향했다. 애들을 억지로 재운 뒤 밤 9시쯤 우리도 카지노에 갔다. 별천지였다. 우리는 각자 자리에 앉아 가산을 탕진했다. 돈 1만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몇 시간 만에 본 석은 몇 년은 늙어 보였다. 그래도 자리를 잘 잡아서 돈은 별로 안 잃었다며 한 방 터지면 쇠고기 먹자고 했다. 석은 그 다음날 아침에도 쇠고기를 벌려고 카지노에 갔다. 우린 그날 라면을 먹었다.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둘째 숙소인 양양수련원에 도착한 게 저녁께였다. 와잎은 본격적으로 술을 먹어야 한다며 인근 마트에서 술을 샀다. 저녁을 먹인 뒤 또 억지로 애들을 재우고 술판이 벌어졌다. 우리는 숙소에서도 마시고 인근 하조대 해수욕장에서도 마시고 상경하다 들른 가평 닭백숙집에서도 마시고 주야장천 쓰레기처럼 마셨다. 난 휴가가 가고 싶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정우성 “친자 맞다”…모델 문가비 출산한 아들 친부 인정
[단독] 김건희 초대장 700명…문제의 ‘여사 라인’ 정권 출범부터 잠복
세계 5번째 긴 ‘해저터널 특수’ 극과 극…보령 ‘북적’, 태안 ‘썰렁’
[사설] 의혹만 더 키운 대통령 관저 ‘유령 건물’ 해명
박홍근 “휴대폰 바꾼 대통령 부부, 폐기하면 증거인멸…수사기관에 제출하라”
‘야스쿠니 참배’ 인사 보내 놓고…일 “추도식에 한국 요구 수용” 강변
이재명 오늘 오후 ‘위증교사 의혹’ 1심 선고…사법 리스크 분수령
한동훈 “날 끌어내리려는 것이냐”...‘당원게시판 의혹’ 공개 설전
한동훈, 동덕여대에 누워 발 뻗기 [그림판]
[단독] 북파공작에 납치돼 남한서 간첩활동…법원 “국가가 18억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