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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미생이더라

인기 웹툰 <미생>을 단편영화로 만드는 ‘영화판 장그래들’과 원작자 윤태호가 나눈 이야기… 찬란한 10대를 형벌로 만들어버린 시대를 견뎌내는 법
등록 2013-05-23 11:05 수정 2020-05-03 04:27
962호 레드기획

962호 레드기획

‘내게 허락된 불빛이…. 그런 게 있을까, 내게.’
2012년 초, 고졸 출신 20대 청년 장그래는 서울의 빌딩숲 야경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읊조렸다. 국내 굴지의 종합상사 ‘원인터내셔널’ 낙하산 인턴으로 출근하기 전날 밤이었다. 바둑 신동이던 그는 11살 때부터 7년간 한국기원 연구생이었지만 프로 입단에 실패한다. 가세가 기울면서 취직을 했으나, 낯선 회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도망치듯 군 입대를 한 그였다.
만화가 윤태호(44)의 인기 웹툰 (이하 ) 주인공 이야기다. 포털 사이트 다음을 통해 연재 횟수 100회를 훌쩍 넘긴 이 작품의 댓글에는, 등장인물들에 ‘빙의’됐다는 사연이 유독 많다. 여기, ‘영화판 장그래’들도 그랬다. 김태희(30)·손태겸(27) 감독, 민예지(29) 작가는 한 달 동안 등장인물 6명의 프리퀄(원작 내용에 앞선 사건을 담은 속편)을 모바일용 단편영화로 만들고 있다.
청년들과 윤 작가를 이어준 끈은 유명 광고인 박웅현(52) TBWA코리아 수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ECD)다. 웹툰으로만 보기 아깝다고 여기던 의 영화화를 떠올렸다. 원전에 손을 대기보다는 ‘외전’ 형식이, 이왕이면 장그래 또래에게 제작 기회를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찬란한 10대를 형벌로 만들어버린 기성세대로서, 후배 세대에게 사회적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윤 작가도 이런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5월10일 금요일 오후, 세대를 초월해 한 팀이 된 5명을 서울 한남동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옥에서 만났다. 서로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라고 청했다. 미생인 기자 역시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오고 간 대화를 재편집했다. _편집자
장그래는 윤태호 작가의 과거다. 영화를 잘 만들고 싶어 하는 청년들의 오늘은, 만화가로 성공하길 소망하던 윤 작가의 지난날과 겹쳤다. 성장 배경과 나이대가 다른 박웅현 디렉터와 윤 작가는 을 통해 교감했다.

박웅현(이하 박) 사실 저는 웹툰을 잘 안 봐요. 미디어 따라가는 게 늦는 편이에요. 민음사 박상준 대표가 친한 후배인데, 을 꼭 보라고 하더라고요. 주변에서도 난리였고. 그래서 찾아봤죠. 작가님이 궁금하더라고요. 데이트 신청을 했어요. 몸으로 세파를 헤쳐온 분의 포스가 느껴지더라고요. 그게 아주 좋았어요.

윤태호(이하 윤) 장그래처럼 저도 특기생이었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 신문에 만화를 그렸고,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교실 뒤 칠판의 절반을 내주면서 만화를 연재하라고 하셨어요. (일동 감탄)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 집에서 보던 를 표절하는 흑역사가 시작됐죠. (일동 폭소)

민예지(이하 민) 혹시 그림을 못 그리게 되면 다른 거 뭐할까, 그런 생각은 안 하셨어요?

어릴 땐, 당연히 대학 진학을 생각하잖아요. 만화과가 없으니까 미대 진학을 꿈꿨죠. 만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만화가는 연예인 같아서 ‘어떻게 내가 감히’란 생각도 있었어요. 집이 망해서, 미술교육과에 지원했다 떨어졌어요. 아버지가 ‘인문계로 재수할래?’라고 하시더라고요. 평생 그림만 그렸는데. 울컥 화가 치밀어 ‘만화 그릴래요’ 했더니 ‘어, 어’ 그렇게 된 거예요. 그림 그리는 것과 다른 일에 대한 능력차가 극단적으로 커서, 다른 꿈을 꿔본 적이 없었어요.

계속 쓰고 싶은 ‘제 것’이 있어야 한다는 불안감이 큰 것 같아요. 책 한 권,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하나 건져야 내가 살 텐데’라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취재 과정에서 이런 걸 느꼈어요. 30살의 내가 지금처럼 귀가 밝았을까. 20대 때 남 신경 안 쓰고 강퍅하게 살던 내가 없었다면, 또 그런 나날에 대한 후회가 없었다면, 내레이션을 얼마나 건조하게 썼을까. 20살 땐 성공해야겠다는 각오가 너무 커서, 이문열 선생님 책을 사면 이력을 본 뒤 데뷔 작품부터 다 사서 순서대로 읽었어요. 연보에 나이를 적어두고 ‘아직 난 20살이야’ 이러면서 안심하고. (웃음) 20대 땐 책을 읽으면서도 목적이 있었어요. 뭔가 뽑아먹어야지 하면서 메모하고. 30대 중반부터 3년간 슬럼프를 겪으면서, 책 읽을 땐 훌륭한 독자가 되고 영화를 볼 땐 좋은 관객이 돼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여행도 작가 입장으로 가면 재미없고 많은 경험을 못해요. 나이를 먹으면서 놓고 지내다보면, 경험이 축적돼 지들이 못 견디고 삐져나오는 것 같아요.

김태희(이하 김) 작가님도 슬럼프가 있었나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어요?

지난 5월10일 서울 한남동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옥에서 웹툰 ‘미생‘을 모바일용 단편영화로 만드는 작업에 참여한 이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태희 감독·박웅현 디렉터·손태겸 감독·민예지 작가·윤태호 작가.

지난 5월10일 서울 한남동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옥에서 웹툰 ‘미생‘을 모바일용 단편영화로 만드는 작업에 참여한 이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태희 감독·박웅현 디렉터·손태겸 감독·민예지 작가·윤태호 작가.

“자가발전 해야 안 지쳐”

저는 거부를 많이 당했죠. 3개월간 원고를 준비해 신문사에 가져갔는데 수정하자 어쩌자 하면서 총 6개월의 시간이 흘렀어요. 그러다 원래 연재하던 작가의 데뷔작이 재연재됐어요. 훌륭한 작품이었지만, 20년 전 작품에 밀린 게 괴로웠죠. 슬럼프는, 그냥 안 믿어요. 누구한테나 일이 잘 안 될 때가 있잖아요. 나 스스로에게 그 상황을 피하는 걸 허락하지 않아요. 한번 ‘바람 쐬고 와서 일할까’ 하면, 몸이 머리한테 자꾸 비슷한 걸 요구할 것 같아요. 그래서 일이 되든 안 되든 자리에 앉아 있어요. 회피하는 습관이 들면 연재할 시간을 까먹게 되니깐.

손태겸(이하 손) 지금 내가 부족한데, 뭘 더 쌓아야 하는데. 혼자 있으니까 방만해지고. 어떻게 해야 꾸준히 해나갈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해요.

문하생 때 별명이 ‘연습의 신’이었어요. 연습 방법을 굉장히 많이 만들어냈어요. 게으르고 연습하기 싫어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연습이 무엇일까 고민한 거죠. 어쨌든 실력은 늘어야 하니까. 그 방법 가운데 살아남은 몇 가지가 있어요. 22살 때 처음으로 자취방이 생겼어요. 기분이 정말 좋아서 방에 동그라미 모양의 시간표를 만들어 붙여놨어요. 문하생이 퇴근이 어딨어요. 그런데 전 퇴근을 했어요. 밤 9시부터 1시간 동안 배경 연습하고, 1시간 동안 데생 연습하고, 그리고 두세 시간은 습작 연습하고 그런 식으로. 어떤 연습 방법이건 일주일만 이 악물고 하면, 종이가 쌓이잖아요. 이만큼 쌓인 종이는 ‘내가 뭘 했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죠. 어떤 연습을 하더라도, 성공 경험을 가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게 ‘내부 발전기’가 돼요. 남들로부터 듣는 칭찬은 여기에 약간 기름칠을 해주는 거지, 자가발전을 해야 안 지치고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17살 때부터 영화 작업을 한 김태희 감독은 2008년 장편영화 을 연출했다. 그리고 5년. 준비하던 작품이 연이어 ‘엎어지면서’ 한동안 방황했다. 민예지 작가가 2006년부터 작업한 시나리오는 14편. 이 가운데 3편만이 극장에 걸렸다. 2011년 단편영화 으로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 3등상을 탄 손태겸 감독은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영화를 만든다. 어려운 고비를 수차례 넘겼을 윤태호 작가는 완생일까.

완생은 쟁취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사람이 지향하는 바가 있잖아요. 완생을 향하는 거죠. 그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닌가 생각해요.

“자기가 만든 규칙에 갇히더라”

저도 인간이란 존재는 끊임없이 미생이지 않을까 하면서 작품을 봤어요. 프로 입단에 실패한 장그래를 보면서 제 처지가 투영돼 울컥했어요. 좋은 기회를 얻어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 장편영화를 찍었지만, 프로도 아니고 아마추어도 아닌 어정쩡한 입장이 돼 있더라고요. 웨딩플래너를 해볼까 싶어 입사원서를 내서 합격한 적도 있는데, 영화 제작부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실은 토익·토플이 안 돼서? (웃음) 그런데 보험은 좋은 거니까 친구한테 팔아달라고 할 수 있지만, 결혼은 권유하기 힘들잖아요. 때마침 시나리오 각색 아르바이트가 들어와서 돈은 안 되지만 ‘그래도 영화잖아’라면서 했어요. 이번 작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찍고 있습니다.

장그래 에피소드 대부분에 감정이입이 됐어요. 어릴 때 일을 시작하면서 눈치도 많이 보고, 잘하는 척 연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원작에서 제일 좋았던 건, 내가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계속 고민하는 거였어요.

맞벌이를 하는 선 차장 부부 에피소드에서 사용한 다큐멘터리 같은 설명 방식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떻게 착안하셨는지 궁금해요.

제가 생각할 때 만화라는 매체가 가진 특성 중 가장 매력적인 건 ‘사사롭다’는 거예요. 보통 작가가 이름을 얻고 주변에서 바라는 게 많아지면 남이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혼자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 안에 갇히더라고요. 맞벌이 부부의 생각 차이를 보여주고 싶은데, 이것을 서사로 풀자니 너무 진부해질 것 같은 거예요. 그럴 것 같으면, 두 사람의 속마음을 알아보는 TV 프로그램처럼 해보자고 생각했죠. 왜냐, 이건 만화니까. 연재를 하다보면, 규칙에 갇힐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일부러 조금 과도하게 무엇인가를 해요. 실제 음악이 나오고 장그래가 날아다니는 에피소드도 ‘이건 만화입니다’라고 독자에게 인지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다섯 사람 중 유일하게 ‘조직’에 속한 박웅현 디렉터는 을 보며 회사를 나왔던 과거를 회상했다. 윤 작가의 일상은 항상 눈이 충혈돼 있는 오 차장의 삶과 맞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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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직 산업화 시대 아버지인 듯”

정말 좋아한 선배가 하루아침에 회사로부터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더라고요. 나도 그 사람도 동의가 되질 않았죠. 2000년대 초반인데 그때 셔터가 많이 내려갔어요. 여긴 있을 데가 아니다, 싶었죠. 그런 상황을 많이 봤어요. 조직이라는 데가 무서워요. 자기들이 필요하다 싶으면 반드시 잡고 자기들이 필요 없으면 바로 놔요. 내가 필요하다 싶으면, 집에 꽃을 보내고 집사람을 설득하기도 해요. 그러면 감동을 받아요. 그러다가도 해고 하루이틀 전에 ‘필요 없다’ 그래요. 사람은 그런 상황에서 상처를 받는 거죠. 조직은 상처를 안 받아요. 사람이 아니니까.

작품 연재 중이라 일주일에 3일만 자요. 지금도 제정신이 아니에요. 사무실과 집의 거리가 500m도 안 되는데 식구들을 자주 못 봐요. 집에 가면 서너 시간이 그냥 가버리니까 아예 못 들어가는 거죠. 를 연재할 때 5살 된 딸내미가 전화해서 ‘아빠, 오늘은 좀 들어오지’라고 말하는 거예요. 5살짜리 말투가 아니잖아요. 결국 원고 펑크 내고 집에 갔어요. (그런데도 행복하냐는 질문에) 전 아직 산업화 시대 아버지인 것 같아요. 많이 못 배웠다고 아이들에게 한을 풀거나 이러지 말자. 아이들이 아빠를 기억할 때 ‘자기 인생만큼은 꽤나 열심히 살다 간 사람’이라고만 떠올려도 제 몫을 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영화 찍은 거 마음에 드세요? 작업이 어디까지 진행됐나요?

만족이란 없지 않을까요? 작가님도….

전 ‘요르단 에피소드’를 그린 뒤 다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주한 요르단 대사관의 협조를 너무 많이 받아서 이거 망하면 끝장이라고 생각했죠. 부담감이 너무 커서, 어느 정도 나오니까 만족감이 오더라고요. 혼자 작업을 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위로해주지 않으면 버틸 수 없어요. 어지간하면 잘했다고 해요. 건강하게 버텨야 하니까.

저희가 그런 확신을 가지기엔 너~무 ‘미생’인지라.

시나리오를 쓴 뒤, 윤 작가님께 보여드리기만 했는데 ‘마음에 안 드시진 않았나’ 여쭤보고 싶었어요.

(고개 저으며) 전혀 아닙니다.

5월24일부터 매주 한 편씩 공개

방황을 끝낸 김 감독은 스릴러물을 구상 중이다. 손 감독은 장편영화를 준비할 계획이다. 가능하다면,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민 작가는 웹툰 각색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작업 결과가 어찌됐든, 3명의 미생은 성장할 것이다. 모바일 단편영화 은 5월24일 ‘장그래 편’을 시작으로 매주 한 편씩 공개된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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