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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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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붙은 팔과 다리 그다음

연장 이야기 첫 번째… 연장은 정직하게 일하는 몸의 연장(延長), 이 말을 명심하라
등록 2013-04-26 20:56 수정 2020-05-03 04:27

어설프기는 하지만 그래도 십수 년을 한곳에 코 박고 살다보면, 나름 이것저것에 대해 감이 잡힌다. 일하다가 제 몸 생각해 일 욕심을 거둬야 할 때를 깨닫는 지혜도 그중 하나다. 공부하고 가르쳐서 밥벌이하는 직업을 가진 나는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몸이 얼마나 정직한지 잘 몰랐다. 경험해보니, 일을 하면 몸이 피곤하고, 많이 하면 많이 피곤하고, 아주 많이 하면 아주 많이 피곤해서 병나기 쉬웠다. 장난 같은 이 말을 깨닫기까지 몇 년간 허리 통증으로 몇 차례 병원을 드나들어야 했다.

강명구 제공

강명구 제공

몸이 피곤한데도 욕심을 거두지 못하면 두 가지 손쉬운 해결책이 제 스스로 떠오른다. 하나는 일꾼을 쓰고픈 욕망이고, 다른 하나는 기계를 쓰고픈 욕망이다. 모두 돈으로 제 몸의 노동을 대체하는 일이다. 그러나 한번 해보시라. 두 가지 해결책 모두 그리 탐탁지 않다. 하루 일당 10만원도 적잖은 돈이거니와 모셔오고 모셔가고 아침·점심에 새참까지 준비해야 한다. 기계는 시끄럽고 위험하며 자주 손봐줘야 하고 언젠가는 고장 나기 마련이다. 고치다가 시간 가고 성격 버리기 십상이다. 좋은 것은 값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시골생활에서 일꾼과 기계는 필요하기는 해도, 욕심 줄이기, 제 스스로 요령을 터득해 일머리 깨우치기, 몸에 맞는 연장 고르기에 앞자리를 내줘야 한다. 십수 년의 경험으로 깨우친 바다.

순우리말인 ‘연장’은 농기구·도구·기계라는 말이 지니지 못한 반질반질 손때 묻은 인간적인 친숙함으로 다가온다. 그뿐이 아니다. 연장은 사용하다보면 단순한 도구가 아닌 내 몸의 연장(延長)임을 실감한다. 몸에 익어 쓰임새가 좋아져야만 농기구나 기계가 연장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좋은 연장은 내 몸에 붙어 있는 팔과 다리다. 그 몸이 힘들어지면 몸의 연장(늘림)으로써 연장을 사용하는 것이다. 나의 일동무인 ‘오 사장님’의 삽, 고모님의 호미, 잘 벼린 농부의 낫은 모두 연장이다. 내가 일할 때면 항상 차고 다니는 전지가위와 뒤춤에 꽂고 다니는 접이톱도 잘하면 연장 수준에 들 수 있으렷다.

이런 이치를 생각하면 시골생활에 어떤 연장을 우선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손쉬운 답이 나온다. 자신의 몸이 해야 할 일을 가장 초보적인 (그러나 동시에 가장 중요한) 연장을 써서 한 연후에 그다음 순위의 연장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이 순서다. 광고 전단지나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낸 ‘팬시’(fancy)한 연장에 홀려 지름신이 강령하시면 돈은 돈대로 잃고, 몸은 몸대로 곤해지고, 기계는 기계대로 고생해 먼지를 이고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1년에 고작 몇 번 세상 구경하기 일쑤다. 주인의 이런 투덜거림을 들으며. “이거 왜 이렇게 작동이 안 돼!” 그러고는 제 스스로 ‘버럭’이다. 고백하기 뭣하지만 내 경험이다.

경험에 비추어 권하고픈 (아니 권해야만 하는) 기초적 연장으로 우선 생각나는 것이 외발손수레, 삽, 곡괭이, 호미, 갈퀴, 전지가위, 톱 그리고 예초기다. 물론 이는 나처럼 대충 수준의 시골생활을 하는 얼치기 시골꾼이 보통 수준은 약간 넘는 진지함으로 상당 수준의 텃밭과 정원을 일구고 가꾼다는 가정하에 하는 이야기니 각자의 사정에 따라 연장과 농기구, 기계를 보태고 뺄 일이다. 자, 이제 아침도 든든하게 먹었겠다 일요일 아침이니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호로 미루고 폭 넓은 갈퀴를 들고 겨우내 떨어진 낙엽을 모아서 텃밭에 덮어주러 갈 시간이다.

아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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