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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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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착취물’ 유통 양진호, 14년 구형이 5년형 된 이유

불법촬영물 유통 양진호, 검찰 14년 구형했는데 1심에서 5년 선고
‘웹하드 카르텔’을 범죄집단으로 보고 적극적 처벌·추징 해야
등록 2023-02-03 21:12 수정 2023-02-06 13:07
불법촬영물 유통 카르텔을 구축한 혐의로 2023년 1월12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 양 전 회장이 2018년 11월 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돼 검찰로 송치되는 모습. 연합뉴스

불법촬영물 유통 카르텔을 구축한 혐의로 2023년 1월12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 양 전 회장이 2018년 11월 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돼 검찰로 송치되는 모습. 연합뉴스

2017년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죽음으로 몰린 피해자가 있다. 불법촬영 및 유포를 했던 전 연인에 대한 법적 대응을 마무리하고, 심리상담과 약물치료를 막 시작하며 삶에 대한 희망을 키우던 이였다. 아르바이트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분투하던 그는 제목만 바뀌어 웹하드에 또 올라왔다는 불법촬영 영상을 확인한 한 남성의 협박에 무너졌다.

나는 그가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살해’당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죽음의 책임을 어디에 물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살인을 저지른 집단의 정체를 확인했다. 바로 ‘웹하드 업체-헤비업로더-필터링 업체-디지털 장의 업체’가 담합한 ‘웹하드 카르텔’이다.

2023년 1월12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는 웹하드 카르텔을 구축한 중추 중 한 명인 ‘양진호’에 대한 1심 선고가 있었다. 기소 뒤 약 3년6개월 만이다. 이번 선고는 정보통신망법과 저작권법 위반, 업무상횡령 등에 대한 것으로 앞서 검찰은 양진호에게 징역 14년, 벌금 2억원, 추징금 514억원을 선고해달라고 서면으로 구형했다. 재판부(강동원, 김상희, 이유진)는 이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플랫폼 실소유주는 ‘바지사장’ 앞세워 처벌 피해

재판부는 기소된 영상물은 명백히 ‘음란물’에 해당하며, 양진호는 회사 설립부터 운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했고 회사를 실질적으로 경영했다고 봤다. 임원들에게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에 볼만한 영상(음란물)이 없다. 왜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느냐’고 질책하고, 필터링 업체 뮤레카 대표에게는 웹하드에 도움이 되도록 ‘음란물’ 필터링을 완화하도록 지시했으며, ‘성인물이 부족하니 업로드 조직과 연결해서 웹하드를 운영하라, 헤비업로더는 파트너로서 잘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웹하드 수익의 70~80%를 차지하는 ‘음란물’ 유통에 힘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어 양진호가 헤비업로더들이 게시한 영상물 중 일부만을 제재했을 뿐 판매자격 정지 등을 조처하지 않았고, ‘자료요청’ 게시판 운영을 헤비업로더와 연계해서 하는 등 공동정범으로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양진호에게 웹하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로서 ‘음란물’ 등의 유통을 방지하는 기술적 조치 체계를 갖출 의무가 있음에도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모니터링 담당 인원을 적게 배치하고 ‘음란물’ 제재를 하지 않았으며 허술하게 필터링을 관리하거나 ‘음란물’을 대량 업로드한 회원들에게 불법정보를 5회 이상 게시한 경우 판매자 자격을 취소하도록 한 내부 규정을 무시한 채 적발 횟수를 1회로 유지해주는 등 방조범의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불법촬영물이 아니라 연기 영상일 수 있다는 피고인(양진호) 쪽의 주장에 대해서는 해당 영상들이 피해자들로부터 영상의 적발, 차단, 삭제 요청을 받은 다른 회사가 피고인 회사에 전자우편으로 삭제를 요청한 것들이며, 그 내용을 봐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됐거나 반포된 것이 명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양진호가 파일노리와 위디스크의 회원들의 ‘음란물’ 유포 행위를 방조(일부는 공동가공)하는 등 불특정 다수 회원의 범행을 매개하는 식으로 부를 축적(2017년 346억원, 2018년 208억원가량)하는 등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심대하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이용자 기반의 플랫폼 운영자에게 ‘음란물’ 유통에 대한 책임을 적극적으로 묻기 어려운 현실에서 이번 선고 결과가 중형에 해당한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이런 플랫폼의 경우 이른바 ‘바지사장’을 내세워 실소유주와 실운영자는 처벌을 피하는 사례가 많다. ‘바지사장’도 플랫폼에 성착취물 등이 유통돼 적발되더라도 최대 징역 1년6개월 정도만 살고 나오면 그 대가로 얻는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플랫폼 운영자들의 책임의식은 바닥일 수밖에 없다. 웰컴투비디오(W2V)의 손정우나 AV스눕의 안아무개가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은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실제 운영자에 대한 처벌도 형편없는데, ‘바지사장’을 전면에 내세운 양진호가 실운영자로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의미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회사를 사금고처럼 이용”했다면서 추징은 포기

하지만 1심 결과는 여러모로 아쉽다. 우선 검찰이 기소할 때 웹하드 카르텔을 범죄단체 혹은 범죄집단으로 접근하지 않은 점이다. 성착취물 제작에 ‘직접’ 관여한 디지털성범죄자에게 형법 제114조(범죄단체 등의 조직)가 적용된 것이 2020년 ‘박사방’이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사례인 현실을 고려하면, 양진호와 공범들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양진호와 그 공범들은 공동의 목표를 가진, 통솔체계가 명확한 범죄단체·범죄집단으로 파악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양진호는 2011년 비밀업로드 조직인 ‘누리진’을 운영하고, 누리진과 필터링 업체 뮤레카의 협업으로 ‘음란물’을 유통하다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이후 ‘바지사장’을 내세워 더 교묘한 방식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수익창출형 디지털성범죄자’의 표본이다. 이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며 그 안에서 활동한 이들을 범죄단체·범죄집단으로 보고 강력하게 처벌해야 하는 이유다.

재판부가 추징을 포기한 것은 특히 더 부적절하다. 검찰은 양진호가 2015년부터 약 4년간 위디스크와 파일노리로 ‘음란물’ 약 388만 건을 유통하고, 이를 통해 총 350여억원(위디스크 176억원, 파일노리 173억원가량)의 수익을 얻었다고 보고 이를 범죄수익으로 규정해 추징해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해당 수익이 법인이 아닌 양진호 개인에게 귀속됐다고 인정할 자료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추징을 명하지 않았다. 양형 이유로 양진호가 회사를 자신의 사금고처럼 이용했다고 지적했음에도 말이다. 그 결과 양진호는 단 한 푼도 손해 보지 않았다.

양진호와 같은 ‘수익창출형 디지털성범죄자’에게는 범죄수익의 몰수·추징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감옥에서 몇 년을 보내는 것으로 수백억원이 보장된다면 ‘바지사장’이라도 기꺼이 하겠다는 범죄자에게 적합한 처벌 중 하나가 바로 돈을 뺏는 것이다.

공소사실 중 ‘음란한 영상’에 대한 ‘배타적 발행권’을 갖고 있다는 회사에 대해 해당 영상물의 실체에 대한 판단을 미룬 채 그 회사를 피해자로 규정해 저작권 침해로 접근한 것이나, 필터링·모니터링 과정에서의 기술 문제에 대해 운영자인 양진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한 점 등도 아쉽다. ‘음란물’ 등으로 규정된 영상 속 피해자들의 절차 참여 등에 대한 고민이 없던 점도 문제다. 최소 107건 정도의 영상은 불법촬영물이었고 영상 삭제 등을 의뢰한 피해자들을 특정 삭제 업체가 대리한 것이기 때문에 검찰이 의지가 있었다면 웹하드 카르텔의 실체를 더 명확하게 알릴 수 있었을 것이다.

피해자의 죽음은 선택 아니라 ‘살해’

선고를 앞두고 이날 새벽에 오랜만에 웹하드를 모니터링했다. 주로 늦은 밤이나 새벽에 불법촬영물·성착취물 등이 웹하드에 게시되기 때문이다. 예전보다는 줄었지만 여전히 ‘음란물’이 유통되고 있었다. 영상 속 피해자들에게는 진행형의 고통이 이어지는 것이다.

웹하드에 끊임없이 올라오던 영상을 본인이 직접 확인하고 삭제 요청을 하며 하루하루 말라가던 피해자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가 죽음으로 몰려가며 유서조차 남기지 않은 것은 이 세상에 더는 자신의 흔적이 남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일 거다. 아직 그의 명복을 빌 만큼의 변화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살인집단인 웹하드 카르텔에 대한 추적을 멈출 수 없다. 너무 늦지 않게 그의 명복을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빌 수 있길 바란다.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저자*마녀는 성폭력 재판이 열리는 전국 법원을 찾아가 지켜보고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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