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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 “언제나 동지가 일순위, 가족 뒷전으로 한 내가 틀렸다”

대선 후보의 성찰③ 한상균, 가족 외식·여행은 언감생심…이제 같은 곳 바라보려 애쓰겠다
등록 2025-04-25 16:38 수정 2025-04-27 21:19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으로 이어지는 초유의 사태 속에 시민은 ‘성찰할 줄 아는 지도자’의 탄생을 염원하고 있습니다. 한겨레21은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 선언을 한 후보자들이 얼마나 깊은 성찰을 하고 있는지 세상에 내보일 ‘내가 틀렸다’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2022년 미국 뉴욕타임스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에 언론이 먼저 모범을 보이려 한 기획(I was wrong)과 같은 제목입니다. 대선 후보자들이 각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지금 생각해보니 자신이 틀렸던 순간에 대해 고백합니다. 세 번째 기고는 한상균 사회대전환 연대회의 대선 경선 후보의 글입니다. —한겨레21 대선보도팀

전남 나주 봉황면 깡촌에서 나고 자랐다. 3남 3녀의 둘째다. 집안 살림은 당시 수많은 빈농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아버님은 엄하셨고, 어머님은 농사일, 집안일, 자식 교육 등 모든 걸 몸이 부서져라 책임지셨다. 돌아보면 가부장적 위계질서와 남녀 역할 구분 쉽게 말해 남자는 나가서 큰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 살림 잘 챙기면 최고라는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랐다.

공부에 큰 관심도 없었지만 기술을 배워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광주에 있는 전남기계공업고등학교(현 광주공고)로 유학을 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광주시민의 한 사람으로 전두환 계엄군의 학살과 만행을 목격했고 무엇이 옳은지 알았기에 친구들과 소년시민군으로 전남도청에 있기도 했다. 1985년 당시 지프차를 생산하던 쌍용자동차 전신인 회사에 입사해 노동자 한상균이 있게 된 출발인 노동자의 삶을 시작했다.

16일 서울 중구 한화빌딩 앞 고공농성장 앞에서 사회대전환 대선 연대회의 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권영국 정의당 대표와 한상균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 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연대회의 제공

16일 서울 중구 한화빌딩 앞 고공농성장 앞에서 사회대전환 대선 연대회의 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권영국 정의당 대표와 한상균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 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연대회의 제공


‘지금까지 살면서 부끄럽다고 할만한 것이 있을까?’ 싶었다. 없을 수 있을까? 찾아보면 수도 없이 많을 테지만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족 특히 아내에 대한 이야기다. 1990년 부부의 연이 되어 함께한 세월이 35년이다. 아내에게 한상균은 남편 그리고 가장이 아니라 세상과 결혼하고 세상을 책임지려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1987년, 민주화와 노동자 대투쟁의 바람은 어김없이 쌍용자동차 공장에도 들어왔다. 평범할 수도 있었던 공장노동자 생활은 이때부터 바뀌었다. 출근해 일하고, 퇴근해 가족과 함께 하는 고단하지만 평범한 노동자의 삶이 아니게 된 것이다. 어용노조를 없애고 민주노조를 만드는 일에 주도적으로 나섰다. 잔업까지 10시간을 일하고도 퇴근을 하면 집이 아니라 동료들을 만나 토론하고, 의기투합해 회사의 부당한 탄압과 통제에 맞서는 노동운동이 진짜 직업이 된 것이다.

한때는 자동차를 만드는 큰 공장이라 잔업하고, 휴일 특근까지 하면 월급도 좀 되고, 차가 잘 팔릴 때는 연말에 성과급도 받고 하던 시절이 잠깐이나마 있기도 했다. 정리해고 광풍이 오기 전 잠깐의 호시절에도 아내에게 제대로 월급을 가져다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주변에 회사 동료 가족들이 많아 누구네는 얼마를 받았다더라는 소식이 혹시나 아내에게 들어갈까 조심하고 걱정했던 웃지 못할 이야기도 생각난다. 아내가 몰랐을까? 알고도 모른 척 그렇게 35년이 되었다.

그 흔한 외식, 여행은 언감생심이었다. 언제나 1순위는 민주노조 운동이었고, 뜻을 같이 나눈 동료이고 동지들이었다. 가족은 특히 아내는 언제나 뒷전, 2순위, 3순위였다.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순위에 있었는지도 장담하지 못하겠다.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77일간 공장에서 점거파업을 했을 때 아내는 공장 밖에서 가족대책위와 함께 참 많은 역할을 했다. 큰 언니로, 소문난 음식 솜씨로 아이들과 수많은 가족들, 연대자들을 품고 챙겼다. 김장 때마다 엄청난 양의 김장을 함께해서 도움과 연대를 준 많은 사람에게 보내주는 일도 했다. 아내는 여전히 강했고 넓고 깊었다.

인생계획에 없었던 감옥생활을 2차례에 걸쳐 5년 6개월을 했다. 감옥생활은 나 자신에게는 더 숙성하고, 돌아보고, 새로운 전망과 계획을 만드는 담금질의 시간이고 공간이었지만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어떤 시간이었을까? 그런 속마음 한번 드러내고 이야기하지 못했다.

정년을 마치고도 노동자 정치를 바로 세우고 더 강하게 해야 한다며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전국을 싸돌아다니는 모습에 아내는 예나 지금이나 잔소리는 할지언정 언제나 나를 믿고 지지해주었다. 물론 사전승인이 아니라 대부분 사후승인이긴 하다.

부끄럽지만 40여년 노동운동과 정리해고에 맞서, 박근혜 정권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던 투쟁의 현장, 5년 6개월의 감옥생활까지. 부끄럽지 않게 살아온 길에 아내와 가족과 함께 하지 못했다. 부끄럽다. 틀렸다. 그리고 윤석열 퇴진과 함께 노동자 정치, 진보정치를 다시 세우겠다 다짐하고 노동자대통령후보로 나선 지금도 틀리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늘 마주 보지도 못했지만 이제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볼 수 있도록 한상균이 정말 애쓰겠소’라고 아내와 가족들에게 이 지면을 빌려 나의 틀림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한상균 ‘사회대전환 연대회의’ 대선 경선 후보

한상균은 누구?

1985년 지프차 생산 기업 거화 입사, 1987년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추진위원장, 2008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201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제11대 위원장, 전태일노동상 특별상 수상.

한상균 후보 출마 영상 보러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e3ZjCyfJrjA

사회대전환 연대회의 선거인단 참여하기 https://buly.kr/A45J2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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