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받침 여인들’이 있었다. 소피 마르소(사진), 피비 케이츠, 브룩 실즈. 나는 국민학생 때 소피 마르소를 ‘간택’했다. 책상머리에 걸려 있는 달력에도 월별로 이 언니들이 웃고 있었다. 나는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소피 마르소 얼굴이 박힌 1980년대 그 어느 해 1월 달력을 바꾸지 않았다. 남자가 이 정도 지조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소피 마르소를 두고 나온 ‘오줌 마려우냐’는 식의 ‘개초딩 유머’를 이겨낸 결과였다.
그 시절에는 책받침이 꼭 필요했다. 연필이나 샤프펜슬을 꾹꾹 눌러 쓰다 보니 공책면에 요철이 도드라졌다. 필기감도 몹시 나빴다. 공책 크기의 플라스틱 판때기를 공책 사이에 끼우면 글씨가 신나게 잘 써졌다. 제본선 안쪽에 바짝 책받침을 끼우지 않고 쓰면 공책에 뽕뽕 구멍을 내기 일쑤였다. 당시 책받침 앞면에는 주로 로봇 만화나 공주 그림이, 뒷면은 구구단과 알파벳, 도량형이 가득했다. 귀퉁이에 센티미터 눈금을 그려넣은 기능형 책받침도 많았다.
수업이 지루하면 책받침 겉에 얇게 발라진 비닐을 정성스레 벗겨내고는 했다. 겨울이면 책받침을 옷에 대고 마구 비벼 정전기를 발생시킨 뒤 머리 긴 계집애들 머리털을 곤두서게 했다. 당시 전국의 국민학교에서 발생되는 정전기를 모으면 발전소 하나는 되지 않을까. 교실에 설치된 장작 난로 열기를 쪼이면 책받침은 흐물흐물해졌다. 이렇게 저렇게 구겨놓았다가 다시 열을 가해 판판하게 펴놓는 재미도 있었다. 나중에 중학교 기술 시간에 배운 바로는 책받침은 ‘열가소성 수지’가 분명했다. 압권은 책상 위의 글래디에이터, 책받침 싸움이었다. 책받침 날을 가지고 번갈아가며 상대방 책받침을 가격하는 초간단 놀이였다. 친구놈 책받침을 먼저 쪼개는 사람이 이겼다. 당시에는 레어 아이템이었던 투명하게 여러 겹 코팅된 책받침은 의천검이자 도룡도였다. 활짝 웃는 브룩 실즈가 마징가Z와 둘리 머리를 반으로 쪼개버렸다. 나는 사랑하는 소피 마르소를 싸움터에 내보낼 수 없었다.
고등학생 때 홍콩 영화배우 우첸롄(오천련)으로 살짝 갈아탔다. 왕쭈셴(왕조현)파도 있었지만 좀 그랬다. 소피 마르소는 잊기로 했다. 영화 를 보고 나니 ‘서양인보다는 역시 동양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장지구, ‘하늘은 졸라 길고 땅은 졸라 지속된다’는 뜻이지만 오천련에 대한 사랑은 대충 몇 개월로 끝났다. 친구들을 따라 일본 아이돌 가수로 갈아타야만 했다. 지금은 소녀시대라지만 당시에는 ‘왜색 문화’가 ‘스고이’했다. 사카이 노리코, 나카야마 미호(영화 의 그 여인) 같은 가수들의 잘난 얼굴이 책받침으로 코팅됐다. 솔직히 조상님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실제로 광복절 하룻동안에는 얘네들이 부르는 일본 노래를 듣지 않았다. 풋.
1984년 신문에는 이런 독자투고가 실렸다. “국민학교에 입학한 딸아이가 선생님에게 선물을 받았다고 자랑하며 내어놓는 것을 보니 모 정당 의원의 사진이 들어 있는 책받침이었다.”
요즘도 판촉용 책받침이나 소녀시대 책받침이 팔리기는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책받침을 사용하는 초딩은 거의 보지 못했다. 아, 낮술 마 셨더니 갑자기 소피 마르소가 생각나고 오줌 마렵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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