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이도 마리아 브레라의 ‘데빌스’는 2009년 말 미국에 본사를 둔 대형 투자은행 ‘엔와이엘’(NYL)의 유럽본부장 데릭 모건이 마시모 루게로에게 승진 소식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갓 마흔의 마시모는 회사의 최연소 파트너가 됐고 데릭의 뒤를 이어 유럽본부장을 맡게 됐습니다. 연봉 3천만달러로 유럽 금융인 중 톱 5에 드는 자리입니다. 데릭은 별일 아니란 듯이 “크리스마스 선물이야”라고 툭 던지면서도, 자신은 고향인 미국 뉴욕으로 돌아가 글로벌 경영진 중 한 명이 될 것이니 앞으로도 자기 통제를 따르라고 분명하게 못박습니다.
그날 저녁 크리스마스 파티장에서 영국 런던 사무소 직원들은 본부장 교체 소식으로 흥분과 질투에 휩싸입니다. 10년 전 데릭이 마시모를 영국계 은행에서 스카우트할 때 같이 온 폴 패러독과 카림 마단은 마시모의 오랜 동료들입니다. 아일랜드 더블린 빈민가 출신의 폴은 거칠게 살면서도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고 런던의 은행에까지 진출했습니다. 그는 소리 소문 없이 업무를 처리하는 데 능숙합니다. 인도 카슈미르 지역 카펫 상인의 아들 카림은 고급 양복점에서 맞춘 양복에 명품 넥타이와 구두를 갖춰 입고 과시하기를 좋아합니다. 가난한 인도 수학자를 백만장자로 만들어준 세계화와 금융화를 열렬하게 찬양합니다.
신참 자코모 조르조는 유체역학을 전공한 물리학자입니다. 마시모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로마 출신입니다. 퀀트(금융공학자)로 엔와이엘에 입사한 자코모는 트레이더의 후각은 존재하지 않고 돈은 오로지 수학적 모델을 따른다고 믿습니다. 그는 열역학 제2법칙에 기반해 채권의 적정 가치를 계산하는 신경망 모델을 세웠는데, 위대한 물리학자 제임스 맥스웰을 인용하며 모든 분자의 상태를 인식하고 조절할 수 있는 악마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한 열역학 제2법칙은 관철된다고 주장합니다.
프랑스 채권 담당 르네 뒤몽은 전형적인 프랑스 엘리트들의 코스를 밟은 인물입니다. 귀족 집안 출신으로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했고 세계 톱 클래스 경영대학원 인시아드에서 엠비에이(MBA)를 받았습니다. 수학 모델 기반 투자를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르네는 프랑스 국채에 대규모 주문을 내서 대형 은행이 뛰어들었다는 것을 다른 회사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그리고 각국의 은행과 펀드에 전화로 매수 주문을 넣어 미끼를 던집니다. 다른 기관들이 이 매수에 따라붙고 채권 가격은 빠르게 상승합니다. 그는 자코모를 바라보며 “애송이, 이게 톱스핀이라는 거야. 맥스웰의 악마가 없다고? 내가 곧 악마야. 내가 곧 시장이라고” 하면서 거드름을 피웁니다. 이것을 지켜보던 마시모는 ‘이런 시장조작’은 용납할 수 없다며 원상 복구하라고 지시합니다. 르네는 자신이 아닌 마시모가 유럽본부장으로 선택된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치를 떱니다.
미국 텍사스 출신 래리 러벅은 닷컴 열풍 때부터 데릭과 함께했습니다. 하지만 데릭이 장군(이사회 멤버를 지칭)이 됐는데도 자신은 아직도 전쟁터에서 싸우는 신세고, 후배인 마시모에게도 뒤처졌으니 속이 편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여러 나라, 여러 계층, 여러 전공의 인물들이 갈등하고 협력하면서 오직 하나의 목표 ‘더 큰 돈’을 향해 경쟁합니다.
마시모의 지휘로 높은 수익을 올리던 런던 사무소에 첫 번째 위기가 찾아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은 2008년부터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라는 이름으로 미국 국채와 주택담보대출을 유동화한 증권(MBS)을 대규모로 사들이면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에 들어서 경제가 호전되는 조짐을 보이자 6월에 대규모 자산 매입을 중단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마시모는 미국 국채 가격과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는 데다 각각 5억달러씩 베팅합니다.
남들보다 한순간이라도 앞서야 한다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움직인 것입니다. 마시모는 그리스의 신 카이로스를 늘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바람의 날개 위에서 영원한 달리기에 몰두합니다. 긴 머리칼로 얼굴을 덮었지만 뒤통수는 벗겨져 있어, 지나가버린 뒤에는 아무도 그를 붙잡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기회의 본질이라고 마시모는 생각합니다.(이 소설의 작가 브레라가 이탈리아에 설립한 금융회사 이름도 카이로스입니다) 하지만 연준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마시모의 예상과 다르게 미국 국채와 MBS 매입을 재개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양적완화 시즌2를 예고한 것입니다.
큰 손실을 입은 마시모는 양적완화가 지속되면 미국 화폐가치에 대한 신뢰가 하락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하락 베팅을 두 배로 키웁니다. 일부 트레이더가 우려를 표하지만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이라는 달러의 독점적인 지위는 침범 불가능한 법칙이 아니고 도그마’라면서 도전해야 한다고 설득합니다. 베팅을 키운 직후 데릭이 아침을 같이 먹자고 연락해 옵니다. 뉴욕에서 런던으로 날아온 것입니다. 마시모는 데릭에게 자신의 투자 이유를 설명하지만 데릭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데릭은 반대로 지금 달러가 위험해 보이지만 무대의 조명이 유럽으로 옮아가면 달러는 갑자기 안전 자산이 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마시모는 불안정한 시장의 희생자는 미국이 아니고 유럽이 되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라는 은행이 아니에요. 유럽을 리먼브러더스(150여 년간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렸던 이 투자은행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초기에 파산했다)처럼 다룰 수는 없어요’라고 항변합니다. 르네가 작은 악마였다면 데릭과 뉴욕의 거물들은 큰 악마였던 것입니다. 이들은 세계적 차원에서 시장을 조종하고 지배합니다.
마시모는 서둘러서 미국 국채와 달러화 하락 베팅에서 철수합니다.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나올 때도 폴의 세심한 관리로 거래는 다른 회사의 이목을 피해 조용히 진행됩니다. 비록 8천만달러라는 큰 손실을 보았지만 아직 만회할 시간은 충분합니다. 그리고 어디에서 만회해야 하는지도 압니다. 조명은 유럽의 가장 약한 곳, 알프스 산맥과 피레네 산맥 아래를 비출 것입니다. 마시모의 팀은 스페인 국채를 팔아치우고 독일 채권을 사들입니다. 이탈리아 국채를 잔뜩 보유한 이탈리아 은행 주식을 대규모로 공매도 합니다. 심지어 프랑스 채권 담당자인 르네까지 포르투갈과 스페인 국채 공매도에 뛰어듭니다. 사람들에게 ‘피그스’(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부채위기로 불리는 사태가 시작된 것입니다.
소설은 이 이후에도 여러 차례 큰 반전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독자를 위해서 남겨두겠습니다. 이 소설은 극적 효과를 위해 다소 과장도 있고 일부 음모론적 요소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베테랑 유럽의 금융인이 직접 겪은 것을 소설로 구성한 것이라 상당히 구체적이고 생생합니다. 예전에 소개한 프랑스 작가 플로르 바쉐르의 ‘조직된 한패’와 더불어 이 소설은 유럽인들이 바라본 2010년 유럽 국채 위기를 접할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지면 때문에 소개하지 않았지만 유럽 금융 엘리트들의 가족, 외도, 소비와 같은 사생활도 자세히 묘사돼 흥미를 더합니다.
신현호 이코노미스트·‘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저자
* 일반인이 경제현상에 쉽게 다가가고 동시에 경제와 금융 종사자가 소설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소설 속에서 경제를 발견하는 연재입니다. 2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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