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는 혁명의 시대였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서구의 ‘골든 에이지’(Golden Age)는 ‘붉은 아이들’을 낳았고, 그 아이들은 흑인 민권운동을 기화로 성해방운동, 베트남전 반대를 거쳐 68혁명에 이르기까지 1960년대를 반체제의 열기로 들끓게 했다. 기성세대가 만든 가치관과 세계를 야멸차게 부정한 그들의 무기는, 급진적인 문화와 전복적인 상상력이었다. 훗날 ‘신좌파’로 명명된 이들로 인해 지구 북반구의 대부분에서 기존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계급투쟁적 사회운동이 아닌, 인권·여성·생태를 화두로 한 신사회운동이 출현했다. 근대 이후를 모색하는 움직임이었다.
자유와 개발 향한 욕망 충돌한 시대
우리의 1960년대는 4·19로 시작해 3선개헌으로 끝났다. 4월 혁명이 열어젖힌 자유의 공간은 이듬해 5·16 군사쿠데타로 서둘러 폐쇄됐고, ‘장미’에 대한 요구는 ‘밥’에 대한 요구로 대체됐다. 굴욕적인 한-일 협정이 체결됐고, 베트남에 군대를 보냈다. 1969년에는 박정희의 3선을 위한 개헌까지 이루어졌다. 민주주의 없는 ‘근대화’였다. 그렇게 서구의 시간과 한국의 시간은 그 물리적 거리만큼 떨어져 있었다.
권보드래 교수(고려대 국문과)와 천정환 교수(성균관대 국문학과)가 함께 쓴 (천년의상상 펴냄)는 이러한 1960년대에 주목한 책이다. 한국현대사 박사 학위 논문의 연구 대상 시점이 1960년대로 이동 중인 상황에서 나온 두 국문학자의 1960년대 연구는 학계의 새로운 자극이 될 만하다.
1960년대는 ‘개발’과 ‘독재’를 주도한 산업화 세력과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싸운 민주화 세력의 대립이 발원한 시대다. 저자들은 한국의 오늘이 그때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자유’로 상징되는 4·19와 ‘빵’으로 표상되는 5·16은 공유할 수 없는 특정 집단만의 기억으로 나뉘었고, 이후 한국 사회에는 이른바 ‘민주화 대 산업화’라는 상투적인 이항 대립각이 세워졌다. 저자들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온갖 불협화음이 그때에서 비롯됐으며, 우리는 여지껏 1960년대의 화두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말하는 이유다. 자유와 민주주의, 풍요와 개발을 향한 욕망이 충돌하는 그 시대의 그늘이 오늘날까지 여전히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것이다.
국문학자인 저자들은 그 갈등의 기원을 추적하려고 문화사의 방법론을 동원했다. 등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 담론과 1960년대 문학작품의 분석을 통해 ‘박정희 시대의 문화정치와 지성’의 다양한 풍경을 되살려냈다. 사상사 연구가 대개 그러하지만, 박정희·장준하·함석헌·임석진·김질락·최인훈·전혜린·이어령·김현·이청준·백낙청 같은 이들의 정신과 인식을 들여다보는 일은, 시대적 한계가 낳은 인식의 한계를 확인하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하다.
예컨대 5·16 쿠데타 당시 이를 혁명이라 부르며 지지한 나 5·16에 참여한 4·19 세대의 알려진 ‘모순’은 차치하더라도, 훗날 대표적인 모더니스트로 불린 평 론가 김현이 국민교육헌장을 만든 철학자 박종홍을 사 숙하며 젊은 시절에 민족주의적 파토스를 지녔다는 점은 이채롭다.
‘경제성장’ 환상 없어지지 않는 한
그들은 자유와 반공을 동시에 원하고, 민족(주의)적 이면서 동시에 열렬히 서구를 추종했다. 1960년대는 그 렇게 모순적인 시대였다. “박정희의 광기가 춤을 추며 사 회·문화가 전반적으로 ‘군사화’되는데도 대중의 문화적 역능과 여성의 역할이 증대했고, 황금만능·경제제일의 이데올로기가 수많은 속물과 졸부를 곳곳에 등장시켰 음에도 저항의식과 인문학적 교양이 함께 커가는 드라 마적 변증법”이 펼쳐진 것도 그 시대였다. 그같은 ‘모순과 이율배반이야말로 그 시대의 아포리아(난제)이자 한계였 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결국 1960년대의 한국과 한국 사회는 이처럼 모순적 이고 길항하는 힘들의 각축 속에서 형성됐다. 저자들이 ‘60년대식 변증법’이라 부른 이런 현상은, 5·16을 4·19 의 계승 또는 배반으로 봐야 하느냐는 문제부터 빵(평등 에의 욕구)과 자유(개인주의화의 욕망) 사이의 모순, 박 정희와 김일성의 적대적 공생관계에까지 두루 걸쳐 있 다. 이는 5·16 쿠데타 이후 ‘근대화’ 작업이 시민민주주의 혁명으로서 4·19 혁명의 연장선에 있다는 시각과 4·19 혁명 주체들에 대한 가공할 탄압, 종속적이고 반민주적 인 행태에 비춰 그것의 배반이라고 여기는 시각의 대립 을 말할 터.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자유를 원해 4월 혁명을 지지했 지만, 발전에 대한 욕망을 감출 수 없던 대중이 ‘박정희 레짐’의 장기 지속을 용인했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국 가주의가 기능하고 ‘경제성장’에의 환상이 없어지지 않 는 한, 더 오래 우리는 박정희의 포로가 되어야 할지 모 른다”고 경고한다.
사실 18년 동안 박정희 정권이 유지됐다는 사실은 매 우 불안정한 것이었지만 정권의 정당성이 어떤 방식으로 든 구현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할 때, 이런 맥락 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 대한 대중의 너른 지 지의 뿌리를 따져볼 수도 있겠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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