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자락과 허리띠를 위로 감아올린다. 엉덩이를 조금 뒤로 뺀다. 다리를 벌리고 오줌을 눈다. 볼일이 끝나면 엉덩이를 살짝 흔들기만 하며 종이는 쓰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이렇게 하는 까닭에 구멍에서 오줌이 벗어나는 일은 없다.’
이러한 자세로 소변을 보는 자 누구인가. 이름 모를 남자라고? 땡~. 일본 간사이 지역 여자들 이야기다. 이 동네 여자들은 어릴 때 ‘앉아 쏴’를 하다가 커갈수록 ‘서서 쏴’ 연습을 한다. 전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1909년 후쿠시마현 교육 관계자들은 여학생이 서서 오줌 누는 것을 금지하자는 논의를 하기도 했다. 여자들이 흘리지 않고 오줌을 서서 누는 건 꽤나 연마하기 어려운 기술이다. 그런데 왜? 논농사를 짓는 이들에게 똥오줌은 중요한 거름이어서 따로 모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여자도 오줌독에 가서 ‘서서 쏴’를 했다는 것이다. 기모노나 작업복인 몸뻬를 입었을 때 웅크리고 앉는 것보다 서서 소변을 보는 것이 더 편한 이유도 있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인 아파치족·모하브족과 중세 유럽 여자들도 ‘서서 쏴’ 자세를 선보였다.
앉거나 서거나, 무릎 꿇거나 쪼그리거나. 인류의 소변 자세는 고정돼 있지 않았다.
당연시되던 남성 ‘서서 쏴’ 시대에도 균열이 일고 있다. ‘앉아 쏴’ 바람은 우선 비뇨기과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명동이윤수비뇨기과 이윤수 원장은 “몇 년 전부터 앉아서 소변 본다는 남성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며 “남자아이에게 앉아서 소변을 보라고 하는 엄마들도 있다”고 말했다. 2006년 11월28일치 에는 ‘미래를 여는 실천 대안생활백서 시리즈’의 일환으로 ‘앉아서 소변 보기’가 소개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앉아 쏴’ 남성은 희귀종이었다.
그런데 이 취업정보기관 인쿠르트와 온라인 설문조사 전문기업 두잇서베이에 의뢰해 11월26일부터 이틀간 20대 이상 성인 남성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4.2%인 71명이 ‘앉아서 소변을 본다’고 답했다. 10명에 1명꼴을 넘어섰다. ‘다른 가족을 배려하려는 조처’라는 이유(66.2%)가 가장 많았다. 71명 가운데 18명(25.4%)은 ‘서는 것보다 앉는 것이 더 편해서 ‘앉아 쏴’를 선택했다’고 답했다. ‘서서 쏴’파들은 ‘익숙한 자세가 더 편하다’(59.4%)는 반응이 많았다. 97명은 아예 ‘앉아 쏴’를 고려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10명(2.3%)은 ‘앉아 쏴’에 입문했다 불편함을 느껴 포기한 이들이다.
‘앉아 쏴’에 대해 당사자인 남자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각자 취향이라고 생각한다’는 긍정적인 답변이 61.8%지만, ‘남자답지 못해 보인다’(27.2%)거나 ‘건강에 이상이 있어 보인다’(8.6%)는 부정적인 답변도 만만치 않았다. 남자들의 소변은 부부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응답자의 34.8%인 174명은 ‘소변 튀는 문제’(79.3%), ‘변기 시트 올리고 내리기’(43.1%), ‘손 씻기’(12.6%) 등으로 가정에서 지적을 받거나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김민준(28·가명)씨는 여자친구와 살림을 합친 올해 초부터 ‘앉아 쏴’를 시작했다. 동갑내기 예비신부 오인아(가명)씨의 권유가 계기였다. 서른 해 가까이 살며 체감하지 못했던 자신의 지린내를 힘겨워하는 인아씨가 마음에 걸려 볼일을 볼 때마다 좌변기 주위에 물을 뿌렸다. 이러한 수고로움에도 냄새는 제거되지 않았다. 결국 해결책은 ‘앉아 쏴’. 어차피 큰일을 볼 때 ‘앉아 쏴’가 자동적으로 시행되지 않던가. 최근에 그는 만취한 상태에서도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앉아 쏴’를 하려면 면밀한 조준이 필요하다. 서서 볼 때도 흘리지 않으려는 정조준 노력은 필요했다. 무엇보다 소변 볼 때마다 물 청소를 하지 않아 좋다. 남성용 소변기가 설치된 집 밖에서는 굳이 앉아서 소변을 보지 않는다. 남들과 함께 쓰는 좌변기 사용이 더 찜찜하기 때문이다.
아내의 권유나 압박으로 좌변기에 앉는 경우만 있는 건 아니다. 안성민(36·가명)씨는 최근 자발적으로 ‘앉아 쏴’파에 합류했다. 서서 소변을 볼 때도, 좌변기에 오줌이 튀면 늘 뒤처리를 하던 그다. 본인이 들어도 ‘또로로로’ 소리가 그렇게 시끄러울 수 없었다. 집에 입주 베이비시터도 있는 터라 신경이 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좌변기에 살포시 앉아보았다. 서서 싸는 것과 별다르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위치한 가회캘러리카페 화장실에는 좌변기가 딱 하나 있다. 3년 전 갤러리 개관 당시만 해도 남자용 소변기가 따로 있었지만, 지금 그 자리엔 화장대가 들어서 있다. 좌변기가 놓인 문 앞에는 ‘please sit down to pee!’(앉아서 소변 보세요)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그 옆에 좌변기에 앉은 사람의 모양을 간략히 그린 이미지가 있는데, 자세히 보면 남자다. 남자도 앉아서 소변을 보라는 메시지다. 독일에서 교육용 캠페인으로 쓰이는 문구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란다. 독일 유치원에서는 남자아이들이 앉아서 소변을 보도록 가르친다.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는 한주연 통신원은 독일에선 ‘앉아 쏴’가 일상화돼 있다고 전했다.
가회갤러리카페를 운영하는 광고디자이너 김세환(43)씨는 13년 전 결혼을 한 뒤 소변 보는 자세가 바뀌었다. “남자는 생식 구조가 다르니까 좀 불편하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좌변기가 옛날보다 커지기도 했고, 비데는 뜨뜻하게 앉아 있는 게 좋더라. 카페는 주로 여자가 많이 가지 않나. 그래서인지 좌변기 하나만 설치한 카페도 꽤 있는 것 같다.”
남성용 소변기는 왜 집 안에 없을까. 사실, 2000년대 중반 남성용 소변기를 따로 설치한 아파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초반엔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주부들의 호응을 얻었지만, 지금은 소변기를 다시 뽑아내는 추세라는 것이 대림바스·로얄앤컴퍼니 등 욕실용품 업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닦고 또 닦아도, 냄새 및 위생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엔 청결하고 보송보송한 욕실을 갖고 싶어 하는 이가 많아져 ‘건식 욕실’ 인테리어가 뜨고 있다. 이러한 인테리어와 물 청소가 수반되는 ‘서서 쏴’ 자세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 건식 욕실이란 말 그대로 바닥에 습기를 없앤 형태다.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습식 욕실과는 다르게 바닥에 배수구를 설치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남성의 돌출 구조를 고려한 각종 디자인도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다. 변기시트 모양새만 해도 과거와 다르다. 정면에 구멍이 뚫린 ‘말발굽형’ 변기시트 대신 앞이 막힌 ‘도넛형’ 변기시트가 대다수다. 로얄앤컴퍼니 박노성 이사는 “남자들이 오줌 눌 때 흘리니까 그렇게라도 해놓은 건데, 그런 형태는 안정감이 없고 자주 균형이 틀어져 요즘은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남·여 팬티의 가장 큰 구분점인 앞트임도 퇴화됐다. 속옷전문 업체 쌍방울 홍보팀 이철호 대리는 “간혹 앞트임 있는 팬티를 찾는 어르신들이 있지만 대다수가 앞트임을 이용해 소변을 보지 않는다. 앞트임을 하면 면을 한 번 더 덧대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받쳐주는 역할이 있었는데, 이제 원단도 진화되고 사각팬티지만 타이트한 드로어즈가 등장해 그런 역할이 필요 없게 됐다”고 말했다.
대만 환경보호부 장관의 커밍아웃고고하게 ‘서서 쏴’ 길을 걷고 있는 남자들도 할 말이 많다. 위생이나 소음에 신경 쓰지 않는 ‘개매너남’으로 몰리는 건 억울하다는 항변이다. 더구나 흡연 장소도 사라져가는 각박한 현실에서, 소변마저 편하게 보지 못하느냐는 아우성도 들린다. 서서 소변을 보는 김아무개(38)씨는 ‘또로로로’ 소리를 제어하려고 좌변기에 고인 물 쪽, 즉 중앙부가 아닌 테두리 쪽에 조준하는 기술을 습득하기도 했다. 어떤 소변 자세가 건강에 더 좋은지 단언하긴 힘들다. 어비뇨기과 두진경 원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평균나이 28살의 젊은 남성을 대상으로 자세별 소변 줄기 및 방광에 남는 잔뇨량을 비교한 2006년 논문을 보면, 앉아서 보는 경우 소변 줄기가 가장 굵었으며 잔뇨량은 동일했다. 반면 6~16살 남자아이를 연구한 2008년 논문을 보면, 서서 소변을 볼 때 줄기가 가장 굵었고 방광 내 압력도 가장 낮았다. 앉는 게 좋은지, 서는 게 좋은지 모른다는 것이다. 단, 방광암으로 인해 방광을 다 들어낸 뒤 소장으로 새 방광을 갖게 된 환자에겐 앉아서 소변을 보라고 권유한다.” 집에서 ‘서서 쏴’ 자세를 취한다는 두 원장은 자신도 앉아서 소변을 볼 때 튄다고 토로했다. 어떤 사람들은 변기시트와 좌변기 사이 틈으로 오줌이 새나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대체로 ‘앉아 쏴’ 자세일 때 튀는 정도가 덜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진오비산부인과 심상덕 원장은 “서서 소변 볼 때가 아무래도 더 많이 튄다. 병원에 남·여 화장실이 다 있지 않나. 남자화장실 주변에 암모니아 냄새가 많이 난다. 그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했다.” 소변 자세별 오줌 튀는 양을 비교 고찰한 자료를 찾을 순 없었다. 다만 2006년 일본 생활용품 업체 라이온에서 실시한 실험 결과, 남자가 7번 오줌을 눌 경우 약 2300방울이 변기 바깥으로 튀는 것으로 나타났다.
‘앉아 쏴’ 바람은 나라 밖에서는 더 강하다. 지난 8월 천스훙 대만 환경보호부(EPA) 장관은 ‘나도 앉아서 본다’며 공공화장실의 위생을 위해 남자들도 앉아서 소변을 보자고 제안했다. 당시 영국 <bbc> 보도를 보면, 여성 누리꾼들은 이 제안에 우호적이었지만 남성 누리꾼들은 반발했다. 대만 환경보호부는 각 지방정부에 ‘앉아 쏴’ 제안이 담긴 공고문을 공공화장실에 게재해줄 것을 요청했다.
앉는 것은 10전짜리, 서는 것은 5전짜리
여자라면 서서 소변 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던 것처럼, 남자라면 앉아서 봐야 한다는 시대나 문화도 있었다. 겨울에 영하 50℃까지 내려가는 몽골에서 ‘서서 쏴’는 꺼려졌을지 모른다. 이란 등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남자들은 앉아서 소변을 본다. 한국에서는 ‘앉아 쏴’ 전통이 없었을까? 함경남도 함흥의 서당 학동들은 서서 싸는 것보다 앉아 누는 것을 점잖은 행동으로 여겨 ‘앉는 것은 10전짜리, 서는 것은 5전짜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세월은 흐르고 문화는 변한다. 앉느냐 서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욕실 사방으로 튈지 모른다는 수많은 오줌 방울에 대해선 ‘누출자 책임주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을까.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참고 문헌: (김광언 지음·기파랑 펴냄), (야콥 블루메 지음·이룸 펴냄)</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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