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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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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으로 그린 안중근 열사 손

스티로폼으로 단열한 보온도시락
등록 2012-10-20 13:55 수정 2020-05-03 04:27
한겨레 자료

한겨레 자료

고등학교 시절 오전 2교시만 끝나면 전쟁이 벌어졌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 도시락을 다 까먹었다. 1시간 남짓한 점심시간에는 운동장으로 몰려나가 농구를 하거나 축구를 했다. 3교시에 들어온 선생님은 반찬 냄새 난다며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남자아이들의 점심시간은 그야말로 개차반이었다. 자기 자리에 앉아서 밥 먹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약탈자의 심정으로 이곳저곳을 습격했고, 우르르 몰리다 보니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책상에 흘리는 게 더 많았다. 갈비양념 유리병을 재활용해 반찬을 담아오는 아이도 많았다. ‘스뎅’ 재질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커다란 새우가 돋을새김된 사각 반찬통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 반찬통에 새우를 싸오는 놈은 하나도 보지 못했지만.

2학년 때였다. 쉬는 시간에 반찬통이 열리기 시작했다. “짜장이다!” 누군가 외쳤다. 새우 반찬통에는 분명 검은색 짜장이 담겨 있었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했던가. 그 작은 반찬통으로 숟가락들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앞자리 1열을 차지한 놈들 뒤로 2열이 숟가락을 들고 덤벼들었고, 다시 3열이 야차처럼 덤볐다. 짜장의 절반은 책상에, 나머지 절반은 그 모서리에 위태롭게 쌓아올린 영어사전과 수학의 정석 위에 뿌려졌다. 3교시가 시작됐다. 교실 뒤에서 바라본 1열 놈들의 교복 와이셔츠 등짝에는 선명한 짜장 손바닥들이 찍혀 있었다. 불경스럽지만 흡사 안중근 열사의 손바닥이었다.

어느 여름날 오후.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강력한 가스가 교실 안에 퍼졌다. 야간자율학습을 했으니 도시락을 2개씩 싸들고 다니던 때였다.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 4대로 교실 하나가 버텼다. 어머니는 그 당시 뜨기 시작하던 타파웨어 반찬통에 김치를 담아주셨다. 한나절 동안 달궈진 교실에서 타파웨어 속 김치는 남몰래 속성으로 신김치로 변신하기 시작했고, 김치의 힘을 알 리 없던 미제 타파웨어는 가스압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날이 쌀쌀해진다. 초창기 보온도시락은 군대 스타일이었다. 스티로폼이 단열재로 사용됐다. 맨 아래 국통, 그 위에 밥통, 그 위에 반찬통을 쌓아올렸다. 중학교 때 사용하던 보온도시락통 끈이 끊어졌다. 엄마는 새로 사주는 대신 보자기에 도시락통을 싸주셨다. 아무리 1980년대라지만 이게 뭐냐고요. 그러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길다란 진공도시락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코끼리표·조지루시 등 일제가 대세였다. 도시락통이 길다 보니 포크형 숟가락도 흉기처럼 크고 길어졌다. 다른 학교에서 반찬을 뺏어먹던 친구의 머리통을 일제 포크로 찍었다는 한우고깃집 아들의 흉흉한 소문이 교실 안을 침울하게 만들기도 했다.

요즘은 학교마다 급식을 하니 도시락 싸들고 다닐 일은 별로 없겠다. 아내는 가끔 도시락을 싸들고 출근을 한다. 고물가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을 위해 USB를 이용해 최대 60℃까지 보온이 가능한 도시락통도 시판되고 있다. 어머니는 그 시절, 우리 삼남매 도시락 5개를 어떻게 다 준비하고 회사에 출근을 하셨을까나. 역시 무상급식이 대세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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