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미르·케이(K)스포츠 재단의 배후에 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인 최순실(개명 뒤 최서원)씨가 있다는 정황을 최초로 폭로한 한겨레 보도가 나온 2016년 9월, 나는 졸업을 앞두고 취업에 골몰하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취업 준비생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신문 보도를 열심히 챙겨보는 것이었는데, 당시 믿기 어려운 보도를 보면서도 이 사건들은 그저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할 거라고 생각했다. ‘설마 진짜 그랬겠어?’라는 의구심도 있었다. 실제로 수사 기관도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 최씨의 태플릿피시(PC)에 담긴 구체적인 국정개입 사례가 제이티비시(JTBC)를 통해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설마가 설마가 아니었음을 확인했다. 수사 기관도 이를 기점으로 전면적 수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후 분노한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고, 이듬해인 2017년 3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이 이뤄졌다. 지금에 와서 그때를 되돌아봐도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약 8년이 지난 2024년, 명태균이라는 이름의 민간인이 등장해 뉴스를 뒤덮고 있다. 불법 여론조사를 했다가 유죄를 받았던 무명의 범법자에 머물렀던 명씨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강력하게 연결돼 선거 공천과 창원국가산단 이권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명씨 사건 역시 시작은 작은 의심에 불과했다. 하지만 김건희 여사의 공천개입 의혹을 더 뚜렷하게 보여주는 여러 녹취가 공개됐고, 급기야 윤 대통령이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을 약속하는 듯한 육성까지 공개됐다. 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8년 전과 이어진 평행우주 속에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직 검찰 수사가 명씨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머물며 미적지근한 상태라는 것도 그때와 비슷하다.
명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창원국가산단 등 이권에선 ‘윗선’이 얼마나 개입됐는지, 창원산단 외에도 다른 이권 개입이 분명하게 더 드러날지 여전히 미지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가장 큰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윤 대통령은 논란이 불거지자 2024년 11월7일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 제대로 언급하지 않아 사과 같지 않은 사과가 됐다.
2016년 10월26일 최씨의 국정개입 논란 이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95초 사과 녹화 영상을 공개하면서 더 큰 논란을 자초했다. 이때 회견은 기자들 질문도 없이 진행됐다. 기자들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않고 ‘사과만’ 하는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 또한 8년 전의 대통령 사과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사건은 시작 지점은 물론 대통령의 부실한 대응마저 닮았다.
최순실 게이트는 대통령 탄핵으로 끝났지만 명태균 게이트의 끝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다. 종착점은 어디가 될까.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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