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은 속옷 바람으로 침대가에 쪼그리고 앉아 저녁을 먹었다. 의자를 끌어다가 그 위에 가방을 얹은 다음, 사온 물건 봉지를 펼쳐놓아 식탁 대용으로 썼다. 쬐그만 정어리를 주머니칼로 가로로 잘라 반쪽을 찍어 빵조각에 얹어서 한입에 먹었다. 물컹물컹하고 기름에 전 생선살이 싱거운 빵과 함께 뒤섞이며 기막히게 맛 좋은 덩어리가 되었다. …한입 먹고 나서 포도주를 병째로 들어 조금 마신 후 그것을 이 사이로 지긋이 물면서 잠깐 물고 있으면 생선의 진한 뒷맛이 포도주의 약간 신 듯한 향료와 어우러지면서…”.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쓴 의 주인공 조나단 노엘은 프랑스 파리의 은행 경비원이다. 그는 모든 불상사는 사람들과 관계하며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남자다. 평화로운 삶을 위해 사람을 멀리하고, 파리의 어느 공동주택에서 방 한 칸을 얻어 지내고 있다. 이제는 “죽음이 아니고는 어떤 심각한 일도 결코 일어날 수가 없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나이가 되었고, 그의 방은 불안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안전한 섬과 같은 기능을 하게 되었고, 5개월만 지나면 그 방을 마침내 자신의 소유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름의 평화를 유지해오던 그의 삶에 어느 날 갑자기 비둘기가 끼어들어 모든 것이 뒤죽박죽 엉키게 된다. 방 바로 앞 복도에 나타난 비둘기가 끔찍스러워 집 밖으로 나와 어찌할 줄 모르며 보내는 하루가 소설의 내용. 어쨌거나 결말은 세상에서 자신을 밀어내던 주인공이 닫힌 마음을 서서히 회복해나간다는 이야기인데, 몇 줄 문장으로 쓰기엔 그 하룻동안 조나단의 심리가 몹시 밀도 있게 묘사돼 있다.
앞에 인용한 정어리와 빵의 조합은 그가 자주 보던 거지가 즐겨먹는 식사다. 언제나 성실하고 정확하게 살아온 조나단은 거지를 보며 경멸과 동시에 부러움을 느꼈다. 그러나 비둘기가 나타난 날 공원에서 만난 거지에게서는 경멸이 아닌 경이로움을 느낀다. 방 한 칸 없이 엉망진창으로 살아왔음에도 굶어죽거나 얼어죽지 않고, 대단한 식성으로 먹고 마시고 잠잘 수 있다는 사실에. 조나단은 호텔방에서 정어리를 얹은 빵을 씹으며 소유에의 집착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지난 주말, 참치샌드위치를 먹었다, 는 거짓말이고. 칼럼에 ‘정어리빵’을 쓰라고 제보해준 친구를 만나 통조림에 든 생선이라고는 참치밖에 먹을 줄 모르니 그걸 나눠먹었다. 소설에는 인용한 문장보다 한참 더 길게, 물이 많은 달큼한 배와 쫀쫀한 치즈가 뒤엉키는 맛까지 시시콜콜 묘사되는데 내용에 관계없이 침이 넘어간다. 과일과 햄, 꿀과 치즈처럼 단것과 짠것의 조합이야말로 아름다운 것이라 예찬하는 우리는 쥐스킨트도 뭘 좀 먹을 줄 아시는 모양이라며 쓸데없는 말이나 늘어놓으며 참치샌드위치를 씹어 삼켰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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