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추리소설 팬들의 영원한 우상 ‘괴도 뤼팽’의 작가, 모리스 르블랑(1864~1941)의 미발표 유작이 한국과 프랑스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그의 사후 70년 동안 잠들어 있던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 이 독자와 조우하게 된 것이다. ‘뤼피니앵’(뤼팽에 열광하는 독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일 터. 원고가 발견되고도 16년이 지나서야 발표되는 이 작품은, 모리스 르블랑이 생애 마지막으로 집필한 소설이다. 번역은 2003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뤼팽 전집을 완역한 바 있는 성귀수(51)씨가 맡았다.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추리소설 독자라면 해문출판사의 ‘팬더 추리걸작 시리즈’나 다른 문고판들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뤼팽을 접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뤼팽 시리즈의 첫 권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숙적 가니마르가 뤼팽을 체포하는 데서 시작된다. 탈옥 예고와 혀를 내두를 변장술, 탈옥했다가 감옥으로 다시 돌아오는 유머감각까지. 아르센 뤼팽 시리즈는 낭만적이고도 대담하며 쇼맨십에 능숙한 대도둑 뤼팽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 에피소드로 1905년 첫선을 보였다. 이후 30여 년 동안 모리스 르블랑은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분만시키며 전세계에 ‘뤼팽 신드롬’을 낳았다. 작가는 범인·사건·탐정의 삼각구도가 지배하던 추리문학계에 아르센 뤼팽이라는 괴도를 등장시켜 기존 질서와 상식을 조롱하는 안티히어로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뤼팽 개인의 카리스마적 힘도 이 활극 시리즈의 ‘필살기’였다. 변장술의 천재인데다 일본 무술에 능해 완력까지 갖춘 이 신사는 현대 독자들에겐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랑에 빠져 체포를 감수하거나 라이벌과 대적하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총탄에 잃는 등 낭만성과 비극성을 아우른 고전적 매력을 내뿜었다.
또 하나 흥미로운 대목은 아르센 뤼팽이 영국 추리소설의 영웅 ‘셜록 홈스’와의 경쟁 구도에서 탄생했다는 점이다. 괴도 신사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단편은 ‘한발 늦은 셜록 홈스’다. 르블랑은 자신의 소설에 영국 추리소설의 영웅 셜록 홈스를 등장시켜 마음껏 요리했는데, 코넌 도일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이의를 제기했다. 르블랑이 이를 받아들여 ‘Sherlock Holmes’를 ‘Herlock Sholmes’로 철자를 살짝 바꾼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은 모리스 르블랑이 사망하기 6년 전인 1934년부터 집필된 작품이다. 병색이 짙었던 르블랑은 작품을 완성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41년 폐울혈로 사망했고, 그의 유작은 잊혀지는 듯했다. 그로부터 55년 뒤인 1996년, 아르센 뤼팽 연구자 자크 드루아르 교수는 르블랑 가문의 서랍 속에서 반세기 넘게 잠들어 있던 타자 원고 꾸러미를 발견해 미발표 유작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유족들은 2012년 르블랑 70주기를 맞아 작품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4명 친구들 중에 뤼팽은 누구인가
1921년의 파리. 우아한 아름다움으로 사교계의 남자들을 사로잡았던 코라 드 레른. 주위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는 자유분방한 그녀는, 영국에서 만난 4명의 남자친구들이 파리로 건너오자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저택 안에 거처를 마련해 함께 지낸다. 파리 주재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한 코라는 아버지 레른 공의 부름을 받고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그녀와 마지막 포옹을 한 레른 공은 유서를 남기고 권총자살한다. 유서에는 “진정한 사랑을 찾아 행복하라”는 말과 함께 “4명의 친구들 가운데 아무래도 그 유명한 아르센 뤼팽이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무렵 우편수송기를 통해 영국에서 프랑스로 운송되던 7억프랑 상당의 금화 두 자루가 도난당한다. 얼마 뒤 금화 자루는 파리 외곽 팡탱 마을에서 아르센 뤼팽의 앞으로 전달할 것을 지시하는 쪽지와 함께 발견된다. 한편 코라의 네 친구 가운데 한 명인 헤어폴 백작은 코라에게 출생의 비밀을 밝히며 사라졌던 금화의 주인은 바로 코라 자신이고, 그녀는 영국의 여왕이 될 운명이라고 말해준다. 그사이 철저한 감시 아래 보관 중이던 금화 자루는 흉악범들이면서 용케 극형을 피해왔고, 여러 차례 형장에서 탈출을 감행한 ‘살인자 트리오’의 손에 넘어가고 만다.
레른 공의 유언대로 언제나 코라 곁을 지키던 4명의 남자 가운데 아르센 뤼팽이 존재하는 것일까. 코라에게 엄청난 비밀을 말해주며 한시도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던 헤어폴 백작, 레른 공의 장례식 이후 줄곧 어디론가 떠나 있던 앙드레 드 사브리 대위, 그리고 술집을 전전하며 호사가의 삶을 살던 도널드 도슨과 월리엄 로지…. 과연 이들 가운데 아르센 뤼팽은 누구이며, 레른 공이 남긴 코라의 비밀은 무엇일까. 복선은 곳곳에 깔려 있다. 하지만 함정도 여럿이다. 하긴 어차피 사랑은 모험인 것을. 잃어버린 금화 자루와 사랑을 찾아 마지막 모험을 펼치는 아르센 뤼팽과 그를 쫓는 우리에게도.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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