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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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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서드 발연기의 희번덕한 절규

정통 평양냉면의 맛, 서울 방배동 벽제갈비
등록 2012-04-14 11:27 수정 2020-05-03 04:26

얼큰이들과 얼큰이 칼국수를 얼큰하게 먹고, 권시인과 우리 부부는 심비홍의 집으로 갔다. 심비홍의 아들 형제와 내 아들 녀석은 공룡과 파워레인저로 편을 나눠 선사시대와 미래시대의 조우를 꾀했다. 얘들아~ 여기 원시인 있다~. 데리고 같이 놀아라~.

심비홍 부부와 우리 부부, 그리고 권시인은 행여 술이 깰까 부랴부랴 맥주를 따랐다. 술이 좀 돌자 한때 대학로 연극배우를 꿈꾼 심비홍은, 연예인이 된 권시인이 같잖았는지 뜬금없이 드라마 의 최민수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자신이 배우가 못 된 것은 오로지 전날 술 처먹고 도진 귀차니즘으로 오디션에 안 갔기 때문이라고 믿는 심비홍은, 두 눈을 깜빡이며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넌 내 여자니까~”라고 설정 연기를 했다. 이렇게 하면 웃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니? 넌 푼수니까?

까불고 있네~라는 표정으로 심비홍의 발연기를 지켜보던 권시인은 메서드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며 자신에게 아무 연기나 주문해보라고 시켰다. 메서드가 아니라 원시인답게 매머드 아니니? 와잎은 “먹고 떨어지라”며 슬픔·분노·기쁨 3종 세트를 주문했다. 그러자 권시인의 웃긴 몰골은 1분여 만에 눈물 맺힌 슬픈 표정으로 변했다. 정말 우울하게 생겼구만~. 다음은 분노. 최근 출연한 라는 작품 속의 대사라며 권시인은 갑자기 “저보고 어쩌라고요? 이게 나란 놈인걸요! 이렇게 생겨먹은 놈이라구요!”라고 희번덕 절규했다. 대사 맞니? 진짜 엄마랑 싸울 때 한 말 아니니? 그리고 우리보고 어쩌라고? 그렇게 생겨먹은 거 알긴 아는구나~. 그리고 권시인아~ 눈 풀어라~ 애들 자다 경기한다. 마지막 기쁨. 장판을 뒹굴며 오열하던 권시인은 돌연 표변해 “하하하하” 마구 웃기 시작했다. 문득 소름이 돋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연기를 저렇게 힘들게 하다니~. 스타니슬랍스키가 무덤에서 깨어나겠구나~.

권시인의 생오버 연기에 아들 녀석이 다가와 와잎에게 조용하게 말했다. “엄마, 저 삼촌 어디 아파?” 와잎은 귀엣말을 했다. “응. 마이 아프대.” 그래도 생쇼한 권시인에게 우린 성격(드러운)파 배우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말에 권시인이 갑자기 발끈했다. 자신은 꽃미남 쪽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자기가 여기서 제일 잘생겼다고 막말을 해댔다. 너무도 진지하게. 아직도 연기하니? 영화 찍니? 그러다 연예계에서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니? 정신줄 놓은 성격파 배우와 영화는 그만 찍기로 하고 우린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밤새 분리배출 하느라 화장실에 들락 날락 한 권시인 때문에 잠을 설치고 맞은 오전. 평택 자기 집까지 태워달라는(내가 니 매니저니?) 권시인을 택시로 부치고 서둘러 상경했다.

와잎은 해장으로 봉피양(본평양) 냉면을 먹고 싶다 했다. 우리는 방배동 카페골목에 있는 벽제갈비로 향했다. 수육과 냉면, 녹두전과 소주를 시켰다. 2년여 만에 맛본 봉피양 냉면은 예전 그대로였다. 담박하면서도 깊은 정통 평양냉면의 맛이 거기 있었다라고 느끼는 순간, 와잎은 “오늘도 달려볼까?”라고 웃으며 건배를 제의했다. 나는 권시인처럼 절규했다. “나보고 어쩌라고~!” 와잎이 답했다. “이게 나란 인간인걸~.” 문의 02-537-0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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