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 ‘국수’ 중)
<한겨레21> 정용일
백석이 겨울밤 동치미 국수와 고기 국물에 말아낸 국수를 노래했듯, 국수는 여러 베이스며 양념과 어울리며 다양하게 변주되는 음식이다. 만들기 쉽고, 아무 재료와도 잘 어울리니 국수 맛은 집집마다 자기 색을 가지며 조금씩 다른 맛이었던 듯하다. 어린 시절 먹은 ‘엄마의 국수’ 맛은 어느 집에서 국수를 얻어먹어도 만나볼 수 없었던 걸 보니.
어릴 적 먹었던 엄마의 국수는 진한 멸치 육수를 내는 데서 시작한다. 냄비에 물을 그득 붓고, 양파·파·무 따위를 넣고 팔팔 끓인 다음,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육수를 낸다. 빠지지 않고 넣은 ‘고명 4종’으로는 양파·애호박 볶은 것, 어묵 볶은 것, 달걀 지단, 총총 썰어 참기름과 깨를 넣고 비빈 김치를 준비했다. 간장과 다진 파, 고춧가루, 참기름을 넣은 양념장도 빠트리지 않았다. 엄마는 꼭 여름 주말이면 국수를 삶았다. 모두 거실에 모여들어 국수를 후루룩 후루룩 삼켰다. 엄마의 국수는 ‘가장 맛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것이었다.
‘가장 맛있었던 국수’를 꼽는다면,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단 한 번 찾았던 국숫집에서 먹은 것이다. 가게는 부산 남포동의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을 지나 어스름한 귀퉁이에 붙어 있었다. 합판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조그만 가게였는데 엄마와 나, 주인 아줌마가 들어서면 꽉 차는 공간이었다. 엄마가 고등학교 다닐 적부터 들른 집이었단다. 엄마가 다니던 시절에는 할머니가 가게를 지켰다는데, 나와 엄마가 함께 갔을 때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국수를 말아줬다. 할머니의 며느리라고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릇을 건네받았다. 멸치 육수는 진한데 비리지 않았고, 양념장 맛이 강하지 않은데도 간이 꼭 들어맞았다. 뜨거운 국물을 훌훌 마시며 초딩이던 나는 ‘국물이 시원하다’는 말을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국수가 있구나’ 속으로 감탄하며 나오는데, 엄마는 할머니 때만 못하다고 했다. 엄마의 실망 탓인지, 그 뒤로 다시 그 국숫집에 갈 일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십수 년이 지났으나 나는 간판도 없는 그 허름한 가게의 국수 맛을 잊을 수 없다. 남포동에 갈 일이 생기면 종종 찾으려는 시도를 해보았으나 다리품만 팔기 십상이었다. 나이 지긋해 보이던 주인 아주머니가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다면 지금쯤 할머니가 되어 계시지 않을까. 이 가게 혹시 아시는 분 있다면 제보를 부탁드리며, 이만 후루룩.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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