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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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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돌아왔다

이제 여신 아닌 ‘언니’ 파워… 두 남녀의 시선으로 읽은 소셜테이너이자 가수이자 MC, 전천후 캐릭터 이효리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나
등록 2012-03-17 12:37 수정 2020-05-03 04:26


이효리의 탄생

이효리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는 종종 어떤 장면들에서 출발하기 마련이다. 전역일을 얼마 남기지 않은 선임병이 나를 포함한 12명의 중대원을 집합시켰다. 그리고 이미 퇴근하고 비어 있는 중대장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지금부터 전투력 향상을 위한 정신교육 자료 시청이 있겠다. 그가 중대장 컴퓨터 앞으로 다가가 뭔가 툭툭거리더니 동영상 파일 하나를 열었다. “Came in to my life 예, Make me fly again 예, 늘 바래왔던 상상처럼” 그렇게 나는 핑클의 (Now)와 조우했다.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해야 할 말을 하는 이효리의 최근 행보는 한국 사회에 유의미한 도움을 주고 있다. 4집 앨범에 실린 이효리의 모습. 엠넷 제공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해야 할 말을 하는 이효리의 최근 행보는 한국 사회에 유의미한 도움을 주고 있다. 4집 앨범에 실린 이효리의 모습. 엠넷 제공


정동영 같은 이효리?
검은 옷을 입은 그녀들이 뉘 집인지 컴컴한 방 안에서 다리를 쩍 벌리고 엉거주춤 바닥을 카메라로 찍어 헤집으며 가끔 냉장고를 뒤지고 뭘 질질 흘리고 아무튼 그러면서 천천히 유영하고 있었다. 가끔 입으로 사정하는 듯한 탄식이 각지의 사투리로 새어나왔으나 대개 손끝 하나 꿈쩍하지 못하고 3분40초 정도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뮤직비디오가 끝났다. 그러니까 핑클이 바닥에 떨어진 조인성의 체모를 찾는 이야기입니까. 누군가 말했다. 나는 웃지 않았다. 사실 거기 조인성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그것은 격변의 이효리였다. 단 한 번도 핑클이네 요정이네 신경 쓰지 않았던 나는 군대에 가서야 “Satisfaction 모든 내 사랑을 다 주고 싶은”, 이효리를 만났던 것이다.
십수 년이 얼렁뚱땅 흘러 2012년 3월. 이효리의 이름 석 자를 검색해보았다. 그녀를 언급한 가장 최근의 글은 이랬다. “이효리는 뭣이 아쉬워 좌빨년놈들에게 세뇌되어 비뚤어지는지?” 괴악한 인상비평에 불과하지만 뭐가 있긴 있다.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나는 요즘의 이효리가 정동영 같다. 좋다 나쁘다 가치판단을 전제한 평가는 아니다. 이 맥락을 설명하려면 정동영에 대해 잠깐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다. 지난 정부를 거치며 정동영은 사실상 재기가 어려운 수순을 밟는 듯 보였다. 노무현에 대한 호불호와 관련 없이 모두가 ‘주군을 등진’ 정동영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괘씸죄는 여간해선 폐기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듯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참 민주당스럽지 않게도, 투쟁 현장 곳곳에 정동영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발악이라고 했다. 그런데 계속되었다. 여전히 정동영의 행보에 관한 세간의 평가는 “진심인지는 모르겠으나”라는 말로 시작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동영은 진영의 반사이익이 아니라 ‘언젠가부터 늘 있더라’는 사실관계로부터 새 정체성을 수혈받는 중이다. 며칠 전 가장 먼저 제주도 강정 구럼비바위에 도착한 정치인 또한 정동영이었다. 내 생각에 그에게는 지금 꽤 기민한 조언자가 붙어 있다. 그게 생존 본능이든 좋은 책사 덕이든, 그는 지금 시점에선 좋은 정치인이다. 좋은 정치는 인성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 있었다는 사실로부터 나온다.

“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 이효리다. 핑클 이후 그녀는 2003년 첫 솔로앨범을 내놓은 뒤 더욱 승승장구했다. 시련은 2006년 2집 발표와 함께 시작되었다. 신곡 (Get Ya)가 미국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Do Something)을 일부 표절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이것은 그녀의 첫 번째 표절 시비였다. 결정적인 건 2010년에 발표된 4집 (H-Logic)이었다. 앨범 수록곡 가운데 이재영(바누스)이 작곡했다고 기록된 6곡의 노래가 모두 표절임이 드러났다. 그녀는 자신의 공식 팬카페에 바누스에게서 받은 노래들이 모두 표절곡임을 인지했다고 알려왔다. 그녀는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이후 지금의 이효리를 떠올리게 하는 일련의 일들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표절 논란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려고 자선활동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5월 그녀는 트위터에 오세훈 서울시장을 겨냥해 “혁신창의도시를 지향하는 서울시장님, (중략) 서울시는 정말 모피쇼가 열리도록 방관하실 건가요?”라는 글을 남겼다. 이후 가죽 재킷을 입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모피는 안 되고 가죽은 되냐”는 질책이 날아들자 이효리는 “여러분 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중략) 부디 질타보다는 많이 가르쳐주시고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세요”라는 글을 트위터에 남겼다.
강정 구럼비바위 문제로 시끄러웠던 며칠 전에는 “날씨는 흐리고 (문화방송) 노조 상대 30억 손해배상 소식에 구럼비 발파 소식에 여기저기 보호소에선 강아지들이 굶어 죽어나간단 얘기뿐”이라며 “어디 웃을 만한 소식 없나요?”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아마 서두에 언급한 좌빨 운운은 이런 발언으로부터 발화된 것으로 보인다). 하루 뒤에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로부터 배상을 받을 때까지 할머니들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의 기부금을 받는 ‘나비기금’의 첫 주자가 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기도 했다.
‘활동가’라 할 만큼은 아니지만 어찌됐든 분명한 건 이효리가 꽤 적극적인 뉘앙스로 사회참여형 발언을 지속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그녀는 4집 표절 논란으로 가수로서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이후 일종의 생존 본능을 발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은 곁에 조언자가 붙어 이른바 ‘개념 연예인’의 길을 종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됐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이효리의 행보가 기존의 활동가들에게 파편적이더라도 유의미한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방송> 제공

<한국방송> 제공


‘개념 연예인’이란 허상을 파괴하길
나는 이효리가 예측 가능한 선행의 틀 위에서 상찬 혹은 비난을 들어가며 ‘개념 연예인’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개념 연예인’이라는 말의 허상을 파괴해주길 바라는 쪽이다. 진영 논리에 따라 자기 입맛에 맞으면 ‘개념’으로, 아니면 ‘수구’로, 이도저도 아니면 계몽이 필요한 ‘백치’로 연예인 집단을 매도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들의 사회참여에 장벽을 쌓는 건 연예인 당사자들의 계몽 여부가 아니라 바로 그런 타자화된 시선 자체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의 ‘뱃살 논란’이 점화된 직후 ‘아 그거 의상 때문인데’가 아니라 ‘나이 먹으면 배 나오는 게 당연하지’로 응대한 그녀의 총기가 외부의 진영 논리에 영향받지 않길 바라며. 혹여 저렴한 책사가 필요하다면 편집부에 제 연락처를 문의해주세요. 님 파이팅.
허지웅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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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무이한 효리라는 ‘거울’

신은 인간을 음과 양, 남과 여로 나누셨지만 방송계에선 결국 그 인간이 호냐 비호냐로 구분한다. 그리고 작금의 한국 사회에선 여성에게 호감을 살 만한가의 여부에 따라 대박과 초대박이 갈린다. 결정적 순간에 지갑을 여는 소비 주체는 결국 여자기에. 이런 이해관계의 최정점인 광고계 대형 블루칩은 단연코 ‘인기 있음’의 핫함보다는 ‘안티 없음’의 범용성의 법칙에 의거해 탄생된다. 남녀노소 불문 통(通)인 이승기·김연아가 그 대표적 케이스다. 남자들이 껌뻑 죽는 신세경·유인나과(科)의 연예인은 절반의 성공이요, 여자들이 유독 편애하는 공효진·서인영 역시 반쪽 연예인이다. 김태희·한가인의 존재는 좀더 복잡미묘한데,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인정하기 싫은 존재’인 이들에게는 이상하게 매력이 없다는 둥 끊임없는 ‘디스’들이 따라붙는다. 차라리 전지현처럼 약점을 들킬 빌미와 불만의 활로를 봉쇄하는 신비주의를 택하는 것도 방법. 물론 이영애·김희선·고소영 등 어찌 덤벼봐도 질 게임이다 싶으면 범접할 수 없는 여신의 레벨로 이들을 격상시킨 뒤, 사람 아닌 걸로 치고 논외로 둔다. 이건 우리끼리 아름답게 딱 정한 거다.

언니에게서 ‘나’를 본다
여심이란 본디 이토록 난해한 것이라, 남자가 봐서 예쁜 상과 여자들이 예쁘다고 느끼는 상이 오묘하게 다르지만 그 교집합은 엄연히 존재한다. 고양이상과 강아지상을 겸비한 마의 점이지대, 게다가 색기까지 두루 풍길 것. 이런 수준의 열반에 오른 자가 딱 하나 있으니 바로 이효리다. 미디어에 소비되는 그녀의 이미지는 실로 광활한 커버리지를 자랑한다. 화장품 CF는 물론, 당대 최고 상한가란 증거인 주류 광고는 ‘효리주’란 신조어도 낳았다. 그리고 가장 경쟁이 치열한 휴대전화 분야까지. 이쯤 되면 광고계의 그랜드슬램감이다. 뷰티·패션·스타일 아이콘을 넘어 2012년 그녀는 자기의 라이프스타일까지 대중에게 어필한다.
대체 불가의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아직도 우리 가요계에서 이효리를 위협할 섹시 아이콘은 나오지 않았다. 아이비도 손담비도 아니었다. 다만 9 대 1이라고 해야 할까, 9명의 소녀시대가 협심해 물꼬를 튼 이후 다수의 걸그룹이 그 자릴 나눠 맡고 있을 뿐. MC로는 또 어떤가. 그나마 김원희와 최근의 박미선 정도인데, 이들의 독립적 역할 수행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이효리는 서브 자리에 있어도 언제나 메인이 되었다. 요샛말로 센터다. 이젠 우리 기억 속에 희미해진 그녀의 오점, 연기력 시비(SBS 과 )가 찾아왔을 때도 그녀는 영리했다. 미련스럽게 김태희처럼 줄창 도전하지 않는 대신 쿨하게 인정했다. 어쩌면 이효리는 이효리일 뿐 그 그릇에 다른 누군가를 담기란 애초에 불가했을지 모른다. 만들어낸 이미지가 아닌 이효리란 인간 그 자체가 뿜어내는 아우라로 소구됐기 때문이다. 인정이 아니라 근원적인 호감.
뮤지션 또는 아티스트로서의 심판도 있었다. 표절 시비 이후 그녀는 희한하리만큼 조급해하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했다. , 등산, 반려견 순심이, 채식, 동물 보호, 모피 반대로 이어지는 행보엔 다른 소셜테이너들만큼이나 잡음이 없진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이효리는 린지 로언처럼 문제아도 아니었고, 패리스 힐턴같이 미성숙한 무뇌아도 아니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처럼 자신을 파괴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이상순과의 열애까지. 못생긴 남자를 사귀는 것은 이 세계의 영원한 세이프티존이다. 이 많은 속성이 한 개체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이효리가 유일무이한 캐릭터인 이유다.
언니가 돌아왔다. 2년여의 유기견과도 같은 생활을 뒤로한 채 지금 모두가 갖고 싶어하는 남자 정재형을 옆에 끼고 효리 언니가 돌아왔다. 내로라하는 MC들이 모인 10돌 특집에서도 단연 압도적이었다. 신동엽·유재석·탁재훈 잡는 발군의 그녀는 어쩌면 우리가 찾아헤매던 강호동의 유일한 대항마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토록 언니가 반가운 마음을 찬찬히 뜯어보자니 이렇다. 얼토당토않지만, 나를 보는 기분이 들게 한다는 점이다. 1979년생 올해 34살. 사실 그녀를 보고 자란 1970년대 후반~1980년대생들은 사회생활도 해보고 결혼이란 것도 해서 더러는 엄마가 되었고, 육아다 경쟁이다 인생에 다시없을 상실감을 맛보는 동시에 아줌마가 돼가는 카오스 그 한중간에 있다. 또 나머지는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처치 곤란의 노처녀란 낙오자 취급을 받고 자의식이 무너지며 ‘멘붕’(멘탈 붕괴)을 겪고 있다. 이효리의 뱃살이 빵 터졌다. 뱃살 그까짓 거 나이 들면 다 있는 거 아니냐, 너는 없냐라고 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효리 언니의 일갈은 카타르시스 그 자체다.
이효리란 가수의 성장 가도에 어느덧 한국 가요는 다른 문화권의 레퍼런스가 되었다. 아무로 나미에, 비욘세, 레이디가가를 열심히 벤치마킹하다 보니 더 이상 따라할 무엇이 없다. 그 사실에 대한 비난은 그녀 몫이 아니다. 남의 나라를 열심히 따라하고 배우려 했던 나라에서 지금은 훌쩍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못 잡는 한국도 같은 모습이다. 무엇이 되고자 했으나 이미 무엇이 되고 난 뒤의 허탈감은 에서 유세윤이 흘린 눈물로 확인했다. 단지 유명세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유명해져서 생긴 파워를 올바로 나누고 쓰고자 하는 것이 최근의 효리쉬마인드다.
유명세를 올바로 나누고 쓰고자 하는 효리 스타일은 ‘지속 가능한 효리’를 만드는 동력이다. 온스타일 제공

유명세를 올바로 나누고 쓰고자 하는 효리 스타일은 ‘지속 가능한 효리’를 만드는 동력이다. 온스타일 제공


이효리는 이효리, 거꾸로 해도 이효리
마흔이 될 이효리의 불혹, 그리고 그녀의 쉰은 어떤 모습일까. 50이 넘어도 팽팽한 이미숙과 도무지 비결을 알 길 없는 극도의 자기관리 김희애와는 다를 것이다. 아니 달라야 한다. 나 역시 나이듦에 따라 이 고민 저 고민이지만 더 진일보하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투영하기에 우리는 그녀를 응원한다. 이대로 이렇게 내가 무너질 순 없기에. 20세기 말에서 21세기로 넘어온 과정 속에 지금 누가 살아남았나. 이젠 안 부러운 유진? 아직도 연기력 논란 성유리? 전업해버린 토사장(토니안)과 강타 이사? 모두 아니다. 휴화산이 아닌 활화산이고픈 열정. 결론은 효리 언니다. 한국의 비욘세, 한국의 마돈나가 아니라 이효리는 이효리다. 거꾸로 해도 이효리. 세상이 다 뒤집혀도 이효리는 이효리로 그렇게 살아남아주기를. 언니, 고양이도 강아지도 그리고 우리 전부를 부탁해.
공세현 CJ오쇼핑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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