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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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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무진 보약과 차진 시루떡

고소하고 실한 서울 영등포 ‘영풍치킨’
등록 2012-01-14 02:06 수정 2020-05-02 19:26

“건강검진 예약했어. 간기능 검사 추가해서~.” 술꽃 핀 얼굴로 해장 피자를 먹던 지난주 화요일 오전, 와잎이 말했다. 간이 배 밖에 나온 사람처럼 마셔대더니 걱정은 되니? 걱정하는 사람이 어제도 그렇게 마셨니? 검진받는 김에 알코올의존증 검사와 머리 쪽 자기공명영상(MRI)도 필히 스캔받으라고 난 친절하게 당부했다. 와잎은 “너도 받으면 나도 받을게~”라고 답했다. 부창부수니? 너님과 나는 ‘레베루’가 다른 거 모르니? 그리고 무슨 포커 치니? ’알코올 검사 하나 받고 MRI 검사 더!’도 아니고.
수요일 오전, 건강검진 항목에 간초음파와 신장 검사 등이 추가된 차트를 보고 의사가 와잎에게 물었단다. “직업상 술을 많이 드시나 봐요?” 와잎은 땀 흘리며 그저 웃었단다. 검진의 정확성 제고를 위해 ‘이분은 직업상 술을 많이 드시는 주부입니다’라고 나라도 의사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의사가 알았다면 분명 “이게 과연 30대 주부의 간이냐”며 학계에 보고했을 터. 헬리코박터균 발견에 버금가는 노벨의학상 수상의 영예를 잃어버린 그 의사의 불운을 난 애도했다. 그날 저녁, 검진 결과도 안 나왔는데 와잎은 안 봐도 비디오라며 쥐포를 뜯으며 맥주캔을 땄다. 안 봐도 비디오면 왜 검진받았니? 그 돈으로 술이나 사먹지? 라고 묻자, “난 소중하니까~. 근데 하루 안 먹으니까 더 맛있네~”라고 묻지도 않은 복화술을 했다. 넌 소중하다고? 넌 위중하겠지! 그리고 언제는 안 맛있었니? 아주 달지 달아~.

일주일이 지난 토요일 오후, 아들 녀석과 놀아주고 있는데,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온 와잎이 음하하하 웃으며 기고만장했다. 병원에서 검진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간수치 정상, 지방간 정상, 콜레스테롤 정상, 체지방 정상 등등. 죄다 정상, 정상뿐이었다.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이건 현대의학의 거대한 오류야~. 난 허준 의원을 찾고만 싶었다. 와잎은 “그럼 그렇지~. 내 이럴 줄 알았고마~”라며 에헤라디야~ 어깨춤을 추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니도 운동 쫌 해라~ 부러우면 지는 거다~.” 너 혹시 나 몰래 무슨 보약 먹니? 헛개나무 장복하니? 와잎은 이윽고 전화를 마구 돌리며 자신의 건강검진 결과를 동네방네 전파했다. 사시 붙었니? 로또 당첨됐니? 라고 비꼬는데 뒷목이 서늘했다. 본능적으로 엄습한 불안은 이내 현실이 됐다. 와잎은 경기도 일산 김태권(별명) 커플(867호 ‘여친의 생쇼와 와잎의 만신창이’ 참조)에게 전화를 걸어 급약속을 잡았다. ‘생간 축하 기념 회동’을 갖자는 것이었다. 너 무슨 계 탔니?

토요일 저녁, 얼마 전 문을 연 서울 신도림의 한 백화점에서 만난 우리는 김태권의 인도로 영등포 영풍치킨으로 향했다. 영풍 프라이드치킨은 고소하고 차진 맛이 둘둘치킨과 비슷했는데, 크기가 더 실한 듯싶었다. 와잎은 골뱅이가 빠지면 되겠냐며 연속 주문의 기염을 토했다. 돈은 니가 낼 거니? 태권이네 아이들과 아들 녀석에게 동영상을 틀어주고, 우리는 부부 대항 술자리를 벌였다. 와잎이 태권이를 마크하고, 난 분위기만 맞췄다. 몸이 안 좋아서 못 먹겠다는 태권이에게 와잎은 “그럴 땐 요게 보약”이라며 연방 건배를 외쳤다. 니가 먹는 보약이 이거니? 아주 야무지구나~. 그날 태권이는 태권도 발차기에도 깨지 않을 만큼 차진 시루떡이 된 채, 차에 실려 일산으로 부쳐졌다. 아이 둘을 건사해야 했던 태권이 와잎은 혼절한 태권이를 차에 그냥 두고 집에 들어갔다. 결국 태권이는 독감에 걸려 월차 쓰고 월요일까지 몸져누웠다. 그리고 한동안 내 전활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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