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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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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으로부터 위로받는 이들

신경숙의 <감자 먹는 사람들>
등록 2012-01-06 16:07 수정 2020-05-03 04:26

지난 월요일 아침으로 크리스마스이브에 만들어 먹고 남은 감자 요리를 먹고 출근을 했다. 찐 감자를 으깨 생크림과 버터와 꿀을 잔뜩 넣고 비빈 다음 다진 호두를 다시 버터에 버무려 으깬 감자 위에 덮어 오븐에 구운 이 (단순한 레시피의) 요리를 만들고 박수를 쳤더랬다. 너무 맛있어서. 따뜻하고 보드랍고 축제의 한 켠을 장식하는 것만 같았던 그 음식은 그러나,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했던 기운을 모두 버리고 이틀 새 차갑게 식어 있었다. 퍽퍽해진 음식을 데우지도 않고 의자에 걸터앉아 하루를 살기 위해, 오로지 허기를 때우려고 퍼먹으며 고흐의 을 생각했다. 희미한 램프 불빛이 비치는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묵묵히 식사를 이어가는 이들, 투박한 손과 허름한 옷차림, 식사의 즐거움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이들의 표정이 시선을 붙잡는다. 다섯 명의 등장인물 중 어느 하나 눈을 맞추는 이도 없다. 서로 다른 방향을 보며 이들은 무슨 생각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는 것일까. “모든 ‘먹는다’는 동작에는 비애가 있다”고 말한 김훈(‘밥벌이의 지겨움’)의 문장을 그림의 설명으로 얹어도 무리 없을 것만 같다.

같은 제목으로 신경숙은 단편소설을 썼다(, 창비 펴냄). 작가도 이 그림을 보며 힘겨운 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의 어떤 슬픔을 감지한 걸까. 소설 속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희미한 등불 아래서 허름한 옷차림으로 낡은 탁자에 둘러앉아 감자를 까먹고 있었죠. …낡은 의복과 울뚝불뚝한 얼굴은 어두웠지만 선량해 보였습니다. 감자를 향해 내밀고 있는 손은 노동에 바싹 야위어 있었지요.”

소설은 ‘먹는다’는 행위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삶이 고달프고 마음이 슬픈 이들의 사연이 이어진다. 소설 속 화자 ‘나’는 1집 앨범만 겨우 내놓은 28살의 무명 가수다. 그의 아버지는 7년 전 한 해에 4번이나 혼절을 한 적이 있었고, 지금 그것이 재발해 의식이 오락가락한다. 그는 입원 중인 아버지를 간호하며 방송사 PD인 윤희 언니에게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쓴다. 윤희 언니는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위암을 얻은 남편을 5년 동안 간호했다. 온통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병실에서 쓰는 편지에는 스러져가는 사람들의 사연으로 가득하다. 공사장에서 목재에 머리를 맞고 어린아이 같은 상태가 된 어느 건축 노동자, ‘달님’이라고 딸의 이름을 지었더니 달처럼 강물에 빠져버렸다며 급류에 휩쓸려간 딸을 추억하는 중년의 남자, 가혹한 유년기를 보내고 삶이 좀 펴지려나 했는데 이제는 3살짜리 딸의 소아당뇨로 다시 서글픈 일상을 되풀이하게 된 고향 친구 유순. 그러나 화자는 상실을 맞닥뜨리면서도 한결같이 담담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슬픔에 의해 위로받는 모습을 발견한다. (아픈 남편에게) “손을 잡히고 나면 하루분의 영양분을 공급받은 것같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를 버틸 수가 있었다”고 말했던 윤희 언니의 말을 비로소 이해한다.

그래서일까. 화자의 시선은 슬픔의 중첩으로만 그림을 보았던 나의 시선과는 조금 다르다. “하루분의 노동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일까? 저녁 식사가 저 몇 알의 감자일까? 그래도 그들의 표정은 무척 풍부했습니다. 태양 아래의 감자밭이 그들 얼굴 위로 펼쳐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비참에 억눌릴 만도 한데, 오히려 그들의 표정은 인간에 대한 깊은 공감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눈빛과 손짓과 낡은 의복으로요.”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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