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옥에 갇혔다. 시인 송경동은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기획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회사 쪽의 정리해고 조처에 맞서 309일간 하늘 끝에 매달려 크레인 고공 농성을 벌이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지지하려는 응원단을 결집했다는 이유로, 시인은 운신의 자유를 빼앗겼다. 대신 그가 쓴 말들은 날개를 달고 세상에 나왔다. 송경동 시인의 첫 산문집 (실천문학사 펴냄)는 삶과 노동현장을 축약한 그의 시 뒤에 숨은 인간 송경동의 이야기를 담았다.
문학, 악다구니 같은 현실의 탈출구
시인은 읍내 장터의 진창길, 악다구니를 쓰며 사는 사람들 틈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잦은 도박과 가정불화로 집안은 늘 어두웠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배를 걷어차이곤 했다. 상처 많은 가족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그는 자신을 “위악한 아이로, 수줍은 아이로, 어득어득 고집이 센 아이로” 만들었다. 그렇게 자신을 학대하며 불량으로 향했다. 그런 그에게 딱 하나 남은 구원의 장이 있었으니, 그것은 문학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미술과 문학을 좋아하는 선생님의 영향으로 문학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구원의 손길은 오래가지 못했다. 고등학교 문예반 시절 시화전을 앞두고 교감에게 불려가 난생처음 ‘검열’과 체벌을 받았다. 검열의 근거는 오독투성이였다. “여기서 ‘피’는 무슨 뜻이지? 왜 ‘광주천’을 붉다고 표현한 거야? 왜 넌 날개를 달고 이 땅을 벗어나고 싶은 거야?” 소년이던 시인은 그런 고차원적 질문을 이해할 수 없었을뿐더러 자신이 시를 쓴 대가로 왜 교감에게 뺨을 내줘야 하는지 도무지 납득이 안 됐다. 그렇게, 시를 쓰던 소년은 문학을 잃었고 다시 글을 쓰기까지 오랜 세월을 돌아와야 했다.
시인은 일찍이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어름에 상경해 일용공으로, 허름한 잡부 숙소에 몸을 기대며 살았다. 그는 “잡범방에서 구부리고 앉아 식구통 문을 열고 닫는 사람으로, 유흥업소의 셔터를 열고 닫는 사람으로, 뒷골목을 서성이는 사람으로, 할 줄 아는 것은 노가다뿐인 사람으로, 할 줄 아는 것은 몸 팔아먹고 사는 일뿐인 사람”으로 청춘을 보냈다.
그런 중에 깨달았다. “산소통과 알곤통과 LPG통과 오비키(건축자재로 쓰이는 가장 굵은 통나무)와 파이프관과 앵글더미와 철근더미와 7인치 그라인더와 함마드릴과 너무 친하게” 지냈왔건만, 10여 년의 고단했던 청춘기는 결국 어떤 것도 남겨주지 않더라는 것을. 한참을 미친 듯이 돈 버는 일에만 매진했지만 돈이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다시 문학을 찾았다. 그 뒤 그는 구로노동자문학회와 전국노동자문학연대에서 활동하며 노동문학운동에 대한 꿈을 키운다.
시인의 연대는 공감에서 출발한다. 그는 부끄러움과 외로움과 소외감으로 딱딱거리는 노동자의 비명을 누구보다도 깊이, 온몸으로 체감한다. “4천도짜리 용접 불똥이 살을 김밥처럼 말아갈 때 악을 쓰며 어딘지 모를 원한에 찬 비명을 질러본 사람들은 안다. 검게 탄 얼굴이 부끄러워 발바닥을 문지르는 숫돌로 얼굴을 밀고 그 위에 덕지덕지 크림을 발라본 사람들은 안다. 손톱 밑 때가 부끄러워 악수 한번 하면서 얼굴이 홍당무가 되고, 버스 전철 손잡이를 잡지 못한 채 손을 웅크려본 사람들은 안다. 그 쓰라린 소외의 자리들을.”
그리하여 그는 투쟁 현장에서 시를 쓰고 낭독하기 시작했다.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던 경기도 평택 대추리,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투쟁한 기륭전자, 불에 타죽은 철거민들을 애도하며 활동한 용산, 30여 년 가까이 노동자의 애환을 독식하고 중국과 인도네시아 공장에서도 상식 이하의 수탈을 일삼은 기타공장 콜트·콜텍, 기아차 모닝을 만드느라 기계적·살인적 노동을 해온 동희오토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모인 투쟁 현장에서 그는 문학으로 연대의 뜻을 나누었다.
나를 체포하라애초에 시인은 스스로를 고발하고 경찰에게 ‘나를 체포하라’고 말했다. 평화가 이 땅에 도래하기를 당연히 기원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아가 폭력과 반인권의 자유를 허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룰을 거부하며 그가 일별한 체포 사유의 대목들은 다음의 시들로 설명된다. “부고를 내어라/ 어둔 지하에서 양지를 그리며/ 내내 병상이던 국가보안법 돌아가셨다… 정부가 만나면 통일 운동/ 민이 만나면 반체제 운동/ 이 모든 어불성설도 모두 가져가….”(2002년 12월1일 종묘공원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장례식’에 참여해 낭송한 시 ‘꿈이 아닌 날’의 부분) “당신의 머리를 짓이기고 간 것은/ 레미콘의 바퀴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이 땅을 돌리고 있는/ 저 거대한 자본의 수레바퀴… 계획된 살인/ 예비된 침탈….”(2005년 6월25일, 충북 충주시청 앞에서 열린 ‘김태환 열사 살인만행 규탄 및 특수고용직 노동3권 쟁취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읽은 ‘탱크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의 부분) “나도/ 여느 시인들처럼/ 꽃을, 사랑을 노래하고 싶다… 한 손으론 미사일 버튼을 잡고/ 한 손으론 조약서를 들이미는 것이 자유무역협정인가… 오호, 민중이여!/ 이제 우린 다시 갑오농민전쟁가를 불러야겠구나….”(2006년 3월28일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출범식’에서 읽은 시 ‘한미 FTA는 내 시도 빼앗아간다’의 부분)
그런 그에게 이 나라는 참으로 이상한 나라다. 유령의 나라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89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청에서 재하청으로, 파견노동으로, 특수고용 노동자로 살아가야 하는 이 사회는 유령들의 사회지 정상 사회가 아니다.” 쉰 목소리로 절절히 외치는 문장 사이에서, 책상머리에 앉아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살피는 일상이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오른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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