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드라마 에서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수애가 그랬다. “선생님, 저 이제 서른이에요. 서른이라고요.”
이걸 본 서른 살의 내 친구들은 카카오톡에서 평소 고민의 조각들과 드라마에 대한 단편적 감상을 뒤섞어 말풍선을 엮어갔다. 이렇게. “수애가 서른이라고 자꾸 말함” “서른인데 엄청 어른스러워” “심지어 죽음을 기다려야 하다니” “저렇게 어른처럼 굴어도 되는 나이인 거지? 말투와 옷차림을 바꿔야겠어” “하긴 엄마가 내 나이였을 때는 결혼도 하고 나도 낳았다고 생각하면, 난 지금 엄청 어리게 구는 것 같아”. 주절주절 이어지는 대화는, 마음은 여전히 20대 같은데 세상이 어른이라 말하는 나이가 된 것에 대한 괴리, 어른의 나이라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나에 대한 고민, 그런데 과연 특정한 나이가 되었다고 세상이 정한 어떤 기준에 맞춰야만 할까라는 의문 등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물론 철없는 대화의 끝은 “다시 태어나면 수애나 송혜교 같음 좋겠음” “그럼 착하게 살아라 ㅋㅋㅋ”로 마무리됐지만.
서른, 어른, 발음마저 비슷한 이 나이는, 어른의 사춘기쯤 되는 나이인 걸까. 열네 살쯤의 우리가 변하기 시작한 몸과 기쁨과 슬픔의 감정이 롤러코스터처럼 폭주하는 데 당황했다면, 서른의 우리는 어른으로서의 첫 단추를 잘 꿰었는지, 그다음 단추를 연이어 꿰어도 되는 건지 헛갈려 이 시기가 이토록 당황스러운 걸까.
인터넷 서점에서 ‘스무 살’ 서른’ ‘마흔’을 검색창에 넣어보았다. 책과 음반, DVD 등을 포함해 스무 살은 1289건, 서른은 3599건, 마흔은 1324건이 검색됐다. (물론 올바른 통계는 아니겠지만) 제목을 살펴보니 과연…! 마흔부터 보자. 대체로 좀 서글프다. 를 읽으라고 권하거나(조금 고리타분하다), 노후대책을 마련하라거나(벌써!), 이렇게 나이 들어도 괜찮다고 위로한다(위로인데도 왠지 슬퍼). 스무 살은? 이러라 저러라 말이 없다. 그냥 스무 살 자체가 키워드인 거다(좋겠다). 그렇다면 서른은? 꿈꿔라, 연애하라, 떠나라, 성장하라 등의 제목들은, 이 세상 서른들에게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면 뭐든지 시도해볼 수 있는 나이라고 얘기해준다.
그런 맥락에서 요시모토 바나나의 속 미카게가 조금 부러웠다. “여름 동안 혼자서 집중적으로 요리를 공부하였다. 그 느낌, 머릿속에서 세포가 떨리는 듯한 느낌은 좀처럼 잊기 어렵다. 기초와 이론과 응용편, 책 세 권을 사서 통달하였다. 버스 안, 소파나 침대에서는 이론편을 읽으면서 칼로리와 온도, 재료에 관한 것을 암기하였다.” “나는 불에 데어도 칼에 베여도 두렵지 않았다. 철야도 힘들지 않았다. 하루하루, 내일이 오면 새로운 도전이 가능하다는 즐거움으로 가슴이 설레었다. 순서를 외울 정도로 여러 번 만든 당근 케이크에는 내 혼의 단편이 들어 있었고….”
‘머릿속에서 세포가 떨리는’ 느낌이라니. 나는 무언가 시도해보기를 너무 일찍 멈추고, 도전을 잊은 채 사는 건 아닌 걸까. 그래서 ‘내 혼의 단편’을 쏟아부을 무엇을 하나씩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의 미카게처럼 침대에서 요리책을 읽어보기로…. 그런데 이거, 의외로 괜찮다? 완결된 요리를 보며 그 과정을 상상하다 솔솔 잠이 드는 시간이 말랑말랑 달콤하다. 이런 밤이 조금씩 쌓이다 보면 언젠가 이 시간들을 회상하며 나는, “서른의 나는 그렇게 요리의 세계를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었다”고 쓸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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