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중순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청년들의 거리시위가 미국 내 20여 개 도시로 번지고 있다. ‘1 대 99’가 상징하는 극심한 빈부 격차와 만연한 실업에 항의하는 그들의 목소리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오바마 대통령도 입을 열었다. 10월6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월가 시위’에 대한 질문을 받자 오바마 대통령은 “시위대들이 분노하는 것은 금융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공화당은 (금융) 개혁에서 후퇴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혁명가 아닌 협상가”
공화당과의 타협 전략과 지지부진한 개혁으로 지지층의 이탈을 몰고 온 오바마가 드디어 변화하는 것일까. 한국판 10월호를 보면 답이 보인다. 언론인 에릭 앨터만은 “좌파 지지자들 중 다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거 시카고에서 사회주의 활동가로 활동한 새 대통령이 대선 운동에서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개혁과 사상을 실행하며 정치판을 개혁하리라 생각했다”고 전제한 뒤, “이는 한낱 권력을 열망하는 현실주의자와 순진한 이상주의 지지자들 사이에 일어난 또 다른 사기 거래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 원인은 무엇일까. 앨터만은 ‘정치를 투쟁이 아닌 합의’로 보는 오바마의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오바마의 입법 전략과 수사는 끊임없는 포용과 합의, 소극적 양보를 드러냈다”며 민심은 떠나고 사회적 불평등이 가중돼도 “오바마의 ‘양당 합의’에 대한 사랑을 꺾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오바마의 반대자들은 “그의 이런 약점을 알아채고, 당연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를 맘껏 이용”했다. “탁월한 웅변가인 오바마의 연설에서 모든 문제를 야기한 악인은 항상 빠져 있다. 악인은 지워지고 객관적인 말이나 수동적 어조로 표현된다. 이는 마치 타자의 불행에 원인이 없고 죄도 없는 것처럼 들린다.” 정치심리학자 드루 웨스턴의 말을 인용하는 앨터만은 결론적으로 “오바마는 협상가였을 뿐 혁명가는 아니었다”고 진단한다.
위기는 예견됐던 것인가. 장마리 아리베 프랑스 보르도 4대학 전임강사는 그렇다고 말한다. 그는 “현 위기는 각국이 지닌 문제들의 합으로 설명할 수 없다”며 “세계화가 ‘성숙한’ 단계까지 진행된 자본주의 전체의 위기”라고 주장한다. 이는 “기본적인 재화와 서비스 생산뿐 아니라 건강·교육·문화·천연자원·생물까지 상품 범주로 포섭해 투자자에게 최대 수익을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밀어붙인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현재의 금융지배를 해체하기 위한 규제로 장외주식 거래와 파생상품 금지, 금융거래 과세 등에 더해 이윤추구 논리가 지배하는 상업적 영역을 엄격히 제한하는 조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배집단에 해 될 게 없는 안철수”
제1세계의 위기가 탈세계화라는 오래된 대안을 새롭게 고민하게 했다면, 한국 정치의 위기는 안철수와 박원순을 대안으로 고민하게 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는 “안철수와 그 뒤를 이은 박원순 열풍은 모두 지배집단에 해가 될 게 없다”며, 이들은 “신자유주의적 체제가 대대적으로 생산해내려는 인간의 모습을 축약한 아이콘”이라고 일갈한다. “노동자라는 말보다 ‘인적 자본’이라는 말이 자신에게 더 유용하리라는 것을 뼈저리게 잘 아는 지배집단에게 안철수는 그런 인적 자본의 이념을 체현하는 화신”이고 “희망을 가진 사람들의 자기 돌봄의 기획이라는 박원순표 시민운동은 고용 창출과 복지 증대를 외치는 가난한 자들의 목소리를 잠재울 획기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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